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수원=윤세호기자] “우승 차지하자!”

한국어로 각오를 밝혀달라는 질문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지난해 KT와 계약을 체결한 시점부터 한국어를 꾸준히 공부했고 어느덧 모든 글자를 읽을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통역을 거치기 전 유심히 질문을 듣고 이해하려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투수로서 기량만큼 한국어도 빠르게 향상되고 있는 KT 선발 투수 웨스 벤자민(30) 얘기다.

강렬한 후반기 첫 등판이었다. 벤자민은 지난 25일 수원 LG전에서 103개의 공을 던지며 8이닝 3안타 1볼넷 9탈삼진 무실점으로 괴력을 발휘했다.

꾸준히 초구 스트라이크를 선점했고 포심과 슬라이더, 커브, 투심 등을 자유롭게 섞었다. 좌타자가 많은 LG 타선을 상대로 스트라이크존 바깥쪽에 포심, 몸쪽에 변화구를 구사해 굳건히 마운드를 지켰다. 벤자민의 호투를 앞세운 KT는 4-1로 LG를 꺾고 2연승을 거뒀다.

마냥 잘 던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빠른 투구 템포를 유지했다. 보통 투수들이 공 하나를 던지는 시간에 2, 3개를 던졌다. 포수를 포함해 야수들이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그러자 KT 타자들은 3회말 3점을 뽑아 벤자민을 지원했다. 벤자민에게 경기 초반 3득점은 팀 승리를 이끌기에 충분한 점수였다. 경기 후 박병호는 승리 구를 직접 챙겨 벤자민에게 전달했다. 투수가 빠른 템포로 호투하면 야수들도 자연스럽게 좋은 플레이를 펼친다.

벤자민은 인터뷰에서 동료 이름 뒤에 “형”을 붙였다. “병호 형, (장)성우 형”이라며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KT 구단 관계자는 “벤자민이 항상 한국어를 공부한다. 이미 읽는 것은 완벽하다. 뜻은 다 몰라도 모든 한글을 읽을 수 있다”고 했다.

기량만 뛰어나서는 성공할 수 없다. 적응도 잘 해야 한다. 작년 6월 처음으로 태평양을 건넌 벤자민은 빠르게 팀에 녹아들었다. 선발 투수지만 포스트시즌 불펜 등판도 수락했다. 적극적으로 한국어를 구사하며 동료들과 대화했다. 동료들은 벤자민의 모습 하나 하나를 머릿속에 넣었다. 경기당 득짐지원 5.28점으로 이 부문 선발 투수 2위. 그냥 나온 숫자라고 보기 힘들다.

방향도 재정립했다. 2022시즌 후 개인 레슨을 받고 구속 향상을 이뤘다. 팔높이를 내리면서 시속 150㎞ 이상을 찍었는데 지금은 다시 팔을 높였다. 공은 빨라졌지만 커맨드에 애를 먹었다. 익숙한 팔높이로 돌아간 후 승승장구하고 있다. 7월 5일 잠실 LG전과 11일 고척 키움전, 그리고 25일 경기까지 3경기에서 21이닝 4실점(3자책) 평균자책점 1.29를 기록했다.

올시즌 내내 활약하지는 못했지만 KT 선수단 모두가 벤자민을 응원했다. 이강철 감독도 “벤자민에게 투구에 대해 말하면 늘 ‘좋은 포인트’라고 한다. 성격은 참 좋다”고 미소 지었다. 개막전 호투 후 하향곡선을 그렸으나 팀과 함께 반등하고 있다. 지난해 준플레이오프 2차전 7이닝 9탈삼진 무실점 괴력투를 다시 펼칠 가을 무대를 바라보는 벤자민과 KT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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