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주연만 작품을 완성하는 시대는 지났다.

한 작품의 화제성은 주연 배우의 이름값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지만, 시청자의 몰입을 끝까지 붙드는 힘은 곳곳에 배치된 조연 배우들에게서 나온다. 짧은 등장에도 장면의 공기를 바꾸고, 한두 마디 대사로 인물의 결을 남기는 배우들이 작품의 밀도를 완성한다.

최근 작품들 속에서도 조연 배우들의 활약이 유독 눈에 띄고 있다. ‘오십프로’ 김성정, ‘취사병 전설이 되다’ 임지호, ‘참교육’ 김태영은 각기 다른 장르와 캐릭터 안에서 분량 이상의 존재감을 보여준 배우들이다. 이들은 주인공의 서사를 보조하는 데 머물지 않고, 작품 안에서 자신만의 리듬과 온도를 만들며 시청자의 시선을 붙잡았다.

김성정의 존재감은 ‘오십프로’ 5, 6회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가 맡은 허남일은 영선중앙고의 전설적인 유급생이자, 한눈에 봐도 쉽게 정리되지 않는 사연을 품은 인물이다.

갈 곳 없는 처지에 놓인 허남일이 새로운 쉼터를 마주한다. 특히 돈 때문에 삼촌인 오정세를 향해 모진 말을 쏟아내고 일당 100만 원 제안을 받아들이는 장면은 허남일이라는 캐릭터의 결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김성정은 돈 앞에서 흔들리는 인물의 현실감, 상대를 밀어내면서도 어딘가 비루한 속내를 감추지 못하는 모순을 동시에 표현했다. 그래서 그의 장면은 웃기지만 가볍지만은 않았다. 생활 밀착형 코믹 연기 안에 짠내 나는 감정을 섞어내며, 허남일을 단순한 주변 인물이 아닌 작품의 리듬을 흔드는 신스틸러로 만들었다.

‘취사병 전설이 되다’의 임지호는 강림소초 행정병 탁문익 역으로 작품의 생활감을 책임졌다. 탁문익은 부대 안의 소문과 잡지식을 누구보다 빠르게 알고 있는 인물이다. 별명처럼 TMI가 넘치는 캐릭터지만, 임지호는 이를 단순한 수다쟁이로 소비하지 않았다. 행정반에 앉아 부대의 크고 작은 정보를 주워듣고, 강성재에게 군대 잡지식을 줄줄 풀어놓는 장면마다 특유의 말맛과 리듬으로 캐릭터를 각인시켰다.

임지호의 장점은 군대라는 공간의 공기를 알고 있는 듯한 자연스러움에 있다. ‘취사병 전설이 되다’는 밀리터리와 쿡방, 판타지를 결합한 작품인 만큼 설정 자체는 가볍고 경쾌하다. 이때 주변 인물이 지나치게 과장되면 작품은 쉽게 뜬다. 하지만 임지호는 탁문익을 현실 군대에 한 명쯤 있을 법한 인물로 눌러 연기했다. 식자재 창고 사정부터 부대 소문까지 다 알고 있을 것 같은 정보력, 쓸데없지만 묘하게 필요한 말들을 늘어놓는 태도는 강림소초라는 공간을 더 구체적으로 보이게 했다. 그의 연기는 주인공의 성장을 둘러싼 세계가 실제로 굴러가고 있다는 감각을 만들어냈다.

‘참교육’의 김태영은 정현민 역을 통해 입시 지옥의 압박을 몸으로 보여줬다. 정현민은 S대 의대 진학만을 목표로 달리는 고3 수험생이다. 성적과 기대, 부모의 압박 사이에서 점점 불안정해지는 인물인데, 김태영은 이 불안을 대사보다 몸의 반응으로 먼저 설득했다. 초조하게 떨리는 손끝, 성적에 따라 시시각각 무너지는 표정, 의대 진학에 대한 강박이 만들어낸 날 선 눈빛이 인물의 위태로움을 구체적으로 만들었다.

특히 의대 입시를 강요하는 어머니와 갈등이 폭발하는 장면에서 김태영의 감정선은 크게 힘을 얻는다. 그는 분노만 밀어붙이지 않았다. 억눌린 불안, 기대를 저버릴 수 없다는 공포, 더는 버티기 어려운 절박함을 겹겹이 쌓아 올렸다. 이 장면을 통해 정현민은 단순히 문제적 학생이나 피해자로만 남지 않는다. 과도한 경쟁 시스템 안에서 서서히 무너져가는 청소년의 얼굴로 남는다. 김태영은 강한 메시지를 가진 작품 안에서도 캐릭터를 납작하게 만들지 않고, 시청자가 그 인물의 압박을 따라가게 하는 힘을 보여줬다.

세 배우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작품에 밀도를 더했다. 김성정은 감정의 결을 흔들었고, 임지호는 장르 안에 현실감을 심었으며, 김태영은 강한 설정 속에서도 인물을 설득했다. 이들의 연기는 주연의 뒤에 숨은 연기가 아니라, 작품을 더 풍성하게 만든 또 하나의 중심축이었다.

좋은 조연은 장면을 지나간 뒤에도 남는다. 이름보다 얼굴이 먼저 기억되고, 분량보다 감정이 오래 남는다. ‘오십프로’ 김성정, ‘취사병 전설이 되다’ 임지호, ‘참교육’ 김태영은 그 사실을 보여준 배우들이다. khd998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