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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글·사진 | 스포츠서울 이우석 전문기자] ‘태곳적부터 전해지는 옛 나라 이야기.’
고작 두 달 남았다. 저무는 기해년, 야은처럼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든다. 경주, 공주, 부여가 아닌 함안으로 갔다. 필마도 아닌 KTX고속열차(마산역)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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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이라니. 대부분 함양으로 안다. 잘못된 배달은 죄다 같은 경남도 함양군으로 간다. 하지만 함안은 태곳적부터 이름난 곳이다. 국내 지자체 중 일국의 수도였던 곳이 얼마나 되겠나. 함안은 그중 하나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다. 안라국(安羅國), 즉 아라가야가 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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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500년 전 소멸한 것으로 추정되는 아라가야의 도읍 함안이 지금 다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문화재청은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아라가야의 여러 유적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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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신라의 군사와 행정 중심지, 망국 이후에도 끝까지 의를 지켜온 고려인의 마을, 조선시대에는 왕위찬탈에 항거한 충절을 상징하는 선비의 땅으로 이어지는 지대한 역사의 물줄기가 흐른다. 그 땅, 함안을 여행한다면 미리 ‘알아가야’ 할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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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가야(伽倻)는 왜 그리도 많은가’부터 고민한다. 가야는 삼국시대 초중반까지 한반도 남부에 있었던 국가들의 총칭이다. 변한에서 흩어진 작은 국가들이 오랜 세월 명멸하며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삼국유사에는 가야 6국 만이 등장하지만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무려 24국이 나온다. 가야 중에는 금관가야(금관국)가 초기에 주도권을 잡았고 후기에는 대가야(반파국)가 주요 세력이었다고 그동안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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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 함안에 자리한 아라가야(안라국)가 독자적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며 다시금 아라가야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한마디로 그리스의 도시 국가처럼 통일되지 않고 각 지역에서 번성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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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백제에 비해 문헌 기록이나 출토 유물이 빈약해 당시의 생활상을 추정하기 어려웠지만 최근 아라가야의 유적과 유물이 대량 출토되면서 고대 국가의 신비가 현실 속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 중심 무대인 함안에 다녀왔다. 변한 시대부터 이곳에서 출발해 5세기 이후 가야권의 중심 국가 안라국으로서 누렸던 옛 영화의 흔적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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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은 예로부터 제방을 쌓아 국토를 유지한 땅이었다. 낙동강, 남강의 수운과 진동(마산) 바다의 해운을 기반으로 주변국과 무역하고 문물을 교류할 수 있었던 지리적 이점이 있었다. 강성한 왕권에 힘입어 풍납토성에 비견할 만큼 거대한 토성을 쌓고 성읍을 유지했으며 그 자리에 수많은 고분군과 출토유물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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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말이산 고분군의 경우 4세기부터 6세기 중엽까지 장소를 이동하며 축조한 고분 100여기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눈에 익숙한 경주 대릉원을 떠올릴 만큼 거대한 고분들과 그 부장품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가야의 중심국으로 강력한 왕권과 군사·외교력을 과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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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왕궁지에는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의 유적 발굴조사가 한창이다. 지난달 31일 문화재청이 공개한 발굴 현장에 올랐다. 낮은 구릉처럼 보이는 언덕 위에는 인디애나 존스 박사처럼 지표층을 걷어내며 고고학 발굴 조사에 임하는 학자들을 볼 수 있었다.
토성을 축조하기 위한 비계 격인 영정주와 이를 가로로 잇는 횡장목이 또렷히 새겨진 공간, 흙을 다진 달구질 자국, 적을 막기 위해 일렬로 촘촘히 박아놓은 목책흔 등이 발견된 상태다. 분석 결과 풍납토성을 지을 때 사용한 판축공법으로 축성한 토성으로 당시 수많은 인원과 자재를 동원했을 정도로 왕권이 강력했음을 추측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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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축공법은 현대의 시멘트 거푸집처럼 나무로 틀을 만들어 그 안에 흙을 넣고 다져서 쌓아 올리는 토목 공법이다. 또한 성토 방법이 달라지는 것으로 보아 성을 축조할 때 여러 구간으로 나눠 진행했음을 알 수 있다. 동시기 가야권 유적에는 발견 사례가 없는 독특한 축조기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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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고고학 권위자 인디애나 존스 박사에게도 늘 단서가 될 만한 문헌이 있었듯 아라가야 유적에 대한 확실한 단초도 전해진다. 그것이 바로 함주지(咸州誌)다. 선조 20년(1587년) 함안군수 정구(鄭逑)가 편찬한 읍지로 현존하는 읍지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지리, 역사, 인구, 경제, 행정, 풍습 등 함안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있는 이 책에는 ‘왕궁지’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가야국의 도읍터(伽倻國舊基), 옛 나라 터(古國墟)’로 적혀있다. 6세기 중엽 멸망한 것으로 추정되니 천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입으로 전해졌을 옛 나라를 기록한 셈이다. 이를 토대로 유적을 찾아냈고 아라가야의 역사가 함안땅에서 이뤄졌음을 이론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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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군 아래 함안박물관에 가면 아라가야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다. 당시 첨단 세라믹 제조기술이던 토기를 비롯해 비늘갑옷, 투구, 검 등 다양한 출토유물이 있다. 대부분 부장품과 순장품에서 나온 것들이다. 철기 문화가 발달한 아라가야의 철검은 다른 삼국의 고유 검 유형과 상이한 모양이다. 손잡이 부분이 꼭 ‘병따개’처럼 생겼다. 가야의 무사들은 목 마를때면 병맥주를 따 마셨을까. 아무튼 병따개를 닮은 검은 아라가야 고유의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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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마갑총에서 출토한 말갑옷(마주·경갑·흉갑·복갑·고갑)은 국내는 물론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완벽한 상태로 발견된 것이다. 당시 가야의 개마무사(마갑 중무장한 중장기병)가 비늘갑옷으로 스스로 무장하고 기동력인 말에게도 무장을 시킬만큼 고도로 발달한 군사 편제와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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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 역시 불꽃무늬 굽구멍 토기(화염문 투창 토기)로 독특한 ‘함안 양식’을 남겼다. 가운데가 떠억하니 뚫린 ‘불꽃’ 문양. 철권의 진 카자마, 피구왕 통키의 것과는 또다른 모양이다. 간결하니 현대적 디자인이다. 이는 주변국과 왜에도 전파됐으니 당시 해상세력이었던 아라가야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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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박물관 상설 전시실에선 올해 말이산고분군 45호분에서 출토된 보물급 상형토기 4점을 이달 17일까지 전시한다. 그냥 생활에 쓰던 토기가 아니다. 배모양토기, 집모양토기, 사슴모양뿔잔, 등잔모양토기 등 각각 예술적 조형미를 품은 작품이다.
옛 나라 가야를 실컷 돌아본 뒤 조금 더 미래(?)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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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를 패망시킨 신라는 건너뛰고 바로 고려시대다. 산인면 모곡리에 ‘고려동’이 있다. 조선왕조가 들어섰지만 선비(성균관 진사 이오 선생)는 이를 부정하기로 마음먹었다.
함안에 거처를 잡고 담장을 둘렀다. “밖은 조선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분명한 고려”라 선언하고 자급자족하며 살았다. 아들에게도 조선에선 벼슬을 하지말라 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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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을 받들어 이오의 후손이 무려 19대 6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이곳에 남아 살고 있다. 마을에는 고려동학비, 고려동담장, 고려종택, 고려전답, 자미단, 자미정, 율간정, 복정 등이 그대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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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휘리릭~. 이번엔 조선이다. 함안에 남은 조선의 기억은 바로 생육신의 의리와 절개다. 왕위를 찬탈하고 조카를 죽인 세조에 대해 반기를 들고 낙향한 어계 조려와 나머지 생육신(이맹전, 원호, 김시습, 남효온, 성담수)을 기리기 위해 곽억령 등이 서산서원을 지었다. 군북면 원북리 서산서원과 채미정, 원동재 등 ‘함안 생육신 조려 유적’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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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여행을 다녀오니 현실이다. 함안에선 무엇을 즐길 수 있을까. 우선 아직 마지막 분홍을 뽐내고 있는 악양생태공원 핑크뮬리를 보러갈 수 있다. 남강변에 생태늪지와 함께 조성된 악양생태공원은 비록 ‘끝물’이지만 분명한 핑크색을 여전히 내고있는 핑크뮬리 밭을 거닐어 볼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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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원래 붉은 석양으로 유명한 악양루 아래에 있어 어쩌면 하늘 전체에 퍼진 핑크색을 감상할 수도 있다. 데크 산책로도 잘 조성해놓아 걷기에 그리 무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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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만산홍엽 단풍으로 물들 입곡군립공원의 출렁다리도 좋다. 이마저도 귀찮다면 쉬운 조작을 통해 유유자적 뱃놀이를 즐기며 저수지의 아름다운 풍광을 눈에 담을 수 있는 무빙보트 ‘아라힐링카페’도 챙겨볼 만하다. 빙글빙글 돌며 입곡저수지 단풍의 곱디고운 붉은 색에 잠시나마 젖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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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마공원도 참 잘 조성돼 있다. 지난 2009년 전국에서 가장 먼저 경주마 휴양조련시설로 개장한 함안군 승마공원은 체험 승마코스와 외승 코스까지 갖춘 15만㎡ 규모의 숲속 승마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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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도 다채롭다. 일반 승용마에서부터 잠시 쉬러 온 경주마에 당나귀까지 있다. 말모이(?)주기 체험, 각종 클래스별 승마와 유럽식 마차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어 언제라도 시원한 가을 바람을 가르며 질주해보는 체험을 할 수 있다.
태곳적부터 많은 역사 이야기와 자연의 아름다움이 서린 고장, 함안에 다녀온다면 이제 더이상 예전처럼 낯선 느낌은 절대 아닐테다.
demory@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