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연기자 정윤호에겐 ‘발연기’란 불명예스러운 꼬리표가 들러붙어 있었다. ‘1만 시간의 법칙’을 몸소 실현하며 무대에서 폭발적인 퍼포먼스를 보였던 유노윤호는 유독 카메라 앞에만 서면 작아졌다. 연기자 정윤호에겐 기대보단 우려가 컸고, 결과도 안 좋았다.
열정이 일으켜 세운 것일까, 지난 16일 공개된 디즈니+ ‘파인 촌뜨기들’에서 정윤호는 과거와 180도 다르다. 벌구라는 인물을 완전히 체화한 인상이다. 광주 출신으로 사투리를 완벽히 구사하는 것은 물론 등장한 장면부터 모든 순간이 ‘목포 생양아치’ 그 자체다. 성실함의 대명사였던 그는 정돈된 이미지도 완전히 내려놓았다. 그야말로 촌동네 건달이다.
초면인 오희동(양세종 분)의 뺨을 후려치고 “깨작깨작 먹지 말라”고 시비 거는 장면이나, 경찰 홍기(이동휘 분)가 으스대자 슬그머니 쫄면서도 뒷걸음질 치며 악다구니를 부리는 모습, 큰 형 뻘인 황선장(홍기준 분)에게 일을 안 준다면서 야지주는 표정, 힘이 센 김교수(김의성 분)가 다방 여직원 선자(김민 분)에게 능글맞게 굴자 은은하게 반응하는 섬세한 감정 표현까지, 모든 순간 벌구로 존재한다.

연기에 있어서는 감을 못 잡은 듯 허둥대던 정윤호는 사라졌다. 이 인물을 몸에 익히기까지 얼마나 진한 고민과 올바른 태도를 가졌을지 짐작조차 어렵다. 김의성이나 이동휘와 같은 실력이 검증된 배우들 사이에선 연기력이 부족하면서 서 있기만 해도 티가 나기 마련인데, 정윤호는 오히려 자신의 색을 발산한다. 엄청난 성장이다.
작은 배역임에도 눈에 확 띌 정도다. 평단의 반응도 심상치 않다. 최강희 영화평론가는 “이렇게 잘하는 배우인지 몰랐다”면서 극찬했다. 모든 표정이 생동감 있게 살아 있다는 평가도 덧붙였다. 커뮤니티에서도 유노윤호에 대한 칭찬이 이어지고 있다.
3회까지 공개된 ‘파인 촌뜨기들’을 향한 호평이 이어진다. 아직 특별한 사건이 없음에도 인간 관계를 워낙 넓은 레이어로 촘촘히 쌓은 덕에 두 명만 붙어도 서스펜스가 생긴다. 윤태호 작가의 송곳처럼 가슴에 박히는 대사와 1970년대로 돌려버린 미장센, 모든 배우들의 명연기까지 합쳐졌다는 평가다.

가진 거라곤 객기 밖에 없는 벌구는 앞으로 홍기와 희동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키는 존재가 된다. 잇몸에 꽂힌 생선가시처럼 불편한 존재가 될 전망이다. ‘1만 시간의 법칙’의 재탄생일까, 등장부터 벌구였던 유노윤호. 남은 회차에서도 물 만난 고기처럼 펄떡 펄떡 뛸 거라는 기대가 강하게 든다. intellybeast@sportssoe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