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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장강훈기자] 메이저리그에 여성 지도자 바람이 불고 있다. 변변한 실업팀 하나 없는 국내 여자야구 현실을 떠올리면 별천지가 따로 없다.
질롱코리아 덕분에 국내 야구팬 사이에도 널리 알려진 호주 프로야구에 최초의 여성 선수가 탄생했다. 17세 소녀 제네비브 비컴은 멜버른 에이스 유니폼을 입고 지난 8일(한국시간) 애들레이드 자이언츠전에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최고 135㎞짜리 속구를 앞세워 2사 1, 2루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 U-16 호주 대표팀에 발탁돼 주목받기 시작한 비컴은 육성선수로 프로 유니폼을 입은지 엿새 만에 호주 야구 역사를 새로 썼다.
미국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 구단 중 하나인 뉴욕 양키스는 지난 10일 레이첼 발코베츠(34)를 로우 싱글A팀 탬파 타폰스의 사령탑에 선임했다. 비록 싱글A이지만, 마이너리그팀에 여성 감독이 등장한 것은 미국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이다. 발코베츠는 2012년 세인트루이스 산하 마이너리그 컨디셔닝 코치로 입문해 2014년 여성으로는 최초로 정식 계약을 맺었다. 2016년 휴스턴으로 이적해 빅리그에서 처음으로 라틴 아메리카 선수 담당 체력 및 컨디셔닝 코디네이터라는 직함을 얻었다. 차례로 ‘금녀의 벽’을 깬 발코베츠는 네덜란드 야구·소프트볼 대표팀 타격 코치로 일하다가 올해 양키스로부터 마이너리그 감독 제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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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뒤인 11일에는 류현진이 몸담은 토론토가 팀내 프로그램 전문가로 일하던 제이미 비에이라를 마이너리그 타격 코치로 임명했다. 2019년 토론토에 입단해 프로그램 전문가로 분석 업무를 하던 비에이라는 올해 토론토 산하 마이너리그팀들 중 한 곳에서 타격 코치로 일할 예정이다. 과학장비로 측정한 선수들의 데이터를 분석하던 일을 했으니, 실무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담은 인사다.
메이저리그는 수 년 전부터 이른바 ‘금녀의 벽’을 깨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지난해 마이애미는 메이저리그 최초의 여성 단장인 킴 앙을 임명해 눈길을 끌었다. 앙 단장은 미국 4대 프로스포츠 최초의 여성 단장인데, 그의 메이저리그 경력은 1990년 시카고 화이트삭스 인턴을 시작으로 양키스와 다저스 부단장을 거쳤다는 점에서 30년간 이어졌다. 앙 단장이 인턴으로 빅리그와 인연을 맺은 1990년, 보스턴은 엘래인 스튜어트를 메이저리그 최초의 부단장에 선임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하는 등 꽤 오랜 기간 동안 선수를 제외한 다양한 분야에 ‘우먼파워’를 도입하고 있다.
현장은 아니지만 일본프로야구도 여성에게 문호를 개방하려는 움직임이 있긴 했다. 지난 2019년 오릭스 구단이 이누이 에미 유소년 야구 코치를 구단 스카우트로 임명했다. 이누이는 2008 베이징올림픽 소프트볼 금메달리스트로 일본 프로야구 최초의 여성 스카우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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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국내 야구계는 금녀의 벽이 방탄유리보다 견고하고 두텁다. 몇 해전 방영된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드림즈 운영팀장이 여성이라는 설정만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킬 정도였다. 구단 프런트 고위직은 물론 중계방송에서조차 여성 캐스터나 해설위원은 찾아보기 힘들다. 히어로즈가 축구인 출신인 임은주 씨를 부사장으로 영입했지만 법정 싸움이라는 최악의 결과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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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자연맹이 집계한 2021년 자료에는 국내 여자야구는 총 48개팀, 942명의 선수가 활동 중인 것으로 나와있다. 2004년 최초의 여자야구팀 비밀리에가 창단된지 18년이 흘렀고, 당시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일 정도로 확장했지만 실업팀 하나 없는 열악한 현실은 그대로다. 김라경 박민서 등 가능성 있는 여자 야구선수들이 설 자리는 동호인 야구팀밖에 없다. 이런 환경에 여성 지도자나 단장을 바라는 건 언감생심이다.
프로야구단 구단주와 야당 대선후보가 냉전시대 전유물인 ‘멸공’을 외치고 있는 현실에서 남존여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야구계의 변화를 바라는 건 시대를 너무 앞서간 생각일까.
zzang@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