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민물낚시에 미쳐서 10년 동안을 충주호나 파라호에서 낚시꾼으로 산 적이 있다. 오직 4짜(40㎝이상 되는 토종 붕어)를 잡으려 혈안이 되어 날밤을 새면서, 찌만 올라오기를 학수고대하던 시절이 다. 4짜는 골프로 치면 싱글이나 홀인원에 해당한다. 그만큼 잡기도 어렵고 순간을 놓치면 평생 기회가 오지 않는다.
문제의 발생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찌 올림 한번 없이 꽝을 치고 돌아오는 날에는 주변 환경보다는 무조건 장비 탓을 하면서, 낚싯대와 채비 일체를 신형으로 교체해버린다. 새로운 무기로 부푼 꿈을 갖고 매번 도전했지만, 십수 년을 꽝으로 살아오다가 허리에 무리가 가서 결국 낚시를 접었다. 그렇게 남은 건 다용도실을 반 이상 차지하고 있는 한 트럭 분의 낚싯대와 장비뿐이었다.
골프도 ‘너나 잘 치셔요’ 책을 발간하면서 약력에 서술한 바 있지만, 채와 장비만 교체한 것이 30년 동안 300회. 그중에서도 퍼터만 50개 이상을 바꾸었다. 라운딩에 가서 돈내기를 세게 해 파산할 지경인 날에는, 장비병이 극에 달해서 캐디백 빼고 드라이버를 포함해 모든 장비를 신형으로 바꾼 적도 있다.
장비병에 걸려본 골퍼들은 알겠지만 한번 중독되면 마약보다도 끊기가 어렵다. 자신이 골프를 치는 건지, 장비를 모으는 컬렉터인지 구별이 안 될 때가 많다.
다른 예를 들자면, 자전거에는 장비병이 거의 없다. 자동차나 오토바이는 배기량이 업그레이드되면서 장비병이 오지만, 자전거는 자신의 발이 곧 배기량이고, 빨리 달리려면 체력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스스로가 인정하고 인지하기 때문에 지름신이 오지 않는다.
자전거는 광고가 없지만, 낚시나 골프는 매년 신상품이 나오고 모든 매체에서 광고를 한다. 그 이유는 낚시는 붕어 잡기가 힘들기 때문이고, 골프는 스코어 줄이기가 어렵고 자신의 주제 파악을 못하고 장비 탓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심리를 이용해 업체에서는 시즌만 되면 첨단과학 기술을 동원해 신상품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골프에 있어서 장비의 선택은 연습과 열정 못지않게 중요하다. 특히 모든 채는 헤드보다 샤프트의 강도나 길이가 본인의 체형 및 리듬 밸런스에 부합해야 한다. 샤프트가 나를 따라와야지, 내가 샤프트를 따라가면 안 된다. 대부분의 아마추어는 초보 때를 제외하고는 헤드 스피드나 비거리가 급격히 늘거나 줄지 않기 때문에, 최소 5년간은 현재 쓰고 있는 장비를 교체 없이 사용해도 무방하다고 볼 수 있다.
간혹 장비병에 걸린 아마추어가 연습을 많이 한다는 명분으로, 헤드와 샤프트가 닳아서 장비를 교체한다는 얘기를 듣고 속으로 웃은 적이 있다. 시중에 나오는 채들은 수만 번 스윙해도 전혀 기능상 문제가 없다. 그러나 투어 프로들은 얘기가 다르다. 1~2년 사이에 수만 번 스웡을 하며 헤드 스피드가 일반인들과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교환 주기가 짧아질 수가 있다.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브랜드 있는 드라이버 하나 가격이 100만원 가까이 가고 있다. 차라리 장비를 바꾸지 말고, 그 돈으로 온 가족이 한우로 배불리 먹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비병을 고칠 수 없다면, 차선책으로 골프 중고 사이트나 SNS를 통해서 사고 싶은 것을 사라. 지금같이 살기 힘든 시절에는 모든 방면에서 중고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으니, 자신의 채를 시가보다 싸게 올려서 빨리 팔고 원하는 것을 구매하라. 장비병이나 지름신도 골프에 대한 열정과 관심이라고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장비병에 걸려 사는 데만 치우치지 말고 구매하고 나서 열심히 연습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어야 한다. 차 트렁크 속에 처박아 두지 말고, 들고 다니고 휘둘러야 한다. 최악의 장비병 중독자는 구매만 하고 우표 수집하듯 고이 모셔두고서, 또 다른 브랜드의 똑같은 채를 여러 개 구입하는 골퍼이다. 필드에 나갈 때마다 채를 바꿔가면서 라운딩하는 구제불능의 환자들도 있다.
골프채는 명품백도 슈퍼카도 아니다. 그날 기분에 따라서 이거 메고 가고 저 차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연습을 통해서 땀과 눈물이 녹아져 있는 자신과 함께 동고동락한,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채가 최고의 무기인 것이다.
어느덧 골프 치기 좋은 가을이 지나고, 차분히 연습하기 좋은 겨울이 오고 있다. 내년 봄시즌에 한 타라도 내려가는 스코어를 목표로 삼고 있다면, 마약보다 무서운 장비병보다는 연습병에 걸려 꾸준히 지속적으로 연습하고 몸으로 실천해야 한다. <골프칼럼니스트·너나 잘 치셔요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