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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심언경기자] 배우 김규리(42)에게 JTBC ‘그린마더스클럽’(신이원 극본· 라하나 연출)은 “계획하지 않은 인연”이다.

1인 2역에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그림까지 잘 그려야 하는 배역은 운명처럼 그에게 향했다. 그간 화려하지만 불안한 ‘서진하’였다가도 수수해서 더 빛나는 ‘레아 브뉘엘’로 살아온 그는 캐릭터에 완벽히 스며든 연기로 제작진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최근 종영한 ‘그린마더스클럽’은 초등 커뮤니티의 민낯과 동네 학부형들의 위험한 관게망을 그린 작품이다. 극 중 김규리는 이은표(이요원 분)가 열등감을 느끼는 태피스트리 작가 서진하, 그와 똑같이 생긴 루이 브뉘엘(로이 분)의 의붓동생 레아 브뉘엘로 분했다.

그의 배역은 작품의 핵심이었다. 특히 레아 브뉘엘의 존재는 반전이자 키였다. 서진하와 생김새는 같지만 분위기가 정반대인 레아 브뉘엘은 루이 브뉘엘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이 사실은 서진하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연기하기에 부담감이 따를 법도 한 캐릭터였다.

“제작진이 서진하와 레아 브뉘엘을 해낼 수 있는 배우를 고심하셨다고 하더라. 그러다가 ‘김규리 어때’라는 말이 나온 거다. 작가님도 감독님도 너무 좋아하셨다고 들었다. 전시를 하고 있어서 (작가인 서진하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리라 생각하신 것 같다. 나 또한 그런 면에서 진하한테 동질감을 느꼈다. 불안을 예술로 승화시키는데 나 역시 연기를 잘하기 위해 예민함을 갈고 닦는다.”

서진하의 극단적 선택을 둘러싼 이야기가 큰 줄기였던 만큼, 레아 브뉘엘은 비밀리에 붙여져야 하는 인물이었다.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해야 했다. (레아의) 머리가 짧은데 밖으로 드러내면 안 돼서 긴 머리인 척 피스를 가닥가닥 붙였다. 전시회 중이라서 한 달간 매주 한 번씩은 도슨트로 나섰는데 그때마다 사진에 찍히면 안 되니까 피스를 붙여야 했다.”

‘김규리 예쁘다’는 반응이 기억에 남는다며 웃음을 터뜨린 그는 외적으로 완벽한 서진하를 구현하기 위해 스타일링에 힘을 줬다. 놀랍게도 스타일리스트의 도움은 받지 않았다. 의상 역시 죄다 사비로 구입한 것이었다.

“진하와 레아의 스타일을 잡기 위해 옷을 구입하거나 제작했다. 동대문도 뛰어다녔고 새벽시장도 갔다. 그렇게 했는데도 마음에 드는 옷이 없으면 해외 사이트를 다 뒤져봤다. 진하는 여신이다. 남들이 특별한 날에 입을 드레스를 가내복으로 입는다. 옷 소재는 하늘거리고 부드럽다. 캐릭터를 준비할 때 유행하던 스타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옷을 찾기가 너무 힘들었다. 스타일리스트한테 들어갈 비용을 다 투자했다.”

반면 레아의 스타일은 비교적 준비하기 어렵지 않았다. “레아는 중성적인 느낌이다. 진하와 반대로 가고 싶었다. 20대 때 입었던 옷들을 입었다. 스타일리시하지만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먼지가 쌓였을 것 같은 구제 느낌이 나는 옷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시계도 22살 때부터 차고 있던 것이다. 가죽이 낡다 못해 삭았다. 촬영하다가 끊어져서 바느질로 꿰매기도 했다. 헤어스타일도 샤워 후 털고 나온 것처럼 세팅했다.”

‘그린마더스클럽’의 주인공은 ‘엄마들’이다. 이에 김규리를 비롯해 배우 이요원(이은표 역), 추자현(변춘희 역), 장혜진(김영미 역), 주민경(박윤주 역)까지 날고기는 여배우들이 총출동했다. 이들의 강력한 시너지는 화면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져 호평받았다.

김규리는 현장 분위기를 묻는 말에 “여자들끼리 있으니까 너무 재밌었다”고 답했다. 이어 “다섯 명이 앉아 있으면 코미디가 아닌데 정말 재밌었다. 다들 개그 욕심도 많아서 듣다 보면 시간이 다 갔다. 또 여자들끼리 느끼는 게 있지 않나. 아는 이야기를 하니까 소통도 원활했다. 잘 통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종일 미묘한 대립각을 세운 이요원과는 오랜 친분이 있어서 더욱이 편안한 촬영이 가능했다. “(이)요원이는 모델 활동 때 만났다. 코찔찔이였을 때 모습을 알고 있으니까 빨리 친해져야겠다는 부담감이 없었다. 그리고 예민한 장면을 요원이랑 많이 찍었다. 그런 신은 촬영하다 보면 상처를 받거나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요원이랑은 서로를 너무 잘 아니까 그럴 일이 없었다.”

또한 미혼인 그는 ‘진짜 엄마’인 이요원, 추자현, 장혜진의 대화가 흥미로웠다고 한다. “모이면 아기 이야기가 나오는데 신기하더라. 가보지 않은 인생이다. 내 인생 선배들이다.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아직 오지 않은 미래니까 일단 들어보는 거다. ‘어떻게 해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쉬는 날에 게으르게 보내는 편인데, 엄마는 그게 아니더라.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하고 아이가 놀자고 하면 놀아야 하고. 너무 대단하게 느껴졌다. (추)자현이를 붙들고 너무 존경스럽다고 했더니, 눈을 껌뻑이더라. 하하.”

이들의 호흡이 통한 걸까. 시청률 2.5%(이하 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로 시작한 작품은 마지막 회에서 6.1%를 기록, 유종의 미를 거뒀다. 김규리는 입소문을 탄 비결에 대해 “우리도 열심히 했고, 라하나 감독님도 고생하셨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글의 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스카이 캐슬’ 초등학교 버전이 아닐까 했다가, 워맨스가 나오더니, 스릴러와 미스터리로 바뀐다. 기존에 있었던 방식을 탈피해 새롭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약 3년 만에 복귀해 연기에 힘을 쏟은 그는 다시 화가로 돌아가 좋은 작품을 기다릴 참이다. 생을 걸고 그림을 시작했다며 이제 삶에 감사하며 지금을 즐길 여유를 얻었다. “숨을 쉬기 위해 절실한 마음으로 그렸다. 연기자로서 치열한 삶을 살아봐서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다. 1998년에 연기를 시작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그동안 치열하게 지내왔다. 실패했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배움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감사할 수 없을 거다. ‘그린마더스클럽’ 역시 너무 고마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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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glasses@sportsseoul.com

사진|화화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