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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배우를 그만두려고 한 적도 있어요. 2년 정도 일이 없어서 버티는 게 힘들었거든요. 영화 ‘써니데이’ 주인공 선희가 겪는 아픔도 그래서 더 잘 이해가 갔던 거 같아요.”
정혜인이 배우 생활을 접으려 했던 건 일이 없어서였다. 그것도 맡은 배역으로 인한 것이기에 아픔이 컸다. 김수현, 이민호 등과 대형 CF를 찍으며 주가를 한창 드높이고 있던 터였다. 악역을 맡은 뒤 이미지 탓인지 광고가 ‘뚝’ 끊겼다. 이후 작품들도 캐스팅이 불발됐다. 원치 않는 휴식기에 들어갔다.
정혜인은 지난 13일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에서 “연기를 못해서 정혜인이라는 배우를 안 썼다고 제 스스로 많이 비난했다. 실제로 현대무용 탄츠플레이 강사가 되려고 했다”며 “당시 선생님이 저를 나무랐다. 배우를 계속하라고 응원해 준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고 감사함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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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개봉하는 영화 ‘써니데이’는 슈퍼스타 오선희(정혜인 분)가 배우자의 사기와 불륜으로 하루 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이야기를 다룬다. 고향 완도로 돌아와 첫사랑 동필(최다니엘 분)을 만나 인생을 ‘리스타트’ 할 채비를 갖춘다. 배우로서 부침을 겪은 정혜인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선희도 고향에 내려가서 첫사랑을 만나 용기를 얻잖아요. 저도 옆에 있던 사람들 덕분에 다시 일어설 용기가 생겼어요. 그동안 강한 액션 연기를 많이 하다보니 이런 로맨스도 하고 싶었고요.”
‘다시 일어설 용기’는 SBS 축구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찾았다. 팀 ‘액셔니스타’ 배우들과 동고동락하며 얻은 감정이 밑거름이 됐다. 햇수로 벌써 5년이다. 이미도, 최여진, 이영진, 이혜정에 이어 5번째 주장을 맡았다. 팀내 최다출장(30경기), 최다 득점(23골), 최다 도움(8어시스트)을 기록하며 불세출의 공격수로 자리매김한 건 노력과 재능이 결합한 덕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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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혜컴’(혜인+데이비드 베컴)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킥 자세는 선수출신 못지 않은 완벽한 폼을 자랑한다. 정혜인은 “배우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던 시기에 자신감과 용기를 준 프로그램이다. 30대 초반, 여자 배우가 마음이 술렁일 수 있는 시기를 건강하게 버티게 해줬다”며 “비시즌에도 항상 실력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 그 시간들은 늘 만족감을 늘 줬다”고 웃어 보였다.
정혜인은 헤어 스타일에 따라 각기 다른 팔색조의 매력을 보여준다. KBS ‘저글러스’(2017)에서는 보이시한 톰보이 스타일로, OCN ‘루갈’(2020)에서는 카리스마 있는 강력팀 형사로 확확 변신했다. 숏컷과 긴 머리 차이가 너무 커서 못 알아볼 정도다. 머리를 숏컷보다 약간 길게 유지하는 것도 붙임 머리를 통해 각기 다른 배역에 맞춤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다.
“매 순간 만나는 캐릭터를 통해 계단 올라가듯 연기를 하고 싶어요. 축구 예능에서 보여준 것처럼 제 한계를 계속 깨면서 말이에요.”
먼 길을 돌아왔다. 정혜인의 ‘써니데이’도 그리 멀지 않았다. socool@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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