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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희가 데이비스컵에서 맹활약을 한국팀 1그룹 잔류를 이끈 뒤 주먹을 쥐어보이며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스포츠서울 유인근 선임기자]청각 장애를 극복한 테니스 신동으로 일찌감치 주목받은 이덕희(20·서울시청)가 일취월장하며 정현을 이을 한국 테니스의 차세대 에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이덕희는 지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테니스 남자단식에서 값진 동메달을 따낸 데 2018 데이비스컵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예선에서 홀로 2승을 거두며 한국을 지역 1그룹에 잔류시키는 결정적 기여를 하는 등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덕희는 지난주 뉴질랜드와의 2018 데이비스컵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1그룹 예선 2회전 플레이오프(4단 1복식 3선승제)에서 홀로 2승을 따내 위기의 한국 대표팀을 구했다. 데이비스컵은 세계 16강으로 이뤄진 월드그룹에 이어 유럽·아프리카, 아시아·오세아니아, 아메리카 등 3개 지역별 1~4그룹 등으로 등급이 나뉜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패하면 2그룹으로 떨어지는데 정현이 빠지면서 2그룹 강등이 예상됐다.

하지만 한국에는 차세대 에이스 이덕희가 있었다. 그는 첫날 1단식에 나선 홍성찬이 호세 스테이덤에 패하자 2단식에서 나서 마이클 비너스를 2-1(7-5 6-7<6-8> 6-2)로 잡으며 종합전적 1-1로 균형을 맞췄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첫 경기로 열린 복식에서 홍성찬(21·명지대)-이재문(25·상무)이 뉴질랜드의 아르템 시타크-아지트 라이 조에 패해 종합전적 1승2패로 패배 위기에 몰리자 3단식에 나선 뉴질랜드의 간판 스테이덤을 2-0(6-4 6-1)로 제압하는 파란을 일으키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이덕희의 활약에 기세가 오른 한국은 마지막 4단식에서 임용규(27·당진시청)가 비너스에 승리해 종합전적 3-2로 8년 연속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1그룹 유지를 확정지었다.

이덕희 경기
이덕희의 데이비스컵 경기 모습.

이덕희의 활약은 정현이 지난해 9월 데이비스컵 2회전 플레이오프 한국-대만전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한국의 1그룹 잔류를 이끌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덕희는 지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도 동메달을 목에 걸어 2006년 도하대회 이형택의 은메달 이후 12년 만에 한국 테니스 아시안게임 남자단식 메달리스트가 되며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줬다.

이덕희는 일곱 살 때 처음으로 테니스 라켓을 잡았다. 귀가 안 들리는 대신 눈이 발달한 그는 특히 동체시력(움직이는 물체를 보는 능력)이 뛰어나다. 공 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상대의 스윙을 보고 공의 구질과 방향, 스피드를 예측해 빠르게 반응했다. 상대방이 공을 치기 전 팔을 뒤로 뻗는 백스윙 동작만 보고도 구질을 예측하는 능력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여기에 들리지 않는 핸디캡을 오히려 경기에만 몰두할 수 있는 장점으로 승화시켰다. 그런 노력으로 이덕희는 지난 2016년 7월 만 18세 2개월의 나이로 세계랭킹 200위권 안으로 진입해 정현이 갖고 있던 국내 최연소 200위권 진입 기록(18세 4개월)을 갈아 치우며 한국 테니스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장애를 극복했다고는 하지만 성인 무대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덕희는 지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보다 값진 동메달로 존재감을 알리더니 이번 데이비스컵에서 한국의 승리를 이끌어 다시 한 번 진가를 입증했다. 이런 이덕희에 대해 대한테니스협회 관계자는 “고등학교 졸업 뒤 성인무대에 올라 잠시 슬럼프에 빠졌지만 올해들어 더욱 단단해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테니스 선수 치고는 키가 작고 왜소한 편이지만 체력훈련을 통해 스피드와 지구력을 많이 끌어올렸고 샷도 더욱 날카로워졌다. 아시안게임 동메달 이후 자신감까지 장착해 성장하는 모습이 눈에 보일 정도”라면서 “이덕희가 지금의 상승세를 이어가 세계랭킹 100위안에 진입하다면 정현 홀로 고군부투하는 한국 테니스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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