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문학=장강훈 기자]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예상대로다. 자동 볼판정시스템(ABS) 시즌2는 ‘슬라이더 싸움’이다. 국내 넘버 원 ‘슬라이더 투수’로 장기집권 중인 김광현(37·SSG)의 시즌 첫 등판은 그래서 눈길을 끌었다.

김광현은 23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KBO리그 두산과 홈경기에 선발 등판했다. 전날 개막전에 10개 구단이 모두 외국인 투수를 선발로 내세운 것을 두고 “자존심 상한다”고 아쉬운 기색을 드러낸 김광현은 이날 5.2이닝 동안 마운드를 지켰다.

안타 7개와 볼넷 2개를 내주고 2실점 했지만, 삼진 8개를 솎아내며 에이스다운 투구를 했다. 투구수가 99개에 달하지 않았더라면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는 너끈히 해냈을 구위였다.

경기 전 만난 SSG 이숭용 감독은 “ABS가 지난해보다 낮아져서 슬라이더나 커브를 ‘잘던지는 투수’가 무척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홈플레이트 밑변부터 꼭짓점을 통과하는 과정에 3단계에 걸쳐 ABS존 통과 여부를 결정하는데, 키 180㎝ 타자를 기준으로 지난해보다 1㎝ 낮아졌다. 각 큰 커브는 타자 허벅지 아래에서부터 떨어져 발목 부근에서 포수 미트에 들어가도 ABS상으로는 스트라이크로 인정된다.

손목을 비틀어서 던지는 커브에 비해 속구처럼 던질 수 있는 슬라이더 활용가치가 더 높게 평가된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흐름은 슬라이더가 옆이 아닌 아래로 예리하게 휘는 쪽으로 변했다.

김광현은 국내 최고 슬라이더 투수다. 고속 슬라이더는 컷패스트볼처럼 빠르게 휘면서도 아래로 살짝 떨어지는 궤적이다. 시속 120㎞까지 구속을 떨어뜨릴 수 있는 일명 ‘횡 슬라이더’도 구사한다.

타자 무릎 높이로 속구를 던진 뒤 같은 곳으로 슬라이더를 구사하면, 타자로서는 배트를 참기 힘들다. ABS는 좌우 폭은 지난해와 같으므로, 훨씬 공격적인 투구를 할 수 있다. 이 감독이 “김광현에게 유리한 스트라이크 존”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

운신의 폭이 한층 넓어진 김광현은 이날 99개 중 슬라이더만 44개를 던졌다. 최고시속 147㎞까지 측정된 빠른 공에 110㎞까지 구속을 떨어뜨린 커브를 가미해 두산 타선의 타이밍을 흔들었다. ‘커브도 던진다’는 인식을 두산 타자들에게 심어준 것도 ‘광현표 슬라이더’를 돋보이게 한 배경이 됐다.

KBO리그는 2000년대 후반 이른바 ‘슬라이더 전성시대’를 구가했다. 김광현과 양현종, 윤석민(KIA) 윤성환(삼성) 등으로 대표되는 당시 영건들이 예리한 슬라이더를 앞세워 ‘투고타저’ 현상을 끌어왔다.

그때처럼 투수 천하가 될 가능성은 낮아보이지만, 볼 배합의 미학을 만끽할 시즌으로 만들 여지가 생겼다. 김광현의 역투가 단순하게 보이지 않는 이유다. zzang@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