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웨스트엔드·서울 동시 공연 중
‘화려함’서 끝나지 않는 볼거리…시각·청각 ‘호강’
사랑의 세레나데 ‘For Her’ ‘My Green Light’, 축가 접수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한국이 만든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가 한국 최초이자 아시아 최초로 미국 브로드웨이에 이어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까지 점령했다.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프리뷰 공연은 물론 개막 공연까지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K-뮤지컬의 저력을 뽐내고 있다.
이젠 서울이다. 지난 8월1일 한국에 상륙한 ‘위대한 개츠비’는 화려한 무대와 터질듯한 감성으로 국내 관객들의 궁금증 해소와 함께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내고 있다. 공연 예매율 150%로 “제발 공연 좀 보게 해달라”는 웨스트엔트 관객들의 단계까진 아직 오르진 못했지만, 매회 매진에 가까운 기록을 이어가며 흥행궤도에 진입했다.
한 작품이 브로드웨이·웨스트엔드·서울 3개 도시에서 동시 공연 중인 건 ‘위대한 개츠비’가 최초다. 이 역시 작품이 가진 또 하나의 뮤지컬 역사다. 한국인 프로듀서인 오디컴퍼니 신춘수 대표가 자기들만 장악력을 행세하던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 과감하게 도전장을 던졌고, 이게 받아들여졌다. 브로드웨이를 빠르게 접수한 ‘위대한 개츠비’는 세계 초연 일 년 만에 뮤지컬의 메카 웨스트엔드에서도 중심인 런던 콜리세움에서 새로운 장을 열었다.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 대표 고전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원작으로, 올해 100주년을 맞아 그 의미가 더 깊다.
작품명을 듣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다. 그만큼 영화 속 그의 등장이 강렬했기 때문이다. 그 장면이 뮤지컬로 재탄생해 새로운 ‘돈’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바로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다. 소설, 영화와 또 다른 매직이다.
작품성·배우·무대 등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물론 혹평도 있다. 하지만 이건 ‘개인 취향’이거나 어느 분야에나 있는 ‘텃새’로 보인다. 브로드웨이 개막과 동시에 ‘원 밀리언 클럽’에 입성한 ‘위대한 개츠비’는 주당 매출액 260만 달러(한화 약 36억 원)를 돌파하며 K-뮤지컬의 ‘입덕’을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 매일 밤 브로드웨이·웨스트엔드·서울의 7000여 객석을 채우는 관객들이 증명하고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대작의 예고편에 불과하다. 어둡잖은 시기와 질투를 털고, 그만 고집부려도 될 듯하다.

◇ 주인공이 7명? 각자 독보적 존재감 폭발
‘위대한 개츠비’를 직접 보지 않고, 그저 그런 뻔한 ‘러브 스토리(Love Story)’라고 단정 짓는다면 오산이다. 이는 주인공 ‘개츠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를 비롯한 작품 속 주요 인물들의 서로 다른 사랑의 감정을 이야기한다.
작품명에 ‘개츠비’가 들어있다고 해서 주인공에게만 관심이 쏠리기엔 전 배우들의 실력과 매력이 아깝다. 각 도시 상황에 따라 아주 작은 차이는 있지만, 3개 무대 모두 브로드웨이 대표 배우들이 오르고 있다. ‘위대한 개츠비’는 주인공이 7명이라고 말할 만큼, 주·조연의 경계를 완벽하게 허문다.
‘개츠비’가 사랑한 ‘데이지 뷰캐넌’, 그의 유일한 친구 ‘닉 캐러웨이’를 비롯해 비극의 설계자 ‘머틀 윌슨’, 사랑의 바보 ‘조지 윌슨’과 사랑과 부딪히는 ‘조던 베이커’, 피폐한 사랑만 하는 ‘머틀 윌슨’ 등이 각자 다른 서사를 이야기한다. 두 얼굴의 앙상블이 표현하는 심리전도 볼거리다.
‘개츠비’에게서 오랫동안 간직해온, 죽어서도 잊지 못할 ‘해바라기’ 사랑을 본다. 동시에 인연과 집착의 선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도 일깨워준다. 시대적으로는 100년이 지나도 여전히 현재진행 중인 각자의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이 가진 꿈과 희망의 가치도 돌아본다.
하지만 그의 최후는 너무도 외롭고 쓸쓸하다. 절망과 죽음 앞에선 어두움만 있었던 ‘개츠비’에게서 화려함과 사치에 가려진 인간 내면의 밑바닥을 발견한다.
순정을 배신으로 답한 ‘데이지’에게 배신감도 들지만, 현실을 직시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억지로 이해하게 된다. 이래서 ‘산 사람은 살아야지’ ‘죽은 사람만 억울하다’라는 말이 있는가 보다.
앙상블에게서는 인간의 이중성이 보인다. 화려한 파티를 여는 돈 많은 ‘개츠비’를 ‘친구’라고 불렀으면서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우정은 살아있을 때 지키는 것”이라며, 죽으면 그 의미는 퇴색된다.

◇ 듣는 순간 경건함 장착…두 손 모으게 하는 사랑의 세레나데
결혼식 단골 축가인 ‘지금 이 순간(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은 홍광호·신성록·최재림·전동석·김성철 등이 달달하게 불러 감미롭게 들리는 것이지, 사실 신에게 감히 도전하는 인간의 행진곡이다.
오랜 익숙함에 심취해 있는 지금, ‘위대한 개츠비’가 심장에 녹아드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의 ‘러브송(사랑가·축가)’을 노래한다.
‘위대한 개츠비’의 ‘For Her’과 ‘My Green Light’는 말 그대로 애절하고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두 곡 모두 감미로운 멜로디로 시작해 절정에서 풍성한 오케스트라 선율로 감수성을 폭발시킨다.
평생 ‘데이지’를 그리워하는 ‘개츠비’의 솔로 넘버인 ‘For Her’는 그녀의 이름을 수차례 외치며 진심을 털어놓는다. ‘개츠비’에게는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앞으로 ‘데이지’와 함께 펼쳐나갈 앞날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담겨있다.
재회 후 두 사람만의 공간에서 사랑을 나누는 ‘개츠비’와 ‘데이지’가 함께 부르는 듀엣곡 ‘My Green Light’는 현실을 부정하고 오직 둘만의 사랑 고백을 속삭인다. 절대 닿지 않을 것 같던 두 손이 서로 맞잡는 순간이다.
이 밖에도 화려한 파티의 클라이맥스를 이끄는 ‘Roaring On’ ‘New Money’ ‘La Dee Dah With You’ 등의 넘버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춤추게 만드는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한다.
빠르면 2026년 한국 배우들로 캐스팅한 ‘위대한 개츠비’가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이미 입소문을 타면서 배우들이 알게 모르게 오디션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신춘수 대표는 ‘이름값’으로 배우를 이 무대에 세우지 않겠다고 개인적으로 선언한 상황. 해당 넘버들이 어렵다고 소문났지만, 그만큼 아름다운 선율에 따라 자유자재로 진성과 가성, 높은 음역을 넘나든다면 ‘멋짐’은 배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 눈물로 벅차오르는 화려한 금빛 향연
‘위대한 개츠비’를 소개할 때 ‘화려함으로 승부한다’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작품에서 중요한 건 단순히 화려함만 내세우는 화제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돈만 쏟아부은 화려함과는 차원이 다른, 입 떡 벌어지는 게 눈부시다.
부(富)의 상징을 이보다 완벽하게 해석할 수 없다. 작품은 시각과 청각을 극대화해 감각 세포를 시도 때도 없이 자극한다. 말 그대로 소름 돋는다.
볼거리도 풍성하다. 이 중에서도 기자간담회 때마다 언급된 ‘K-바이브’가 느껴지는 군무가 인상적이다. 스윙 댄스부터 탭댄스, 스트리트댄스까지 앙상블의 완벽한 호흡이 무대를 장악한다. 여기에 화려한 조명과 의상이 더해 금빛 향연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보통 앙상블 무대에서 한 명이 튀기 쉽지 않은데, ‘위대한 개츠비’에서는 신기하게도 배우 한 명 한 명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혼자 튀지 않는다는 게 더 놀랍다. 에너지가 좋다. 1920년대 댄스를 100년 후의 눈으로 보면서 리믹스한 고난이도의 스텝에 K-군무와 K-바이브가 녹아있다. 마치 한 편의 디너쇼를 보는 듯하다.
특히 ‘New Money’는 틱톡에서 챌린지(challenge)로 유행 중이다. 재밌는 건 이를 처음 시작하고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는 이들이 바로 관객들이라는 것. 관객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챌린지를 배우들이 따라할 정도로 인기다.
반짝이는 의상은 화려한 샹들리에 조명에 반사돼 부와 사치에 현혹되게 만든다. 하지만 이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고 파티의 즐거움을 더욱 눈부시게 빛낸다. 무대 중 깜짝 의상 체인지(Change) 장면도 있으니, 눈 크게 뜨고 감상하는 것을 추천한다.
무대에 내포된 의미도 흥미롭다. 온통 금빛으로 뒤덮인 휘황찬란한 ‘개츠비’의 저택과 쓰레기 더미에 파묻힌 주유소의 정반대 환경을 통해 빈익빈 부익부 삶을 직설적으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개츠비’의 저택 앞 강 건너 멀리서 수신호를 보내듯 초록 불빛은 처음부터 끝까지 희미하게 깜빡인다. ‘개츠비’가 떠나도, ‘데이지’가 없어도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생명력을 이어간다.
세심함을 장착한 음향에 여러 감정이 휘몰아친다. 시작 전 관중들의 목소리 사이로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무대를 뚫고 점점 공연장을 뒤덮는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뱃고동 소리, 가끔 끼룩끼룩하는 갈매기 소리가 추임새를 놓는 듯 신바람을 불러일으킨다. 검푸른 바다의 적막을 깨는 시원하고도 잔잔한 파도는 갑자기 휘몰아쳐 공연장을 집어삼킬 것 같은 소리를 내기도 한다. 화려하게 살다간 ‘개츠비’의 영혼이 갈매기에 깃든 것처럼 울어댄다.
사랑은 운명에서 시작된다. 그 끌림이 무엇이든 만날 사람은 반드시 만난다는 것. 외모, 지위, 환경으로는 둘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다고 작품은 강조한다.
한편 프리뷰부터 관객들의 환호와 함께 ‘개츠비’의 삶처럼 화려한 무대를 이어가고 있는 ‘위대한 개츠비’는 오는 11월9일까지 서울 강남구 GS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gioia@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