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눈이 이미 단단히 화가 나 있다. 입은 굳게 다물었다. 조금도 타협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겨우 1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첫 등장, 배우 조유정은 영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이하 ‘오세이사’)에서 연기한 지민의 캐릭터를 굳은 표정과 얼마 되지 않는 대사로 모두 표현했다. 함축의 미학을 가진 영화에 매우 적절한 연기였다.
지민은 자고나면 기억이 모두 사라지는 서윤(신시아 분)의 진짜 친구다. 가족 외에 서윤의 비밀을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다. 서윤이 깊은 상처라도 받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에 보호자의 사명감으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장난으로 시작된 재원(추영우 분)의 서윤을 향한 고백이 자못 진지해지자 직접 막으려고 다가가는 게 지민의 첫 장면이다. 슬픈 사랑의 서사는 지민의 얼굴로부터 시작됐다.
조유정은 최근 스포츠서울과 만나 “단호하고 차가운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서윤 외에는 고양이처럼 경계하는 듯한 얼굴을 그려내려고 했다. 말투나 톤, 표정 모두 그러려고 했다. 저에겐 도전이기도 했다. 저는 그렇게 단호한 성격이 아니다. 그래서 더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실제 말투도 리드미컬하다. 마치 노래를 부르는 듯 운율이 있다. 전작인 ‘청춘기록’이나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에서 보면 그 귀여움이 인물에 녹아 있다. ‘오세이사’에선 완전히 딴 판이다. 쉽게 웃지 않는다. 눈은 늘 찡그린 상태다.
“딱딱하고 끊는 말투를 연습했어요. 작년에 보컬 레슨을 받았는데, 그때 목소리 톤도 잡았어요. 계속해서 녹음해서 감독님에게 여러 버전을 보내기도 했어요. 촬영 두 달 전부터는 ‘오세이사’밖에 없었어요. 올인을 했다고 봐야죠. 취미 중에 하나가 걷기 인데 10km를 걸으면서 계속 대사를 중얼중얼하고 그랬어요. 몰입의 시간이 있었죠.”
절박했던 것이다. 연기에 대한 갈증이 클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이후 작품 제안이 없었다. 업계가 워낙 어려운 탓이다. 긴 공백을 지나 만난 작품이 ‘오세이사’였다.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죠. 절박했고, 오랫동안 기다렸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연예인이 되고 싶었어요. 가수였다가 개그우먼이었다가 그랬어요. 영화 ‘극비수사’를 보고 유해진 선배님의 연기에 푹 빠져서 연기를 시작했어요. 실존인물을 연기하는 모습에 꽂혔어요. 사실적으로 연기하고 싶었어요.”

배우가 작품이 없다고 아무 생각 없이 쉬다 보면 영원히 쉬게 된다. 끊임없이 자기 계발에 몰두해야 한다. 키가 크고 은근히 인상이 짙은 조유정은 액션을 대비했다. 사실상 운동인에 가까운 노력을 했다.
“헬스를 정말 열심히 했어요. ‘천국의 계단’을 40분 넘게 타요. 운동을 한 이유는 연기를 잘하기 위함이었어요. 제가 성실함과 집요함은 있거든요. 제게 연기는 지독한 짝사랑이에요. 너무 사랑해서 저를 가혹하게 만들어요.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까, 자책도 많이 했어요. 이제는 독기를 품은 것 같아요.”
그 절박함이 연기에 묻어나온다. 워낙 판타지 성향이 짙은 작품이라 개연성이 높진 않은 ‘오세이사’는 필연적으로 배우의 개인기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얼렁뚱땅 넘어가는 장면에 자연스러움을 넣는 건 배우의 몫이다.

“앙상블이 좋았어요. 추영우, 시아 언니, 호은이 모두 센스가 좋고 연기를 잘해요. 진짜 친구처럼 지냈어요. 그래서 어떤 순간에도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이렇게 행복하게 계속 연기하고 싶어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