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서지현 기자] “항준아, 드디어 네가 엄청난 흥행을 해보는구나!”(이준익 감독)
장항준 감독이 마침내 커리어 하이를 새로 쓰고 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가 설 연휴 극장가를 장악하며 장항준 감독의 커리어에 ‘하이’가 찍혔다.
‘왕사남’은 1457년 청령포를 배경으로 마을의 부흥을 위해 스스로 유배지를 선택한 촌장 엄흥도(유해진 분)와 왕위에서 쫓겨나 유배된 어린 선왕 이홍위(박지훈 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한국 영화 최초로 단종의 숨겨진 서사를 전면에 내세운 정통 사극으로, 지난 4일 개봉 이후 꾸준한 관객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설 연휴 대목을 정확히 겨냥한 ‘왕사남’은 개봉 2주 만에 누적 관객수 300만 명을 돌파하며 손익분기점(250만)을 가뿐히 넘어섰다. 개봉 3주 차에 접어든 현재도 기록 행진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지난 16일에는 하루 관객수 53만7190명을 동원하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설 연휴 일일 최다 관객수를 기록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이 같은 성과는 자연스럽게 장항준 감독의 ‘커리어 하이’라는 평가로 이어진다. 그동안 다양한 장르에서 자신만의 화법을 구축해 온 장 감독이지만 흥행 수치 면에선 매번 아쉬움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이번 작품은 단연 최고 기록을 경신 중이다. 실제로 개봉 전 이준익 감독이 “항준아, 드디어 네가 엄청난 흥행을 해보는구나”라고 건넨 덕담은 더 이상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흥행 요인 중 하나는 역사 속 비극의 아이콘으로 남아 있는 단종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이다. 후손들에게 여전히 ‘아픈 손가락’으로 남아 있는 인물을 중심에 둔 서사는 세대를 가리지 않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여기에 배우들의 힘이 더해졌다. 유해진은 극의 중심축을 단단히 붙드는 스토리텔러 역할을 수행한다. 엄흥도라는 인물을 통해 관객은 자연스럽게 이홍위를 바라보게 되고, 이야기에 깊숙이 이입하게 된다. 특유의 생활 연기는 사극이라는 장르에서 극을 이끄는 추진력이자 감정의 완충 장치다.
박지훈의 존재감 역시 인상적이다. 상대적으로 적은 대사에도 불구하고 묵직한 눈빛과 분위기로 왕의 위엄을 설득력 있게 구현한다. 초반부 무기력하고 상처 입은 소년 군주에서 후반부 범의 눈을 되찾는 순간까지의 변화가 대사보다 표정과 시선으로 전달된다.
물론 아쉬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개봉 초반 일부 관객들 사이에서는 호랑이 CG의 완성도와 위기 장면에서 사용된 천둥번개 연출 등에 대한 지적이 제기됐다. 다소 직관적이고 작위적인 표현이라는 평가도 뒤따랐다.
그러나 장항준 감독은 특유의 유쾌함으로 일관했다. 장 감독은 인터뷰 당시 “내가 연출을 정말 잘했으면 벌써 천만 감독이 됐을 것”이라며 “역사 왜곡이나 중국풍 논란 같은 지적을 듣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웃어넘겼다. 배우들의 연기력에 대한 호평에도 “그 배우들을 캐스팅한 것이 바로 나”라며 특유의 위트를 잃지 않았다. 자조와 자신감이 절묘하게 섞인 장항준식 화법이다.

‘왕사남’의 흥행은 또 다른 측면에서도 의미를 지닌다. 최근 극장가에서 상대적으로 도전적인 장르나 상업성이 강한 작품들이 주목받는 흐름 속에서 정통 사극이 관객의 선택을 받았다는 점이다. 결국 관객은 이야기의 힘과 감정의 진정성에 반응했다는 의미가 된다.
역사는 반복되고, 서사는 새롭게 해석된다. 오래된 이야기일수록 현재의 감각으로 다시 태어날 때 더 큰 울림을 남긴다. 덕분에 장항준 감독은 커리어 하이를 넘어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과연 ‘왕사남’이 어디까지 기록을 세울지, 그리고 이번 작품이 그의 필모그래피에 어떤 트로피로 남게 될지 극장가의 시선이 쏠린다. sjay0928@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