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파리=정다워 기자] 김원호(25·삼성생명)와 정나은(24·화순군청)은 졸지에 ‘비운의 메달리스트’가 됐다.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혼합복식 은메달리스트인 김원호와 정나은은 극적으로 메달을 땄다. 특히 지난 2일(한국시간) 4강전이 고비였다. 같은 나라 동료인 서승재(삼성생명)-채유정(인천국제공항) 조를 만난 두 사람은 3게임 막판 16-13으로 앞서다 위기에 직면했다. 김원호가 체력의 한계를 느끼다 코트에서 구토한 것. 당시 김원호는 “후반에 헛구역질이 나왔다. 뛰다가 코트에 토를 할 것 같아서 심판에게 이야기하고 봉지에 토를 했다”라면서 “코트에서 이렇게 티를 내면 안 되는데 올림픽에서 보였다”라고 말했다.

위기를 극복하고 두 사람은 결승에 갔다. 김원호의 체력이 떨어진 가운데 정나은이 버티며 리드를 지켜 승리했다. 김원호는 “나는 배터리가 끝난 상태였다. 나은이에게 맡기겠다고 이야기했고 부담을 줬다. 나은이가 부담을 안고 나를 다독이며 이끌어줬다”라며 승리의 공을 정나은에게 돌렸다. 정나은은 “오빠가 나를 믿고 하겠다고 해 부담이 됐지만 그 상황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오빠를 잡아주려고 했다”라고 털어놨다.

김원호의 경우 한국 배드민턴 레전드인 길영아 삼성생명 감독의 아들이기도 하다. 길 감독은 1996 애틀랜타 올림픽 혼합복식 금메달리스트로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였다. 김원호는 “어릴 때부터 엄마의 올림픽 금메달을 보며 나도 꿈을 꿨다. 이렇게 오게 될 줄 몰랐다”라면서 “이제 길영아의 아들을 넘어 김원호의 엄마로 살게 해주겠다고 했다”라는 인상적인 인터뷰도 남겼다.

결승에서 패해 은메달에 머물기는 했지만 김원호와 정나은은 메달리스트로서 찬사를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들은 이 축제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있다. 배드민턴계에 떨어진 초대형 ‘폭탄’ 때문이다.

지난 5일 안세영은 여자 단식 결승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 대한배드민턴협회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대표팀이 안일하게 생각했다. 많이 실망했다. 잊을 수가 없다. 이 순간을 끝으로 대표팀과 계속 가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라며 협회와는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고 했다. 모든 이슈를 흡수하는 폭탄 발언이었다.

대한체육회는 6일 코리아하우스에서 배드민턴 메달리스트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김원호와 정나은이 참석한 가운데 안세영은 불참했다. 메달리스트로서 조명받아야 할 두 사람은 침울한 분위기 속에 안세영에 관한 질문을 들으며 어려운 답변을 해야 했다. 김원호는 “대표팀 분위기가 좋다고 말하긴 어렵다”라고 했고, 정나은은 아예 “안세영 관련 질문은 받지 않겠다”라고 선을 그었다.

안세영은 이날 출국해 한국으로 향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선수가 축하받아야 할 자리인데 축하받지 못하는 것 같아 너무 미안하다”라면서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비치는 것 같다. 축하받아야 할 선수들은 축하받아야 한다”라며 김원호, 정나은을 의식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배드민턴협회 주요 관계자는 행사와 무관하게 일정을 바꿔 한국으로 향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의 갈등은 점점 심화하는 분위기다.

당당하게 메달을 자랑해야 할 두 선수는 협회와 안세영의 갈등에 묻혔다. 잘잘못을 떠나 올림픽 은메달이라는 대단한 성과를 낸 김원호와 정나은의 표정에 수심이 가득한 모습을 봐야 한다는 현실에 취재진, 대회 관계자들은 아쉬움을 삼키는 분위기다. weo@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