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효원기자]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물가는 다락처럼 오르고 경제는 도통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죠. 저멀리 밀려오는 먹구름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경험과 지혜를 두루 갖춘, 성공한 CEO에게 질문해보기로 했습니다. 불황의 터널을 어떻게 통과하는 것이 좋을까요? <편집자주>
50년 가까이 기업했지만, 쉬운 날은 하루도 없었다
경동제약 류덕희 명예회장(85)은 성균관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1975년 경동제약 전신인 ‘유일상사’를 창업, 1976년 경동제약으로 사명을 변경한 후 50년 가까이 경영한 제약 1세대다.
수입에 의존하던 의약품을 국내 기술로 개발해 판매하며 우리 제약시장에 일대 변화를 일으켜 주목받았다. 당시 국내에 판매되는 약은 대부분 수입품이거나 외국과 기술제휴에 의존하는 상황이었다. 류 명예회장은 우리 기술로 직접 약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기계를 제작하고 원재료를 배합해 제약의 국산화를 이끌었다. 이 같은 도전에 대해 류 명예회장은 “화학과는 되게 하는 학문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라는 가르침을 주신 은사님 덕분에 도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2021년 아들인 류기성 대표에게 회사 경영을 맡기고 2선으로 물러났지만, 여전히 과천지식산업정보센터로 이전한 경동제약 신사옥으로 출근하며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경동제약 류덕희 명예회장을 만났다.
1975년에 제약업을 창업하셨다. 창업 계기는 무엇이었나?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는데 친구가 제약사를 동업하자고 제안했다. 젊어서 그랬는지 머리가 팽팽 돌았다. 기계도 만들고 무균실도 만들고. 케네디 대통령 때 국방장관을 지낸 로버트 맥나마라가 천재로 불리는데 내 친구가 나에게 한국의 맥나마라라고 했을 정도다. 친구와 5년을 함께 하다가 독립해서 제약사를 차렸다.
대학교 은사님의 말씀이 계기가 됐다. 화학과와 약학과가 붙어있었는데 약대 친구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교수님이 “저 친구들은 약을 조제하지만 너희들은 약을 만들 사람이다. 긍지를 가져라. 화학은 될화(化)자, 배울학(學)자를 쓴다. 되게 하는 학문,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학문”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이 삶의 지표가 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50년 가까이 경영 일선에서 활동하셨다. 가장 자랑하고 싶은 경영 성과는 무엇인가?
당시 우리나라 약들이 영양제, 결핵약 등 시시한 것만 있고 약같은 약이 드물었다. 대부분 외국 다국적 기업과 기술제휴한 약이었다. 그래서 약을 국산화시켜야겠다 생각하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실천해 국내에 없는 약을 만들어냈다. 수입약이나 기술제휴 약이 아니라 국산화를 하니까 약값을 저렴하게 책정할 수 있어서 수요가 컸다. 해외에 의존하던 약을 국산화했다는 점에 자부심이 크다.
과정에 어려움도 많았을 듯하다.
기업을 하면 항상 어렵다. 무난히 지나가는 때는 없다. 언제든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공장에 불이 난 일이다. 국산화에 성공해 주문이 몰려들었을 때였는데 인천 쪽 공장에 불이 나 전소됐다는 전화를 받았다. 앞이 캄캄했다. 공장까지 가면서 계속 기도했다. 기도 덕분이었는지 공장 건물은 모두 탔는데 그 안에 있던 약은 박스만 타고 내용물은 멀쩡했다. 포장을 바꿔 무사히 납품할 수 있었다.
경영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대중들이 제약사에 대해 장삿속만 있다고 생각하는 게 있다. 그런 이미지를 탈피하려면 기업이 이윤을 환원할 줄 알아야 한다. 더구나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는 약을 만들어 파는 곳이 제약사 아닌가. 사람들을 위할 줄 알아야 한다고 늘 강조해왔다.
사회 환원을 많이 하는 CEO로 유명하다. 사재를 출연해 송천장학재단을 만들어 100억원 가까운 장학금과 연구비를 지원하셨다.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우리가 약을 만드는데 나눔에 인색하면 안 된다. 매출에 비해서는 사회 환원을 많이 했다. 개인도 하고 회사도 하고. 처음 나눔을 시작한 계기가 있다. 수십 년 전인데, 은평천사원이라는 시설에서 편지가 왔다. 해열진통제와 영양제를 보내달라는 내용이었다. 사업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빚이 많을 때여서 기부는 생각도 못했는데 약으로도 기부할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당시에는 처방전 없이 약을 줄 수 있어서 은평천사원에 약을 기부했다. 그 일을 계기로 사회에서 얻은 이익의 10%를 환원하자고 생각해 꾸준히 기부해왔다.
남에게 베푸는 것이 내가 행복해지는 길이다. 남에게 아픔을 주지 말고 남을 밝게 만들려는 마음을 가질 때 내 마음도 편하다. 기업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좋은 스트레스다. 그러나 남에게 피해주는 건 자신에게 데미지를 입히는 나쁜 스트레스다. 남을 배려하는 게 건강한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된다.
주5일제를 1980년대에 일찌감치 시작했고, 1990년대에는 사내 복지기금을 조성해 임직원 자녀학자금 등을 지급하는 등 복지도 눈에 띈다.
지금은 토요일에 쉬는 게 당연해졌지만 1980년대 토요일은 당연히 일하는 날이었다. 그때 이미 경동제약은 격주 토요일 휴무제를 실시했다. 둘째, 셋째 토요일을 각각 가정의 날, 체육의 날로 이름 붙이고 쉴 수 있게 했다. 직원들이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개인의 건강도 챙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실시한 복지였다. 또 임직원이 갑자기 돌아가신 후 생계가 막막한 가족들을 위해 대학 졸업까지 자녀학자금과 생활안정자금도 지급했다. 처음에는 회사가 자선단체냐고 반문하던 직원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취지를 이해하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4·19혁명 대상, 금탑산업훈장, 도산경영상 등 여러 상을 수상하셨다. 어떤 상이 가장 기억에 남나?
여러 상을 받았는데 모든 상이 다 소중하다. 작은 회사를 경영했지만 경영을 통해 인정받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있다. 특히 금탑산업훈장을 받았을 때 무척 기뻤다.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협의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독실한 카톨릭 신자로 알려져있다.
세례명이 모세다. 내가 왜 세례명을 모세로 했냐면 영화 ‘모세의 기적’을 보고 기적을 일으키자는 마음으로 선택했다. 뒤돌아보니 기적을 많이 일으킨 것 같다.
삶에 있어 롤모델이 있나?
어려서 집성촌인 마을에서 도련님으로 자랐다. 초등학생 때였는데 할머니가 춘궁기가 되면 마을 언덕에 가서 저녁밥 짓는 연기가 안 나는 집을 찾으라고 하셨다. 어느 어느 집이 연기가 안 난다고 말씀드리면 할머니가 그 집 어멈을 불러 곡식을 나눠주셨다. 어려운 사람에게 나눠주고 힘없는 사람도 존경하라고 가르치신 할머니께 많은 것을 배웠다.
이제 막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젊은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은?
대학에서 특강도 많이 했지만 그때마다 하는 얘기가 있다. 나는 이런 것밖에 못한다, 이건 안된다, 이런 마음은 버려야 한다.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라고 말해준다. 대학에서 특강을 해달라고 부르면 전국 어디라도 간다. 강의를 듣는 100명, 200명 중 한 한 사람이라도 내 얘기를 실천하는 청년이 나오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세계적으로 불황과 경기 침체가 이어지고 있다. 이 시기를 현명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지금 불황이 IMF 때와 비교되는데 지금 불황은 그때와는 양상이 다르다. IMF 때는 사업이 안된 것이 아니라 달러가 부족했을 뿐이다. 이번 굴곡은 굉장히 심각하다. 반도체 시장마저 침체됐다. 그러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바짝 긴장하면 잘 넘길 수 있다. 직장인이라면 무조건 월급의 절반은 저축해 미래를 대비해야 하고, 경영자의 입장이라면 구성원들을 독려하면서 적극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류기성 대표, 김경훈 대표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은?
회사를 경영하는 일은 하나의 작품을 같이 만들어가는 일이라고 얘기해 주고 싶다. 경영은 공동작업이다. 한 부분이 없으면 작품이 안된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배려하고 아낄 줄 알아야 한다. 대개의 경우 리더가 되면 건방져진다. 그러면 직원들이 절대 따라오지 않는다. 하나의 작품을 같이 만들어간다는 마음으로 각 개인을 존경하고 배려해야 한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남을 위해 배려하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영국 런던 빈민가에 창업 중심지로 육성한 ‘테크시티’(Tech- City)를 통해 2000여개 벤처기업이 몰려들어 핀테크의 허브가 된 사례가 있다. 빈민가가 벤처 청년들이 아이디어를 분출하는 지역으로 변모했다. 나도 뜻맞는 사람들과 그런 일을 하고 싶다. 서울이나, 혹은 서울이 아니더라도 그런 지역을 찾아 청년 벤처를 유치해 아이디어를 키워주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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