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이승록 기자] 차갑지만 뜨겁고, 냉정하지만 애절하다. 이 역설적인 감정을 만들어낸 배우가 허남준이다.

SBS 드라마 ‘멋진 신세계’의 흥행에는 단연 주연 배우 임지연과 허남준의 정교한 연기 호흡이 자리한다. 2014년 영화 ‘인간중독’ 이후 매 작품 눈부신 성장을 입증해온 임지연은 ‘멋진 신세계’에서는 코믹 연기까지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톱배우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하게 됐다.

허남준은 그야말로 ‘멋진 신세계’의 발견이다. 2019년 영화 ‘첫잔처럼’으로 데뷔한 이래 드라마 ‘스위트홈 시즌2’ ‘유어 아너’ ‘백 번의 추억’ 등을 거치며 차세대 유망주로 존재감을 보였다면, 이번 작품을 통해서는 명실상부한 주연급 배우로 발돋움한 인상이다. 극 전체를 안정적으로 이끄는 탁월한 장악력을 스스로 증명해냈기 때문이다.

허남준의 연기가 곧 설득력이다. 냉혹한 재벌 캐릭터인 차세계를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내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는 연기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목소리와 발성에 있다. 특유의 중저음 목소리는 차세계의 오만함과 냉소적인 심리를 날카롭게 포착하며 대사마다 무게감을 더한다. 여기에 의도적으로 힘을 주지 않아도 명확하게 귀에 꽂히는 딕션은 차세계의 냉철한 성격을 효과적으로 대변한다.

특히 차세계라는 인물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허남준의 섬세한 표정 연기 덕분이다. 외면은 차갑고 냉정해 보이지만 신서리(임지연)에게 서서히 마음이 이끌리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미세한 얼굴의 변화는 차세계의 심리적 동요를 정밀하게 짚어낸다. 눈썹을 슬쩍 올리거나, 이를 꽉 깨물 때 선명해지는 턱 근육의 긴장감, 눈빛에서 독기를 살며시 거두는 찰나의 변화 모두 허남준이 치밀하게 설계한 감정의 디테일이다. 이렇듯 촘촘하게, 그리고 차근차근 쌓아 올린 감정선은 시청자들에게도 둘의 로맨스에 빠져들 수 있는 여유와 공감을 준다.

최근 업계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스타일의 남자 배우다. 선 굵은 이목구비가 주는 강렬한 아우라가 슬며시 미소를 짓는 순간 소년의 순수함처럼 녹아내리는 반전이 있다. 지난해 공개된 아이유의 ‘네버 엔딩 스토리(Never Ending Story)’ 뮤직비디오에서도 증명된 강점이다. 한국 멜로 영화의 고전 ‘8월의 크리스마스’를 오마주한 뮤직비디오에서 허남준은 대사 없이 오직 시선과 표정만으로 한 편의 서사를 완벽하게 표현해 냈다. 우수에 찬 허남준의 눈빛이 서글픈 감정을 전달하며 곡의 깊이를 더하는 역할을 했다.

허남준의 모습은 마치 배우 이병헌의 젊은 시절을 연상시킨다. 과거 이병헌이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그해 여름’ 같은 멜로에서 한없이 애틋하고 처연한 눈빛을 보여주다가도, ‘달콤한 인생’ ‘내부자들’ 같은 누아르에서는 거친 야생성과 피비린내를 뿜어냈던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극단의 감수성을 한 그릇에 모두 담아낼 수 있는 배우는 지극히 드물다. 그렇기에 허남준이라는 배우가 앞으로 자신의 넓은 그릇을 어떤 다채로운 필모그래피로 채워나갈지 기대할 수밖에 없다. roku@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