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서지현 기자] ‘기억을 채워주는 연인’이라는 설정은 애틋하지만, 영화가 남기는 감정은 예상보다 가볍다. 영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이하 ‘오세이사’)는 여름날의 청춘 로맨스로서는 반짝이지만, 그 이상의 깊이를 기대하기엔 한 걸음이 부족하다.

‘오세이사’는 교통사고 이후 매일 하루의 기억을 잃는 서윤(신시아 분)과 그런 서윤의 하루를 행복으로 채워주고 싶은 재원(추영우 분)의 이야기를 담은 청춘 멜로다. 이치조 미사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24일 개봉한다.

전반부의 분위기는 풋풋한 청춘 멜로의 정석이다. 여름의 햇빛이 스며든 교정과 골목, 교복 차림의 또래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화면은 청춘 영화 특유의 청량한 계절감을 충실히 담아낸다. 서윤과 재원이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서히 가까워지는 과정은 과장되지 않고, 일상의 작은 순간들로 채워진다.

이러한 전개는 첫사랑의 감정을 떠올리게 하지만, 동시에 한계를 드러낸다. ‘오세이사’는 단순한 청춘 로맨스에 머물기에는 설정이 무겁다. 그런데 영화는 청춘 로맨스의 분위기에 지나치게 기울어, 핵심 소재인 ‘기억상실’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 더불어 데이트신은 설렘만 유발할 뿐, 잔잔한 톤이 지속되며 높낮이가 부족해 중반까진 단조롭게 느껴진다.

추영우가 연기한 재원은 서윤의 하루를 행복으로 채워주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분명한 진심이 느껴진다. 그러나 연기의 결이 지나치게 성숙하다. 10대 소년이 지닐 법한 미숙함이나 감정의 흔들림보다는, 이미 감정을 정제할 줄 아는 성인 연기자의 태도가 먼저 보인다. 특히 심장병을 앓고 있다는 설정과 달리 건장한 체격과 에너지가 화면을 채우면서, 인물의 서사와 외형 사이에 묘한 괴리감이 형성된다.

이 괴리는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두드러진다. 심장병을 중심으로 급격히 전개되는 이야기는 앞서 쌓아온 청춘 로맨스의 톤과 완전히 맞물리지 못한 채, 오히려 갑작스러운 붕괴처럼 다가온다. 눈을 감았다뜨니 새로운 챕터가 시작되는 느낌이다.

중·후반부에서 서윤의 기억상실과 재원의 심장병은 각각 극적인 장치로 기능하지만, 전반부에서 보여준 청춘 로맨스의 결 위에 무거운 설정이 급작스럽게 얹히며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신시아가 연기한 서윤은 풋풋하고 싱그러운 비주얼로 캐릭터의 첫인상을 효과적으로 구축한다. 그러나 선행성 기억상실증이라는 복합적인 감정 상태를 표현하기에는 연기의 폭이 다소 제한적이다. 서윤이 겪는 감정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매일 세상이 낯설어지는 불안과 공포에 가깝다. 하지만 불안과 혼란, 슬픔이 충분히 표출되지 못하면서 감정 연기의 결이 비교적 단조롭다. 특히 후반부 눈물 신에서는 관객에게 깊게 체감되지 않는다.

오히려 조연으로 출연한 친구들이 인상적이다. 태훈 역의 진호은과 지민 역의 조유정은 극에 과하게 개입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또래 케미를 완성한다. 큰 분량은 아니지만, 이들의 존재 덕분에 극 속 인물들은 설정 속 캐릭터가 아니라 실제로 학교 안에 존재하는 10대처럼 느껴진다. 친구들과의 대화와 무심한 농담들은 영화가 구현하려는 청춘의 질감을 현실적으로 받쳐준다.

‘오세이사’는 알콩달콩한 순간과 꽁냥꽁냥한 케미스트리만큼은 분명 사랑스럽다. 그러나 그 이상의 깊이를 기대한다면 부족함이 느껴진다. ‘기억은 사라질 수 있어도 감정은 남는다’는 명제를 끝내 설득해내지 못한 채, 영화는 안전한 감성의 영역에 머문다. sjay0928@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