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상암=김용일 기자] 이게 최정상의 수준이다. 축구대표팀 ‘홍명보호’가 2026 북중미 월드컵 본선을 8개월여 앞두고 안방에서 ‘삼바군단’ 브라질에 호되게 당했다. 출범 이후 가장 많은 5실점을 허용, ‘체급 차’를 실감하며 예방주사를 맞았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FIFA랭킹 23위)은 10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브라질(6위)과 A매치 평가전에서 0-5 대패했다.
홍명보호 2기 출범 이후 한국은 이전까지 A매치 15경기에서 9승5무1패를 기록했다. 대부분 아시아 팀을 상대했는데, 본격적인 월드컵 본선 체제로 돌아선 지난달 미국(2-0 승)과 멕시코(2-2 무) 원정에서 1승1무를 기록하며 호성적을 냈다. 이날 미국, 멕시코전에 이어 다시 한번 스리백 전술을 실험했는데 브라질의 관록과 개인 전술, 힘에 모두 밀리며 무너졌다. ‘월드컵 우승 후보’ 수준 팀과 전력 차를 실감했다.
한국은 최전방에 손흥민이 서고 좌우에 이재성과 이강인이 자리했다. 허리는 황인범과 백승호가 지켰다. 좌우 윙백은 이태석과 설영우가 맡았다. 스리백은 김주성과 조유민, 김민재로 구성했다. 주전 골키퍼는 조현우다.
브라질도 최정예에 가까운 전력을 내세웠다. 비니시우스 주니오르를 필두로 호드리구, 마테우스 쿠냐, 이스테방이 공격진을 이뤘다. 브루노 기마랑이스, 카세미루가 중원을 지켰다. 수비 라인은 비티뉴와 에데르 밀리탕, 가브리엘 마갈량이스, 더글라스 산토스로 구성했다. 골키퍼는 벤투다.

예상대로 초반부터 브라질이 전방 4명의 공격수를 앞세워 볼 점유율을 높였다. 한국 수비진도 담대하게 맞섰다. 김주성, 조유민, 김민재 스리백 요원을 중심으로 파이백을 형성하고 중앙 미드필더 황인범과 백승호가 수비 지역으로 내려와 볼 줄기를 열어 젖혔다. 타이트한 압박에 이어 좁은 공간에서도 자신 있는 빌드업을 뽐냈다.
한국의 페널티박스 진입에 어려움을 겪은 브라질은 전반 4분 호드리구, 10분 비니시우스가 한 차례씩 중거리 슛을 시도했지만 골문을 벗어났다.

하지만 브라질은 역시 세계 최고수가 모인 팀답게 틈을 이르게 파고들었다. 전반 13분 기마랑이스가 페널티박스 왼쪽에서 대각선 뒷공간을 가로지르는 침투 패스를 넣었다. 이스테방이 한국의 왼쪽 윙백 이태석의 방어를 따돌리고 절묘하게 빠져들어가 오른발로 차 넣었다.
기세를 올린 브라질은 이스테방을 중심으로 이태석, 김주성이 버티는 왼쪽 라인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프리킥 기회를 얻었는데 주장 카세미루가 헤더로 골문을 갈랐지만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았다.
한국은 오른쪽의 이강인을 중심으로 다시 공격을 시행했다. 브라질도 노련하게 대응했다. 전반 20분 역습 기회에서 호드리구가 페널에어리어 왼쪽을 파고들어 슛을 시도했다. 이번엔 골키퍼 조현우가 다리로 저지했다.

한국은 주눅 들지 않고 반격했다. 전반 22분 코너킥 상황에서 흐른 공을 황인범이 왼발 슛으로 연결했다. 브라질 수비 블록에 걸렸지만 이날 한국의 포문을 열었다.
2분 뒤 브라질 쿠냐의 역습 땐 김민재가 예리한 태클로 저지했다. 그러나 주심은 옐로카드를 꺼내들었다. 김민재는 반칙이 아니라며 항의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벤치의 홍명보 감독과 주앙 아로소 코치도 판정에 불만을 보이는 등 경기는 뜨거워졌다.

한국은 손흥민이 2선 지역까지 내려와 볼줄기를 다양하게 하고자 애썼다. 이재성, 이강인 등도 개인 전술이 좋은 브라질 수비 뒷공간을 뚫기 위해 분주히 그라운드를 누볐다. 하지만 거센 빗줄기 속 브라질은 견고한 수비를 지속했다.
그리고 전반 41분 기어코 추가골에 성공했다. 비니시우스가 왼쪽 지역에서 공을 받은 뒤 호드리구를 향해 연결했다. 그는 뒤따른 카세미루에게 흘렸다. 재빠르게 카세미루가 침투 패스를 넣었다. 호드리구는 유연하게 공을 제어한 뒤 속임 동작에 이어 오른발 감아 차기 슛으로 마무리했다. 브라질다운 퍼포먼스다.
지난달 미국, 멕시코만 하더라도 한국은 스리백을 통해 안정적인 수비를 펼친 뒤 상대 뒷공간을 여러 번 두드렸다. 체급이 다른 브라질은 3선과 최후방 간격이 흔들리지 않았다. 주장 카세미루의 라인 컨트롤도 돋보였다.

전열을 가다듬은 한국은 후반 시작과 함께 중원에 변화를 줬다. 황인범 대신 ‘혼혈’ 옌스 카스트로프를 투입했다. 그의 안방 데뷔전.
하지만 한국은 후반 킥오프 2분 만에 수비의 ‘믿을 맨’ 김민재의 실책으로 추가 실점했다. 페널티박스 왼쪽에서 공을 제어하는 과정에서 미끄러졌다. 이스테방이 공을 따낸 뒤 조현우와 일대일 기회에서 왼발로 골망을 흔들었다.
심리적으로 흔들렸을까. 한국은 후반 4분 또다시 중원에서 백승호가 공을 빼앗겼다. 비니시우스가 페널티박스 오른쪽에서 반템포 빠르게 왼쪽으로 달려든 호드리구에게 논스톱으로 연결했다. 그가 오른발로 재차 득점했다. 순식간에 스코어는 0-4로 벌어졌다.

홍 감독은 후반 18분 손흥민, 이재성, 김민재 ‘베테랑 3총사’를 벤치로 불러들였다. 오현규, 김진규, 박진섭을 투입했다. 손흥민은 이날 A매치 137번째 출전으로 대선배 차범근, 홍명보(이상 136경기)를 넘어 한국 남자 선수 최다 출전 신기록을 작성했다. 이재성은 100경기를 채우며 센추리클럽에 가입했다. 그러나 브라질에 고전하면서 크게 웃지 못했다.
김진규는 투입 2분 만에 오른발 중거리 슛을 때리며 예열했다. 후반 23분엔 이태석이 공격 지역에서 왼발 중거리 슛으로 코너킥을 끌어냈다.
그럼에도 브라질은 금세 흐름을 되찾으며 위기를 내주지 않았다. 한국이 강한 몸싸움과 기동력으로 제어하고자 했으나 브라질은 효율적인 공간 커버, 볼 제어로 맞섰다. 안첼로티 감독은 루카스 파케타, 카를로스 아우구스토 등을 교체로 내보내며 경기 리듬을 유지했다.
브라질은 후반 32분 비니시우스가 역습으로 돌아서 현란한 개인 전술로 한국 수비를 무너뜨린 뒤 팀의 다섯 번째 득점에 성공했다. 안첼로티 감독은 막바지 히샬리송, 이고르 제주스, 안드레까지 내보내는 등 시종일관 여유롭게 경기를 운영했다.
결국 한국은 더는 반격하지 못했다. 궂은 날씨 속 6만3천237명의 구름 관중이 몰렸지만 브라질에 혼쭐이 나면서 월드컵 본선 대비 오답노트를 받아들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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