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스포츠서울 고진현 선임기자]불법 스포츠 도박의 ‘광풍’에 배구계가 또 다시 폭풍전야다. 현역 실업배구 선수가 지난해 연말 불법 스포츠도박과 관련해 자살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배구 모 실업팀 소속의 A선수는 구랍 28일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수도권 대학을 중퇴하고 지방 실업팀에서 활동 중인 A선수는 한달 전 결혼해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가 돌연 극단적인 선택을 해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다. 경찰은 타살의 혐의점이 없어 자살로 결론내렸지만 주변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A선수는 불법 스포츠도박과 관련해 끌어쓴 사채의 부담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A선수는 합법적인 스포츠토토가 아닌 사설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에 접속해 베팅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이 발행하는 합법적인 스포츠토토는 1인당 하루 베팅액을 10만원으로 제한하는 반면 사설 스포츠도박 사이트는 베팅액수가 무제한인 만큼 사행성과 중독성이 훨씬 심해 한번 빠지면 쉽게 헤어나오지 못한다. 스포츠계의 한 인사는 “운동 선수들이 승부욕이 남다른 만큼 사설 스포츠도박에 빠질 위험성이 크다”면서 “어린 선수들도 사설 스포츠도박에 상당히 많이 노출돼 있다”고 우려의 빛을 감추지 못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는 지난 2012년 사설 스포츠도박 시장 규모를 약 7조6103억원으로 추정했지만 형사정책연구원은 2013년 이 시장 규모가 31조원이 넘는다고 내다봤다.

A선수의 자살을 개인의 불행한 일로 그냥 넘겨버릴 수 없는 이유는 자칫 이번 사건이 사설 스포츠도박 베팅을 넘어 조직적인 승부조작과 연관돼 있을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배구계가 A선수의 자살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있는 까닭이다. 배구 선수가 사설 스포츠도박에 베팅을 하면서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배구를 제쳐두고 다른 종목에 베팅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상식이다. 또한 베팅한 대상경기에 뛰고 있는 동료 배구선수에게 접근해 승부조작을 벌였을 수도 있다는 개연성도 충분하다.

배구선수의 자살 사건은 2011년에도 있었다. 당시 상무소속의 B선수가 제대를 5개월 앞두고 휴가를 나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B선수가 승부조작에 깊숙이 관여돼 있다는 소문이 나돈 가운데 사건은 단순 자살로 종결됐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이듬해 3월 상무 선수들이 대거 연루된 프로배구 승부조작 사건이 터져 배구계는 쑥대밭이 됐다.

만사불여튼튼이라고 했다. 의혹에 휩싸인 사건을 개인의 불행한 일로 그냥 덮어버리지 않고 철저한 조사를 통해 더 큰 사태로 확대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것 처럼 불행한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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