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양양=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레전드와 넥스트 제너레이션이 어우러져 펼친 ‘설해원·셀리턴 레전드 매치’는 재미와 감동이 공존한 역사적인 장(場)이었다. 궂은 날씨에도 구름 관중이 몰리면서 대박 흥행으로 이어졌다. 다만 운영상의 ‘옥에 티’도 있었다.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 행사로 자리잡기 위해선 바로잡아야 하는 부분이다.
21~22일 강원도 양양 설해원 리조트 코스에서 열린 레전드 매치에서는 박세리(42) 한국 여자 골프 국가대표팀 감독을 비롯해 멕시코 국민영웅 로레나 오초아(38), LPGA 메이저 10승, 통산 72승 주인공인 아니카 소렌스탐(49·스웨덴), 열정의 골프 스타 줄리 잉스터(59·미국)가 레전드 선수로 참가,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스윙과 특유의 제스처로 감동을 끌어냈다. 여기에 박성현(26)과 렉시 톰슨(24·미국), 태국 간판스타 아리야 쭈타누깐(24·태국), 호주 교포 이민지(23) 4명의 현역 톱랭커가 가세하면서 세계 골프의 현재와 미래를 한국 땅에서 만끽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하루 티켓 가격이 12만원으로 일반 투어 대회와 비교하면 최대 5배 이상 비쌌지만, 참가 선수 가치와 희소성을 고려한 탓인지 일찌감치 양일 각각 2000장 가까운 표가 팔려나갔다. 둘째날 태풍 영향으로 일부 취소 티켓이 발생하긴 했지만 이틀 동안 3000여 명이 넘는 골프팬이 설해원에 몰려들었다.
하이라이트는 단연 첫날 열린 포섬매치다. 레전드 4인과 현역 4인이 각각 1명씩 2인 1조로 경기를 벌였는데 신·구 세대가 서로에게 영감을 받기에 충분했다. 박성현과 소렌스탐 조가 최종 2개 홀을 남겨두고 오초아-쭈타누깐 조에 1타 뒤진 2위를 달리다가 막판 2개 홀에서 파 세이브에 성공하면서 역전 우승했다. 결과가 중요한 건 아니었지만 박성현은 누구보다 감격해했다. 그는 경기 전 “소렌스탐, 잉스터는 (어릴 때 나를 지도하던) 프로께서 TV에 나온 둘의 모습을 보면서 ‘네가 저만큼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동경하던 대선배와 라운드를 했는데 1번 홀 소렌스탐 티샷을 앞두고 박성현은 조용히 휴대폰을 꺼내 그의 스윙을 동영상 촬영하기도 했다. 또 이날 박성현이 26번째 생일을 맞았는데 11번 홀에서 소렌스탐을 물론 같은 조에서 라운드를 한 오초아, 쭈타누깐이 중심이 돼 박성현의 팬클럽인 ‘남달라’ 회원과 깜짝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박성현은 “26년을 통틀어서 최고의 생일 선물이다. 못 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소렌스탐은 “박성현의 장거리 드라이브에 감탄했다. 가끔 퍼트로도 많은 세이브를 했다. LPGA투어에서 많은 한국 선수들이 잘 하고 있는데 미래를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화답했다.
|
|
이 대회를 위해 선수 은퇴 이후 잡지 않은 골프채를 다시 꺼내든 박 감독의 라운드도 참 재미를 안겼다. 1번 홀 첫 티샷에서 다소 긴장한 나머지 OB를 범해 갤러리에게 웃음을 안겼다. 민망한 표정을 지었지만 선수 시절 승부욕이 발동한 듯 갈수록 진지해졌다. 결국 5번 홀에서 절묘한 어프로치를 뽐내더니 7~8번 홀 연속 버디 퍼트에 성공한 뒤 톰슨과 하이파이브했다. 비록 9오버파로 이민지-잉스터조(4오버파)에 밀려 최하위였지만 스윙 하나하나에 주변 갤러리들은 1998년 US여자오픈 우승을 떠올렸고, 맨발 투혼 얘기를 꺼내는 등 추억에 잠겼다. 박 감독은 “선수 때 감정을 그대로 느꼈다. 마음만큼 몸은 안 따라줬다. ‘연습 왜 했나’싶을 만큼 좋은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고 웃으며 “그래도 선수들과 함께 한 시간이 의미있고 좋았다”고 했다. 레전드 선수 중 유일하게 30대인 오초아는 녹슬지 않은 정교한 샷을 뽐내 갤러리의 탄성을 끌어냈고, 잉스터는 파트너인 이민지를 살뜰하게 챙기면서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
|
유의미한 볼거리에도 대회 운영에서는 아쉬움이 남았다. 특히 8명 선수가 이벤트 경기를 하는것이어서 정식 대회와 비교해서 경기 진행요원 숫자가 적었다. 그러다보니 수많은 갤러리의 동선도 다소 뒤죽박죽이었다. 최대한 페어웨이 근처에 맴돌면서 스타 선수를 가까이 보기를 원했는데 급기야 포섬매치 9번 홀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오초아의 티샷 볼이 왼쪽으로 휘었는데 카트 도로 주변 잔디밭으로 이동 중이던 한 여성 갤러리 옆구리를 때린 것이다. 쓰러진 여성 갤러리는 운영 측 카트를 타고 이동했는데 일대에 취재진을 비롯해 수많은 갤러리가 몰려다니고 있었다. 오초아 뿐 아니라 여러 선수의 티샷이 해당 지역에 떨어졌는데 적은 수의 안전 요원이 티샷 구역에 몰려있다가 이동하다보니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사고가 날 가능성이 꽤 높았고 9번 홀 뿐 아니라 라운드 전체적으로 세컨드샷 구역의 안전이나 질서가 잡히지 않았다. 다행히 여성 갤러리는 경미한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회를 훌륭하게 유치했어도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하면 의미를 잃게 된다. 또 갤러리의 사진 촬영을 지나치게 통제하는 등 이벤트 매치를 고려해 융통성 없는 부분도 적지 않았다는 얘기도 나왔다. 고가 티켓인만큼 골프 매너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갤러리가 조금 더 자유롭게 대회를 즐길 분위기가 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kyi0486@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