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헌터와 김현중 기수의 모습
102전 최다 출전기록을 세운 코리아헌터.

[스포츠서울 유인근 선임기자]‘0.01초의 승부’라 불리울 만큼 치열한 속도경쟁을 펼치는 경마에서 경주마들의 생명력은 그 속도처럼 빠르게 왔다가 사라지곤 한다. 대상경주 등 메이저 경마대회에서 우승하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성적을 내지 못한 경주마들은 일찌감치 경주로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한번 받지 못했지만 묵묵히 자기자리에서 경주로를 달리는 경주마들이 있다.

지난 10월 4일(금)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에서 고령마인 ‘코리아헌터’(국내산, 8세)가 6년간 102전이라는 현역 경주마 최다 출전기록을 세웠다. 2013년에 부산경남무대에 데뷔한 코리아헌터는 4일 부경7경주(국산마 5등급, 1300m)에 출전하며 마사회 역사상 경주마 최고 출전기록을 갈아 치웠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101전의 출전기록을 보유한 ‘차밍걸(서울 경주마)’ 의 기록을 ‘코리아헌터’가 깬 것이다. ‘차밍걸’은 한국 경마 최다연패 기록을 세운 ‘위대한 똥말’로 유명했다. 2008년 경주마로 데뷔 후 5년 동안 101전 101패, 한 번도 우승한 적이 없는 만년 꼴찌말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경주로를 달린 ‘차밍걸’의 이야기는 경마팬들에게 큰 감동을 줬었다.

‘코리아헌터’도 못지 않다. 102전의 출전 동안 단 2승에 그쳤다.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1등이 독차지하는 경마에서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한 ‘코리아헌터’의 나이는 어느새 올해 8세, 경주마 평균 은퇴연령인 5세를 훌쩍 넘겼다. 다른 경주마보다 몸무게가 대략 40㎏이 덜 나가는 460㎏의 왜소한 체구인 ‘코리아헌터’는 큰 병치레 없이 훈련을 꾸준히 소화하고 있다. 덕분에 한 경기를 마치면 체중이 10㎏ 이상 빠져 한 달에 한 번 정도 경주에 나서는 일반 경주마와 달리 한 달에 두 번꼴로 꾸준히 주로에 서왔다.

코리아헌터를 관리하는 이정표 조교사(부경 18조)는 “102전 출전이라니 대단한 말이다. 사람 나이로 치면 예순이 훌쩍 넘는다. 다른 말들에 비해 다리가 튼실한 편이고 특유의 성실함이 있어 지금까지 잘 버텨주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102전 출전 당일 코리아헌터와 호흡을 맞춘 김현중 기수 역시 “5년전 쯤 탔던 말이 아직도 뛰고 있는게 놀랍다. 꾸준히 순위상금(5위 이내)을 챙기고 있어 은퇴까지 한참 남은 듯 하다”고 말했다.

102전 출전당일 코리아헌터는 아쉽게 9위에 그쳤다. 사람들의 시선이 1등마에게 쏠린 순간에도 묵묵히 결승선을 통과하는 고령마의 듬직한 모습은 경마팬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코리아헌터’가 앞으로 110전, 120전의 출전 기록을 세우기를 희망하는 경마팬들의 응원도 점점 커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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