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역시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다. 위기의 순간에서 보이는 눈빛에선 팀장다운 카리스마가, 취재 일선에서 보여주는 탐사보도 PD로서의 매력 역시 빛이 난다. ‘슈룹’(2022) 이후 어떤 모습으로 나올까 궁금했다. 3년 만에 선보인 ‘트리거’는 또 한번 김혜수의 진가를 입증했다.
① 이야기의 신선함, 김혜수가 한껏 살렸다
서사 역시 풀어가는 방식이 기존 보도국·시사교양국 이야기와 차별화돼 있다. 김남주가 주연을 맡아 화제를 모았던 ‘미스티’(2018)는 메인 뉴스 앵커 고혜란이 자신의 자리를 놓고 벌이는 암투와 치정 멜로 이야기를 오갔다. 얼마나 고혜란이 예쁘고 멋있는지, 이 자리를 놓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쳐왔는지를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개인 서사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사회 문제는 제대로 건드리지 못해 뒷심이 부족했다.
반면 ‘트리거’는 에피소드 별로 한국 사회가 현재 처한 문제를 직시하고 있다. 1, 2회에서 사이비종교 믿음 동산 문제를 다뤘다. 여기에는 신도들의 착취 문제에서부터 양귀비 등 마약 불법 재배와 같은 문제까지 총체적으로 건드렸다. 과거 다큐 ‘나는 신이다’(2023)와도 결이 비슷하다. 각종 사이비 종교가 독버섯처럼 사회에 암약하고 있는 문제를 초반부터 다뤘다. ‘트리거’가 넝마처럼 얽힌 각종 범죄를 어떻게 유려하게 풀어놓을지 기대감을 드높인다.
이는 이제훈의 ‘모범택시1, 2’(2021, 2023)와 같은 사적 제재 방식에서도 벗어났다. 언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취했다. 사회적 공기로서 언론의 역할을 재조명하며 동시에 한국 최초로 탐사보도팀 드라마답게 내부 모습과 캐릭터 외양까지 촘촘하게 묘사했다.
소룡은 직선적이고 강인하다. 김혜수는 화장기 없는 얼굴에 머리를 질끈 묶고 편한 옷과 워커, 운동화를 신은 채 현장을 누빈다. 기존 드라마가 프롬프터에 올라오는 글을 얼마나 멋지게, 앵커와 유사한 모습으로 나오는가에 초점을 맞춘 것과 궤를 달리한다.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무거운 사건 사고를 파헤치고 다니는 모습과 가끔 던지는 실없는 농담이 유기적으로 얽히며 캐릭터가 맛깔나게 살아났다.
② ‘낙하산’이 아닌 ‘낙하’는 종종 일어난다
‘트리거’가 가진 또 하나의 미학은 바로 언론사 내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언론사는 밖에서 볼 때처럼 화려하거나 멋지지 않다. 때로는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고, 인사이동에 따라 원치 않는 부서로 발령을 받아 가야 한다. 자리를 박차고 대들거나 회사를 관두는 모습은 사실 판타지에 가깝다. 물불 안 가릴 것 같은 소룡이 본부장과 논쟁하다 언성이 높아지자, “목소리 낮추세요. 나 당신 아랫사람 아닙니다”라고 하자 조용히 하는 모습은 그래서 현실적이다.
‘미생’(2014)이 10년이 지나서도 명드라마로 평가받는 이유는 직장인의 애환을 에피소드별로 잘 녹여냈기 때문이다. ‘트리거’에서 한도(정성일 분)는 드라마국 PD로 일하다 인사이동을 받아 트리거 팀으로 온다. “낙하산 아냐”는 말에 “낙하산은 모르겠고, 낙하는 맞는 거 같다”고 맞받아치며 자신도 이 팀에 온 게 탐탁지 않다는 걸 내비치는 모습이 차라리 현실적이다.
그렇다고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 없다. 그게 어떤 팀이든 언론인은 언론인이어야 한다. 고양이 살해 사건에 얽히게 된 한도가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가진 역량이 서서히 드러난다. 드라마 PD로서의 장점이 팀에서 빛이 날 것이라는 점, 이것이 성장형 캐릭터로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를 보는 모습은 우리가 직장에서 맞닥뜨려야 하는 모습과도 유사하다.
③ 정성일의 새로운 얼굴, 주종혁의 현실 연기 매력적
정성일이 보여주는 샌님 같은 모습 역시 매력적이다. ‘더 글로리’(2022)의 하도영으로 인기를 얻은 그가 영화 ‘전,란’(2023)에선 서늘한 일본 무사의 연기로 다소 톤 다운을 했다면 ‘트리거’에서는 다소 귀여운 모습으로 톤을 올린다.
젠틀맨 하도영이 아니다. 후드티를 입고 곁을 좀처럼 주지 않는다. ‘츤데레’ 그 자체다. 멋있고 근엄한 모습 외에도 이런 연기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연극판에서 차근차근 쌓아 올린 정성일의 스펙트럼 넓은 내공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주종혁이 보여주는 조연출 기호의 모습 역시 호감이 간다. 집에도 제대로 가지 못해 꾀죄죄한 PD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아 친근감을 더한다. 캠코더 하나를 들고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PD 그 자체다. “아니, 나 여기서 3년 동안 집에를 못 가. 집에를”이라며 외치는 장면에선 현실감이 넘쳐 웃음이 배시시 나온다.
파마한 머리에 다크서클, 노스페이스 패딩까지. 이만하면 조사도 많이 하고 근사하게 그려냈지 싶다. ‘트리거’의 남은 10회 에피소드가 꽤, 많이 기다려진다. socool@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