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미키 17’은 쏟아지는 관심만큼 개봉까지 많은 말이 나오기도 했다. 오스카 수상 감독의 대작이 개봉일을 자주 바꾸는 건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2023년 초 ‘미키 17’은 2024년 3월 29일 북미 개봉을 발표했다. 그러나 할리우드 대규모 파업이라는 예기치 못한 사태로 인해 개봉 계획이 전격 취소됐다. 이에 따라 새로운 개봉 일정과 전략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후 워너브러더스는 2025년 1월 28일을 새로운 개봉일로 발표했다. 북미보다 한국에서의 선개봉이라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이는 설날 극장 성수기를 겨냥한 전략으로 한국 관객들에게는 희소식이었다. 하지만 북미와 유럽 시장에서는 비수기 시즌의 개봉이라는 점에서 의문을 낳았다.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약 1975억 원)에 달하는 이 작품이 전통적으로 저예산 영화들이 주로 선보이는 1월 극장가를 선택했다는 점은 워너브러더스가 봉 감독을 충분히 지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전 세계 이목이 쏠렸고 반응이 뜨거워지자 워너브러더스는 “논의 끝에 ‘미키 17’을 부활절(2025년 4월 20일) 시즌으로 개봉일을 다시 변경했다.
워너브라더스는 “‘미키 17’에 대한 흥행 자신감이 있어 부활절 시즌으로 개봉 시기를 옮겼다”고 입장을 밝혔지만 논란은 계속됐다. 이후 워너브라더스는 한번 더 개봉 일정을 변경했다. 북미에서 3월 7일, 국내에서는 2월 28일 최초 개봉을 확정했다.
봉준호 감독은 20일 오전 서울 용산구 CGV에서 열린 ‘미키17’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개봉일 변동은 나도 정말 흥미로웠다. 내 영화 중에 개봉 일정 변경이 안 된 영화가 한 번도 없었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개봉일을 변경하며 배급사들의 고민이 컸다. 이번엔 유난히 주목을 받아서 그런지 관심이 더 큰 것 같다. 할리우드 상황도 그렇고 많은 할리우드 영화들이 개봉일이 바뀌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복잡한 상황이 엮여 있었다. 재편집을 하거나 재촬영을 하지는 않았다. 감독 최종권으로 계약이 되어있던 작품이다. 워너브러더스도 나를 존중해줬다. 여러 외적인 요인 때문에 변화가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개봉하게 돼 기쁜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미키 17’은 봉준호 감독이 2019년 ‘기생충’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상인 작품상 포함 4관왕을 차지한 이후 내놓는 첫 작품이다.
영화 ‘미키17’은 원작 소설 ‘Mickey7’(에드워드 애슈튼 저)을 기반으로 한 작품으로, 클론 인간과 생존이라는 독특한 주제를 탐구한다. ‘미키17’은 미래를 배경으로 얼음 행성을 식민지화 하기 위해 파견된 인간 탐험대의 일회용 직원 ‘익스펜더블(복제 인간)’의 이야기를 그린다.
익스펜더블이 된 ‘미키’는 17번 새롭게 프린트 되고, 17번째 미키가 죽은 줄 알고 프린트 된 18번째 미키와 17번째 미키가 만나게 된다는 게 영화 골자다.
봉준호 감독은 “주인공이 불쌍하다. 미키의 직업 자체가 반복적으로 죽어야 한다. 죽을 가능성이 높은 임무를 받는다. ‘미키17’은 열 일곱번 죽었다는 뜻이다. 죽을 때마다 새롭게 출력이 된다. 기존의 클론과는 상당히 다르다. 프린트에서 서류 뽑든 인간이 출력된다. 그 자체가 비인간적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원작 소설 ‘미키7’인데 핵심 콘셉트도 휴먼 프린팅이었다. 매번 출력되는 분이 로버트 패틴슨이다. 이 분이 출력된다고 생각하면 보기만해도 가슴 아프다. 극한에 처한 노동자 계층이다. 계급의 문제도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다고 본다. 영화가 거창하게 계급간의 투쟁을 다룬다는 정치적인 깃발을 다룬 것은 아니고, 미키가 얼마나 불쌍한지, 어떻게 힘듦을 헤쳐 나가는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재밌지 않을까”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원작은 7번 죽이는데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더 일상적으로 더 다양한 죽음을 통해, 출장을 10번 더 나가 노동자의 느낌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미키17’ 주연은 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뒤 ‘테넷’ ‘더 배트맨’으로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로버트 패틴슨이 맡았다. 지난해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로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한국계 배우 스티븐 연과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헐크로 사랑받은 배우 마크 러펄로도 출연한다.
로버트 패틴슨은 “자신감이 하나도 없는 캐릭터인데 자신에 대한 연민은 없다.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있는 캐릭터다. 이런 큰 규모의 영화에서 보기 힘든 캐릭터다. 감독님의 유머가 작품에 잘 담겨 있다는 게 굉장히 매력적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처음엔 개를 연기한다고 생각했다. 제게 버릇이 나쁜 개가 있는데 항상 교육이 안 됐다. 배변 운동이 안 돼 매일 훈련을 시켰는데, 그럴 때마다 배를 뒤집더라. 이게 미키랑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벌을 내려도 변하지 않는 거다. 그런 것처럼 미키도 17번을 죽어야 깨닫는다”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정말 즐겁게 촬영했다. 즐겁게 촬영한 만큼 기대가 되는 영화다. 관객들이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khd998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