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 (39)

[스포츠서울 조성경기자] 무더위가 급습한 여름 극장가에 이준익 감독의 새 영화 ‘변산’가 청량감을 한껏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변산’은 편의점과 발렛주차 아르바이트를 하고, 고시원 쪽방 생활을 하면서도 래퍼를 꿈꾸는 학수(박정민 분)가 학창시절 자신을 짝사랑했던 선미(김고은 분)의 전화 한통에 고향에 내려가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 좌절도 많고, 여전히 촌스럽지만 그래도 빛나는 청춘의 이야기로 관객들을 미소짓게 하기 충분하다. 특히 학수의 심경을 담은 내레이션을 박정민의 랩으로 표현하며 신선함을 준다. 또한 여주인공 김고은의 대사 “값나가게 살진 못해도 후지게 살진 말어”가 뇌리에 박히는 명대사다. 재기발랄한 청춘의 이야기를 하면서 값나가진 않더라도 후지진 않은 꼰대가 되려는 이준익 감독의 마음이 엿보였다.

이준익 감독 (38)

-전작인 ‘동주’, ‘박열’에 이어 청춘3부작이라는데, ‘변산’만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청춘3부작으로 묶은 건 마케팅적인 거지 내 의도가 아니었다. 또, 감독이 전작과 달라지는 건 필연이다. 감독이 가져가야하는 지향점은 전작에서 가장 멀리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작에서 멀리가지 않고 언저리에 있으면 매너리즘에 빠질거다. ‘네가 네것 우려먹냐’는 비난을 할것이다. ‘동주’와 ‘박열’도 시대가 유해서 그렇지 영화적 프레임에 있어서는 차이가 정말 크다.

-‘변산’은 제목부터 쉽지 않다. 촌스러운 분위기도 특이하다.

변두리 변자다. 변두리의 대척점인 청춘들의 힙합 이야기다. 홍대나 강남 어디서 해야할 청춘들의 시크하고 힙한 컬쳐가 저기 전라북도 부안에서 어떻게 어울어지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나로 하여금 이 영화를 찍게 하는 동력 중 하나였다.

그런데 다들 제목만 듣고 사극인 줄 알았다더라. 내가 전작들에 사극이 많아서 그런가보다. 관성의 법칙, 통념의 법칙이 무서운거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면 랩이 나오니 더 의아할 거다.

-영화의 상당부분이 랩으로 나와 신선하다. 그래도 내레이션인데 다 자막으로 넣어준 이유가 있나.

청춘들이 아닌 세대를 위한 거다. ‘꼰대’들 보라고 말이다. 우리는 랩 세대가 아니라 락 세대다. 랩과 락의 차이를 이 영화를 찍으며 정의내렸다. 둘다 저항과 자유를 외치는 건 공통되지만, 락은 공동체의 책임을 묻고 이념을 이야기하는 음악이었다면, 랩은 공동체의 폭력에 대해 비판한다. 학수는 자기 사연과 내면의 고백으로 랩을 하지 사회적인 고민은 없다. 락은 사회적인 고민이 한 개인의 고민을 통해서 울부짖는 거라면 랩은 지극히 개인적인 거다. 락을 좋아했던 부모세대, 꼰대들은 랩을 이해 못한다. 또, 랩으로 세상을 보는 청춘들은 아버지의 락에 관심이 없다. 그런데 이 영화를 통해서 그 접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약간의 소통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했다.

-랩을 영화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했나.

난 뭘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의지적인 인간이 아니다. 영화를 1년에 한편씩 하니 의지적인 인간으로 볼수 있는데 나는 의외로 그렇지 않다. 그리고 나는 나에 대한 확신이 없다. 그런데 영화를 계속 만든다. 나도 그런 내가 이상하다.

많이 준비하면서 엎는 영화도 많다. 오랫동안 여기저기 생각을 막 펼쳐놨던 게 어느 순간 매칭이 되면 영화가 되고, 관객들과의 소통의 결과에 큰 영향을 받는데, 특히 댓글을 보면서 내길을 찾는다. 악플에 답이 있다. 그러니까 내 의지가 없는거다.

임기응변으로 산다. 직관이라고 말해주기도 하지만, 그런 경쟁력 있는 단어를 써주는건 영화가 성공하니까 그런거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미화하는게 싫다. 과대포장 같고, 부도덕한 것 같다. 그냥 임기응변으로 하니까 이렇게 영화를 많이 찍는거다. 철저한 준비와 완벽한 설계로 한다면 어떻게 매년 영화를 찍겠나.

그래도 하나 확실한 건 나는 성실하고, 남의 이야기를 잘 듣는다는 것이다. 세상에 정답은 없다. 그런데 좋은 질문은 있다. 나는 좋은 질문을 좇는다. 그러면 답은 옆에서 다 이야기해준다. 난 답을 찾지 않고, 질문만 한다.

-그게 값나가는 꼰대가 되는 길일까.

철들지 않는거다. 인간은 태어나서 철드는 법을 배우고, 그러면서 꼰대가 된다. 그래도 나이가 40이 될때까지는 철이 드는게 좋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생활이 안된다. 나도 마흔까지는 철들게 살았다. 그러다가 이건 아닌 것 같았다. 이러다간 꼰대가 될거 같았다. 철든다는 건 꼰대가 되는 거였다.

그래서 철을 빼는거다. 어린아이처럼 사는거다. 여고생들이 낙엽 구르는 것만 봐도 웃는다고 하지 않나. 우리도 그렇게 낙엽 구르면 웃으면 된다. 인간의 천진성이 살며 죽기전까지 가져야할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청춘들의 흑역사를 보여준다. 어떤 의미를 주려는건가.

느끼게 해주려는 의미나 의도는 없다. 나는 재미만 있으면 된다. 의미라는 개념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이런 의도로 찍을거야 하면서 주는건 말이 안된다. 아주 나쁜 프로파간다다. 그냥 영화감독이 재미로 찍었는데, 관객이 이런 의미구나 하면서 보면 되는거다. 의미는 부여받는거다. 또, 영화감독이 받는게 아니라, 영화가 받는거다. 그리고 그 의미는 의미를 부여한 사람의 것이다.

우리가 창작물을 대하는 태도가 정말 성숙해야한다. 이준익 감독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내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찍을 때는 내가 책임질 영화지만, 극장에서 개봉하는 순간 그건 돈을 내고 시간을 내서 본 사람의 것이다. 나도 어릴 때 본 영화는 다 내 영화다. 내가 보고, 내가 간직한 내 영화다.

‘변산’에서 선미가 첫사랑을 정의하는 것도 그렇다. ‘그 사람을 사랑한게 아니라 그 사람을 사랑한 나의 마음을 사랑한 것이다. 그래서 첫사랑이 이뤄지지 않는게 첫사랑의 완성이다.’ 사람은 자기중심적이다.

-감독의 흑역사는 언제였나.

인생 전반이 흑역사다. 본의아니게 유명인이 됐을 뿐이다. 지금도 흑역사를 쓰고 있다. 살아있는 동안 입만 뻥긋하면 흑역사를 쓰는거다. 말하는 매순간이 흑역사다.

-은퇴선언도 했었다.

복귀한지 5년 됐다. 복귀하고 5편을 했다. 그래서 댓글이 계속 달린다. 그래서 반성한다. 죄송하다. 그래서 더 잘 찍어야한다는 사명감도 있다. 아니 그보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그래서 나를 버리고 남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게 되는 것 같다.

cho@sportsseoul.com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