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양궁 대표팀 ‘맏언니’ 전훈영(30·인천시청).

그는 올 4월 국가대표팀에 승선하며 올림픽 출전에 성공했다. 그리고 3일 프랑스 파리 레쟁발리드에서 열린 여자 개인전에서 메달을 겨냥했지만 아쉽게 4위에 그쳤다. 금메달은 임시현(한국체대), 은메달은 남수현(순천시청)이 목에 걸었다. 특히 임시현은 단체전과 혼성전에 이어 개인전까지 석권하며 3관왕에 등극했다.

이날 경기장을 찾은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대한양궁협회장·아시아양궁연맹 회장)은 개인전이 끝난 후 메달리스트를 축하했다. 그리고 전훈영도 직접 찾아 격려하며 눈길을 끌었다.

정 회장은 비록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대회 기간 내내 후배들을 다독이고 이끈 전훈영의 헌신에 감사의 뜻을 전달한 것.

전훈영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양궁 대표팀을 향한 많은 걱정과 우려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전 종목에서 금메달 3개를 땄다. 부담이 컸는데 목표를 이뤄냈다. 팀으로 보면 너무 좋은 결과를 내 만족스럽다”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이어 “준비하는 동안 쉬지 않고 열심히 해서 후회는 없다. 후련한 마음이 제일 크다”고 밝혔다.

전훈영은 서른 넘어 처음으로 올림픽 무대를 밟은 여자 양궁 대표팀의 ‘맏언니’다. 2003년생 임시현, 2005년생 남수현과는 10살 안팎 터울이다. 전훈영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올림픽에 첫 출전한 후배들을 살뜰히 챙기며 후배들의 금빛 질주를 도왔다.

여러 사례가 있다. 우선 파리에 도착해 선수단 숙소를 정할 때였다. 숙소는 2인 1실. 그러면 여자양궁 대표팀 3명 중 1명은 타종목 선수와 방을 써야한다.

전훈영은 달랐다. 맏언니는 방장으로 방졸과 같은 방을 쓰지 않았다. 그가 먼저 손을 들고서 타 종목 선수와 같은 방을 쓰겠다고 했다. 양궁후배들을 위한 선택이었다.

코칭스태프가 “태릉 시절도 아니고 타 종목 선수와 열흘 넘게 있는 게 괜찮겠냐”고 묻자 전훈영은 “동생들이 편하게 지내면 나도 좋다”며 쿨하게 답했다.

경기장 안에서도 전훈영은 솔선수범했다. 단체전 1번 주자로 나섰다. 양궁 단체전에선 세트당 120초가 주어지는데, 선수 3명이 120초 안에 각 2발씩 총 6발을 쏴야 한다. 첫 주자가 활을 빨리 쏘면 두번째, 세번째 선수는 그만큼 시간 여유를 갖는다. 전훈영은 1번 주자로 나서 빠르게 활 시위를 당겼다.

지난달 28일 중국과의 여자 단체 결승전 장면. 1번 주자 전훈영은 5차례나 10점을 쐈다. 특히 연장 승부 결정전(슛오프)에서도 10점을 쏘면서 금메달 획득에 크게 이바지했다. 2014년 이후 10년간 국제 무대와 인연이 없던 그가 성인 무대에서 첫 금메달을 따낸 순간이었다.

코칭스태프에 따르면 전훈영은 유쾌하고 털털한 편이다. 단체전 때에도 엉뚱한 농담을 던지며 동생들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그의 활약과 배려 덕분에 여자 양궁 대표팀은 단체전 10연패뿐 아니라 혼성전, 개인전까지 출전한 전종목에서 금메달을 수확했다.

그 결과는 메달에서 보듯 기대이상이다. 이번 대회에 앞서 “국가대표 3명 모두 올림픽 첫 출전이라서 큰 경기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평가를 극복하며 최고의 성과를 파리에서 얻어냈다.

이날 개인전 직후, 정 회장이 전훈영과 마주해 그에게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훈영이 맏언니로서 보이는 곳은 물론, 때론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팀을 위해 헌신한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세세한 곳까지 챙기는 정 회장의 특별한 양궁 사랑은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 겨울 정 회장은 ‘2023한국양궁 60주년 기념행사’에서 다음과 같은 환영사를 했다. 그는 “우리 양궁인들께서 더 큰 포부와 꿈을 안고 앞으로 나아가시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운을 뗀뒤 “어느 분야든 최고라는 자리까지 올라가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지만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은 더더욱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공정하게 경쟁했는데 성적이 기대에 못 미쳐도 괜찮다”고 강조했다.

결과가 중요하지만, 최선과 공정에 더 방점을 둔 것. 이는 양궁 대표팀에 일관되게 흐르는 원칙과 기준이기도 하다.

정 회장은 이어 “보다 중요한 건 우리 모두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품격과 여유를 잃지 않는 진정한 1인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서 국가의 품격을 높이고 국민들에게 자부심을 안겨드릴 수 있다. 그게 바로 스포츠의 가치와 의미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개인전에선 비록 4위에 그쳤지만, 팀을 위해 헌신한 전훈영을 직접 격려하고 위로한 정 회장의 모습 또한 스포츠가 가진 품격과 일맥상통한다. 양궁 ‘대부’의 리더십이 양궁 ‘맏언니’에게로 이어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