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또 실패했다. ‘헤어질 결심’(2022)에 이어 2연패다. 박찬욱 감독 연출작 ‘어쩔수가없다’가 끝내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영화상 최종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미국 매체들은 이를 두고 ‘냉대(snubs)’라고 표현했지만, 냉정히 봤을 때 불운이 아닌 예견된 결과에 가깝다.

오스카로부터 외면받기 전 이미 대중의 반응이 싸늘했다. 그 기저에는 박찬욱 감독 영화 특유의 ‘시대상의 부재’가 있다.

2025년 개봉한 ‘어쩔수가없다’는 중산층의 불안을 다뤘다. 가족의 안위와 자신의 커리어를 지키기 위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가장의 이야기다. 미학적 완성도는 흠잡을 데 없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대중과 소통할 틈이 없다.

칸 국제영화제와 오스카 시상식을 휩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엔 비릿한 반지하 곰팡이 냄새가 났다. 그 악취가 전 세계의 폐부를 찔렀다. 반면 박찬욱의 세계는 완벽하게 통제된 ‘인공 정원’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벽지, 구김 없는 맞춤 정장, 현실에선 아무도 쓰지 않는 문어체 대사가 즐비하다.

아름답고 고상하나 숨 막힌다. 그 매끈한 유리벽 안엔 당장 월세를 걱정하고 취업난에 허덕이는 우리네 삶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2000년대엔 미학이었을지 몰라도, 생존이 화두가 된 2026년엔 그저 “배부른 예술가의 인형 놀이”로 보일 뿐이다. 관객은 공허한 아름다움보다, 거친 현실의 공감을 원한다.

박찬욱은 늘 윤리적 딜레마를 건드려 왔다. “복수가 구원인가?”(올드보이), “불륜도 사랑인가?”(헤어질 결심)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를 거장으로 만든 무기다. 하지만 문제는 질문의 깊이가 아니다. 질문이 발 딛고 있는 장소다.

‘어쩔수가없다’가 던진 엘리트의 불안은, 당장 내일을 걱정하는 수많은 대중 앞에선 ‘사치스러운 투정’에 불과하다. 그들의 위기가 사회적 의미가 없진 않으나, 대다수와 나눌 이야기는 아니다. 극히 일부에게만 통용될만한 주제다.

관객은 사유(思惟)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삶과 아무런 접점이 없는 이야기를 즐기는 걸 원치 않을 뿐이다. 봉준호가 계급이라는 시대의 환부를 찌르며 철학을 현실로 끌어당길 때, 박찬욱은 여전히 자신만의 성 안에서 고고한 문답을 이어가고 있다.

철학이 시대와 만나지 못할 때, 그것은 예술이 아니라 ‘독백’이 된다. 지금 박찬욱의 영화가 관객에게 피로감을 주는 건, 그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멀리 있기 때문이다.

오스카의 선택 기준 역시 명확하다. ‘기생충’은 계급 갈등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이민자 가족과 다양성을, ‘노매드랜드’는 경제 붕괴 속 유목민의 삶을 다뤘다. 하나같이 동시대의 가장 아픈 환부를 건드렸다.

칸 국제영화제나 오스카는 더 이상 메시지 없는 ‘탐미주의’에 트로피를 주지 않는다. 사회적 맥락이 거세된 채 미장센만 화려한 박찬욱의 영화가 최종 후보에서 탈락한 건, 오스카가 작금의 우리의 이야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거장으로 불린 박찬욱의 시계가 홀로 멈춰있는 건 아닐까. 통제된 세상에서 내려와 흙냄새 나는 현실의 거리로 내려오지 않는다면, 오스카도 관객도 돌아올 리 없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