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이승록 기자] ‘K팝 킹’답지 않았다. 지드래곤이 8년 만의 월드투어로 귀환했지만, 무대 위에서 왕의 위엄을 찾기 어려웠다. 70분에 달한 역대급 지연과 기대 이하의 라이브가 씁쓸함을 남겼다.

29일 경기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쿠팡플레이와 함께하는 G-DRAGON 월드투어 ‘위버맨쉬’ 인 코리아’는 티켓이 순식간에 매진됐다. 솔로 3집 발매 후 처음이자, 2017년 이후 8년 만에 여는 월드투어였다.

하지만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뒤따랐다. 시작 전부터 불안했다. 기상 악화와 관객 안전 문제로 애초에 30분 지연이 공지됐지만, 입장이 완료된 후에도 공연이 40분 넘게 시작되지 않았다. 체감 영하권의 칼바람 속 객석 곳곳에서 원성이 터졌다. 결국 지드래곤이 무대에 선 것은 예정보다 70여 분 늦은 오후 7시 40분경이었다. 이미 관객들의 체력과 기대치가 떨어진 뒤였다.

지드래곤의 라이브도 흔들렸다. 첫 곡 ‘파워’로 포문을 열고 왕관과 붉은 장미 퍼 재킷을 입고 등장했으나, ‘킹의 귀환’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는 아쉬움이 컸다. 특유의 패셔너블한 비주얼과 무대 장치는 인상적이었다. 정작 라이브가 내내 불안했다. ‘홈 스위트 홈’부터 ‘크레용’, ‘그 XX’ 등 대표곡에서 지드래곤의 음정은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했다. ‘그 XX’에서는 감정선이 흐트러져 원곡의 감성을 재현하기 역부족이었다.

공연 초반 별다른 언급 없이 무대를 이어가던 지드래곤은 뒤늦게 “늦어서 죄송하고, 추워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YG 시절 동료 씨엘이 깜짝 등장해 듀엣으로 분위기 반전을 꾀했지만 꽁꽁 언 공연장을 녹이기는 쉽지 않았다. 지드래곤의 일부 멘트가 명확히 전달되지 않거나, 몇몇 무대 전환 시 발생한 긴 공백은 공연의 집중도를 떨어뜨렸다.

후반부로 접어들며 지드래곤은 조금씩 무대를 회복했다. ‘삐딱하게’, ‘하트브레이커’ 등 대표곡 릴레이가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특히 ‘투데이’에서는 관객들의 떼창을 유도하며 빅뱅 시절이 연상되는 특유의 자유분방함을 발휘했다.

공연은 지드래곤의 첫 정규앨범부터 신보 ‘위버맨쉬’까지 총망라한 20여 곡의 세트리스트로 구성됐다. 지드래곤은 무대 중앙에 설치된 두 개의 대형 조형물을 가리키며 “‘하트브레이커’ 때와 이번 앨범에서의 제 모습”이라며 “시작과 지금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날 마주한 것은 과거의 찬람함이 옅어진 현재의 지드래곤이었다. 공연 타이틀의 의미가 무색했기 때문이다. 3집 앨범명이기도 한 ‘위버맨쉬(Übermensch)’는 니체가 정의한 ‘초월적 인간’으로, 기존 도덕과 한계를 넘어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는 이상적 존재를 뜻한다. 이번 공연에서 지드래곤은 ‘초월’보다는 ‘미완’에 가까웠다.

한편, 공연 말미 지드래곤은 빅뱅 활동을 깜짝 예고했다. 그는 “내년이면 빅뱅이 스무 살이 된다”며 “셋이서 내년에 성인식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roku@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