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민규 기자] “사장이 선발 개입요? 망하는 지름길이죠.”

스포츠구단 대표가 선수 출전에 개입하는 게 맞을까.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세계적인 e스포츠 명문 구단 T1 얘기다. 종목을 불문하고 스포츠업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종의 ‘월권’이자, 영역 침범이라 꼬집었다.

논란의 발단은 이렇다. T1 조 마쉬 최고경영자(CEO) 2025 LCK 정규시즌 로스터 발표와 함께 팬들에게 보낸 글에서 “‘구마유시’ 이민형 선수를 2025 LCK 정규시즌 주전 라인업에 포함해달라고 요청했다. CEO로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회사의 발전을 위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나의 임무”라고 밝혔다.

대표가 특정 선수를 주전 라인업에 넣어줄 것을 요청한 게 문제가 됐다. 엄연히 현장과 프런트의 역할은 다르다. 야구, 축구 등 어느 프로 스포츠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상호 존중의 문제다. 사·단장은 구단 경영에 책임을 진다. 선수 기용과 라인업은 현장에서 감독·코치가 가장 존중받아야 하는 영역 중 하나다. 그런데 조 마쉬 CEO가 자신의 ‘영역 침범 행위’를 권한인 마냥 포장해 만천하에 공개한 것이다.

스포츠업계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놀란다. 야구계 한 관계자는 “심각한 상호 존중의 문제다. 분명 프런트와 현장의 역할은 구분돼 있다. 프로 스포츠라면 더 명확하다”며 “스포츠 구단의 장이 공개적으로 글을 쓴 것은 상식에 벗어난 행동이다. 프런트 간섭은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비판했다.

축구계 한 관계자도 “요즘 세상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다. 시대에 역행하는 것 아닌가”라고 되물으며 “e스포츠가 아직 덜 성숙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사실 ‘구마유시’의 주전 기용 여부는 ‘LCK 컵’부터 T1 팬들의 뜨거운 감자였다. 당시 T1은 피어리스 드래프트 도입 후 ‘구마유시’ 대신 신인 ‘스매쉬’ 신금재를 기용해 대회를 치렀고. ‘구마유시’ 팬들은 트럭시위 등을 펼치며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그리고 정규시즌을 앞두고 ‘구마유시’와 ‘스매쉬’ 중 누가 주전이 될지 다시 논쟁이 일어났다. 지난달 T1 정희윤 단장이 “코치진과 논의해 주전 로스터 5인을 확정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약속을 뒤엎은 장본인이 조 마쉬 CEO다.

스포츠에서 주전은 곧 경쟁이다. ‘생존’을 위해 구슬땀을 흘린다. 조 마쉬 CEO의 비상식적인 글로 누군가는 큰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누구보다 팬들이 더 잘 알고 있다. 24일 T1 팬 5874명은 공동 성명서를 통해 조 마쉬 CEO의 팀 운영을 강하게 비판하며 사퇴를 촉구했다.

팬들은 “CEO의 개입은 스포츠 정신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이며, 프로 스포츠에서 선수 기용과 전략 수립은 감독과 코치진 고유 권한이어야 하며, 경영진이 이를 좌우해서는 안 된다”며 “선수 선발은 실력에 기반해야 하며, 개인적인 감정이나 충성심을 기준으로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팬들은 “이번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경기 티켓 구매 보이콧, 공식 상품 구매 중단, 스폰서 기업 항의 등 실질적인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kmg@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