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 악녀가 무대로 간다…인간 고독을 연기로 관객 눈물샘 자극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목욕탕에서 등짝을 맞은 적도 있어요. 너무 독하게 나와서요.”
배우 이주화(53)는 드라마 <사랑과 전쟁> 시절의 일화를 웃으며 떠올렸다. 친구 남편을 뺏고, 남편을 때리고, 의부증에 빠진 여인까지.
이주화는 억울하게 당하는 역할도 꽤 맡았지만, 악녀 역할이 더 인상적이었을까. 그녀는 국민 악녀로 불리며 수많은 시청자의 뇌리에 깊이 각인됐다.
“어느 날 목욕탕에서 한 아주머니가 ‘그렇게 살면 안 된다’며 등을 탁 치시더라고요. 결혼도 안 했을 땐데 말이에요.”
이처럼 TV에서의 악역은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선택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이주화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한국 전통 양식으로 풀어낸 연극 <눈먼자들>에서 무대에서의 첫 악역, ‘가화공주’(원작:고너릴)를 연기한다.
“TV는 중독성, 연극은 진심…이번 악역은 인간의 이야기입니다”
KBS2 <사랑과 전쟁>은 한국 사회의 결혼과 이혼을 리얼하게 담으며 한 시대를 풍미한 드라마다.
이주화는 이 작품을 통해 단골 악역 배우로 자리매김했지만, 동시에 “결혼도 안 했을 때였지만, 사람들이 저를 현실처럼 느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이번 연극 <눈먼자들>에서의 가화공주는 조금 다르다. 이주화는 이 인물을 “사랑을 갈망했지만, 그 결핍이 권력욕으로 변한 여인”이라 말한다.

“가화공주는 단순한 악인이 아닙니다. 사랑받고 싶었던 딸, 아이를 갖고 싶었던 여인, 결국은 외로운 사람이죠. 그 고독을 온몸으로 연기하고 있어요.”
카메라 없는 무대 위, 악역은 더욱 깊어질 예정이다. 이주화는 이번 무대에서 ‘클로즈업이 없는 악역’의 진수를 보여줄 예정이다.
“드라마는 눈빛 하나로도 감정을 전달할 수 있지만, 무대는 전체로 설득해야 해요. 내가 클로즈업이고, 내가 조명이죠.”
이번 연극은 카메라의 도움 없이, 배우의 숨결과 몸짓으로 감정의 흐름을 이끌어야 하는 작업이다.
이주화는 “악역이기 때문에 더 어렵지만, 동시에 더 깊이 있는 인간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며 오히려 설레는 마음을 내비쳤다.
악역이니까 가능한 공감을 통해, 미움보다 울림을 전하고 싶은 바람이다.
이주화는 “악역은 관객이 처음엔 미워하다가도, 나중엔 ‘혹시 나도 저런 마음 있었나?’ 돌아보게 만들 수 있어요. 그게 진짜 연기 같아요”라며 “가화 공주에 대해 “독하고 외로운 사람의 마지막 눈물”이라 표현한다.
이주화는 이번 무대에서 등짝 스매싱을 유발했던 ‘사랑과 전쟁’ 속 악녀와는 다른, 슬픔과 결핍을 품은 인간의 얼굴을 보여주고자 한다.
TV 화면 너머에서 강렬했던 그녀의 얼굴이, 이번에는 무대 위에서 조용히 그러나 깊게 관객의 심장을 두드릴 예정이다.
‘눈먼자들’은 오는 4월 11일 오후 7시, 삼척문화예술회관에서 첫 막이 오른다.

◇연출 및 출연진
연출 최영환, 조연출 김유정, 리어왕(신황철), 가화공주(이주화) 고지식대감(류창우) 지건장군(이원희), 바보광대(고도은), 교화공주(전희수), 선화공주(황지원) 고지필(고형준), 고복검(박휘남), 내관(김진철), 집사 (김호준), 춤 (배수현) 호위무사 (이창진, 조용기, 정택수, 이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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