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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박효실기자] 답답할 정도로 느린데, 느리다 못해 멈춰설지라도 묵묵히 심장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가는 정공법식 사랑이 안방극장을 물들이고 있다.
16부작 최종 2회분을 남겨둔 JTBC 수목극 ‘사랑의 이해’는 긴 호흡으로 달려온 사랑과 엇갈림을 끝내고, 다시 마주한 두 사람 하상수(유연석 분)와 안수영(문가영 분)의 마지막 선택을 앞두고 있다.
‘사랑의 이해’는 KCU은행 영포점에 적을 둔 직장인 군상들을 통해 사랑의 의미를 묻는다. 신중하고 따뜻한 남자 하상수와 아름답고 반듯한 여자 안수영의 사이에는 투명한 선들이 빽빽하게 그어져 있다.
은행은 직군과 직종에 따른 계급으로 층층이 나뉘어져 있고, 다시 학벌과 출신지 빈부차 권력차로 나뉘어 보이지 않는 ‘경계선’의 안과 밖에서 그들을 꽁꽁 옭아맨다. 호감 가는 상대를 향해 한 발짝 떼는 일은 단지 사내연애 이상의 의미와 무게를 띈다.
VIP고객에게 저지른 실수로 우연히 제주출장을 함께 갔다가 서로가 느낀 호감을 순순히 따라가본 둘은 하상수의 망설임을 너무 빨리 알아챈 안수영의 ‘파워후진’으로 크게 엇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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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의 창구직원인 안수영은 점내 최고 영업실적에도 직군전환 시험에 번번히 떨어진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비싼 구두를 신는 정규직 직원들은 자기 밑에서 일을 배우지만, 몇년 안에 자기보다 높은 직급이 된다.
은행 속의 철저한 계급을 뼛속 시리게 알고 있는 수영은 자신과 교제를 고민하는 상수를 밀쳐두고, 청운의 꿈을 품고 서울에 올라왔던 자신처럼 경찰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청경 정종현(정가람 분)과 교제를 시작한다.
가난한 그 남자의 사정을 배려해 자신의 집까지 내어준다. 자신에게 빨간 딱지가 될걸 알면서도 동거를 결정한 건, 한번도 쉽게 자리를 내준 적 없는 세상에서 자신이라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둥지가 되어주고 싶어서였다.
하상수는 자신을 팬처럼 따르는 대학후배 박미경(금새록 분)의 마음을 밀쳐내지 못해 사귀기 시작했다. 상수가 담당하는 거래처인 대형 건설사 대표의 딸이기도 한 미경은 사랑하는 만큼 물질적 표현도 아끼지 않는다.
상수를 친구들에게 소개하려 호텔 스위트룸을 빌리고, 상수가 없어보일까봐 500만원짜리 양복을 선물한다. 수억원의 외제차를 안기며 “나중에 결혼하면 줄 거 미리 주는 거야”라고 행복해한다. 박미경의 남다른 재력을 알게된 은행직원들은 “상수가 봉 잡았다. 처가가 든든한 뒷배가 될텐데 부럽다”고 한다.
구김살 없이 자란 미경의 베풂은 상수만 향하지 않는다. 안수영에게도 자신이 느끼는 호의만큼의 선물공세로 애정을 표현한다. 차차 하상수가 안수영을 바라보는 눈빛이 남다르다는 걸 눈치 챈 박미경은 수영에게 “자유복 됐는데 입어. 택도 안 뗀 거”라며 명품 옷을 잔뜩 안겼다.
아버지 병원비가 급하게 필요한 종현을 위해 수영은 문제의 옷을 중고로 팔았고, 너무 큰 돈을 돌려받고 망연자실했다. 종현에게 그 돈을 고스란히 준 수영은 “누군가에겐 쉬운 일이 우리한테 어려운 게 화가 난다. 이 돈은 내 화풀이다”라며 씁쓸해한다. 같은 공간에서 너무도 다른 세상을 사는 이들과의 견고한 격차에 대한 절망이었다.
그렇게 하상수는 더 위로 올라갈 끈을 잡고, 안수영은 자신이 계속 끌어줘야할 끈을 잡았지만, 서로 계속 뒤돌아본다. 안수영이 외부 영업 접대 자리에 자신을 데리고 다니던 지점장을 강압행위로 감사팀에 신고하고 창고정리로 괴롭힘을 당하자 하상수는 지점장의 업무비 횡령을 감사팀에 몰래 알려 ‘안수영의 난’을 일단락 시킨다.
하상수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을 남몰래 도운 걸 뒤늦게 알게된 안수영은 다시 그를 향해 끌리는 마음을 깨닫게 되고, 결국 하상수도 “더는 안 되겠어요”라는 고백과 함께 수영에게 입을 맞췄다.
각자의 상대와 힘든 이별을 결정한 두 사람은 2일 방송된 14회에서 첫 데이트를 하려했던 호텔 커피숍에서 재회하며 서로를 향한 마음을 재확인 했다. 마침 수년간의 도전 끝에 안수영은 직군전환에 성공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을 상처입힌 고통을 못 이겨낸 수영은 다음날 발령된 지점에 사표를 제출했고, 휴대폰 번호까지 바꾼 채 사라져 버렸다.
‘사랑의 이해’는 오는 9일 16부작 마지막회를 남겨두고 있다. “돌고돌아 다시 원점, 다시 안수영”이라고 말했던 하상수와 다친 날개를 접고 쉬고있는 안수영이 어떤 모습으로 재회하게 될지, 그들의 사랑이 마침내 ‘내일의 행복’을 만들지는 미지수다.
그럼에도 로맨스 드라마의 흔한 갈등기제를 최소화하고, 현대판 신분제도를 담담하게 드러내는데 공을 들인 ‘사랑의 이해’는 말줄임표가 무수히 많았던 더딘 로맨스로 사랑이 뭔지 무수한 질문을 던졌다 .
gag11@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