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더할 나위 없는 연기였다. 분량도 엄청났다. 세밀하게 따져보면 10명에 가까운 캐릭터를 맡은 셈이다. 1960년대 어린 애순부터 2020년대 50대 금명까지. 세월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성장 모먼트를 정확히 짚었다. 수 십회에 가까운 눈물 연기는 물론 한 편의 시집이라도 해도 무방한 내레이션까지 소화했다. 이 모든 것을 아이유 홀로 해냈다.

또 하나의 대국민 인생 드라마가 탄생했다.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1960년대부터 2020년까지 격동의 혼란기에 살아간 소시민을 담았다. 아이유는 그 안에서 10대 에순부터 엄마가 된 애순, 10대 금명부터 50대 금명까지 담았다. 그 어떤 대배우에게도 힘들 숙제인데, 조금도 흔들림 없이 훌륭히 감정을 전달했다.

아이유는 지난 2일 서울 중구 풀만호텔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가수랑 병행하다보니까 드라마로 접근하는 분들이 많지 않았는데, 애순이로 얘기해주시는 분들이 적지 않다. ‘폭싹 속았수다’는 애정의 깊이가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사계절로 4막을 나눴다. 봄 여름인 2막까진 애순이로 등장했다. 3막부턴 금명이가 됐다. 애순은 문소리가 맡았다. 엄마를 쏙 빼닮은 딸이란 설정이다. 서울대에 간 금명은 엄마 애순에게 짜증을 너무 많이 냈다. 애순에게 감정을 이입한 시청자들은 애순의 마음을 할퀴는 금명이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생겼다. 아이유 역시 정체성에 혼란이 있었다.

“애순과 금명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순간이 있었어요. 순차적으로 촬영하는 게 아니잖아요. 오전엔 애순, 오후에는 금명이었던 적도 있었어요. 금명이가 애순이한테 짜증을 내는데, 꼭 저한테 하는 것 같더라고요. 표현을 덜 하게 되고, 몸을 사렸어요. 감독님이 금명이는 짜증낼 수 있다고 설득하셨어요. 금명이가 짜증을 내면 기막히게 내레이션이 붙더라고요. 이해가 충분히 돼서 자신있게 짜증을 냈어요.”

애순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꿈 많은 문학소녀였다. 원하는 것을 얻을 때보다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많았다. 가난은 되물림됐다. 애순이보다야 낫지만, 서울대에 간 금명이도 많이 참았다. 그래서 많이 울었다. 인간이 울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경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십 회의 오열 신이 있었다. 어쩜 그렇게 잘 울었을까.

“눈물 연기는 어렵지 않았어요. 작가님께서 감정을 잘 그려주셨어요. 이입하면 눈물이 나요.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울어야 하는 날이 있어요. 새벽 다섯시부터 울었더니, 너무 슬퍼도 눈물이 안 나오더라고요. 정말 많이 울었던 건 관식(박해준 분)과 병실에 있었던 때였어요. 병색이 완연한 관식을 보기 어렵더라고요. 그 장면 다시 보면서도 많이 울었어요.”

정말 잘했다. tvN ‘나의 아저씨’ 이후 아이유를 향한 연기력 논란은 거세됐다. 훌륭한 배우다. ‘폭싹 속았수다’로 정점을 찍었다. 아이유는 공을 제작진에게 돌렸다.

“저는 대사 NG를 안 낸 거 외에는 잘 한 게 많지 않아요. 열심히는 했죠. 저도 저를 못 믿는 순간이 있어요. 제 약점을 제가 제일 잘 아니까. 제작진이 마법을 부려줬어요. 그걸 눈으로 보니까, 그저 감사하더라고요. 제가 다 한 게 아닌데, 그 추앙을 제가 다 받잖아요. 감사하죠. 그 부채감을 잊으면 괴물이 될 것 같아요. 잊지 않으려고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