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2004
아시아 홈런왕 신구세대인 지바 롯데 마린스 야구선수 이승엽(왼쪽)과 다이에 호크스 왕정치 야구감독이 지바마린스구장에서 만났다.<지바> 2004-04-02 남병화 기자


◇일본의 왕정치, 미국의 베이브 루스도 시작은 투수

일본에서는 왕정치(오 사다하루)가 타자로 전향해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외다리 타법이라는 독특한 타격폼으로 개인 통산 868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최고 타자의 자리에 올랐다. 868개 홈런(1959~1980년)은 베리 본즈가 가지고 있는 메이저리그 최다 홈런기록인 762개를 100개 가까이 넘는 수치다. 왕정치도 요미우리 입단 당시 투수였다. 그러나 미즈하라 시게루 감독은 고졸신인인 그를 향해 “너는 투수로 성공하지 못한다”라고 했고 가와카미 데스하루 코치도 왕정치가 부드러운 투구폼에 비해 어! 하는게 없다“고 말했다. 투수로서 성공할만한 확실한 장점이 보이지 않았다는 평가다. 야구선수라면 누구나 투수를 동경하기에 왕정치도 ”내일부터 너는 야수“라는 말을 들었을때 ”솔직히 슬펐다“라고 회고했다.

왕정치
왕정치(야구선수,왼) 스포츠서울DB


그러나 마운드가 아닌 타석에서 화려하게 폭발했다. 그는 타자로서 홈런왕 15회, 타점왕 13회를 차지하며 최고 타자의 반열에 올랐고 MVP도 9차례 등극했다. 50홈런 이상을 3회 쳤고 만 35세의 나이인 1977년에 타율 0.324에 50홈런을 때려내며 선수의 황혼기에도 멈추지 않고 맹활약 했다. 요미우리는 그의 등번호 1번을 감독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30년간 영구결번(1959~1988년)으로 지정하며 예우했다. 일본에서는 그를 ‘세계의 홈런왕’이라고 불렀지만 미국에서는 ‘일본의 홈런왕’이라고 평가절하 했다. 왕정치는 은퇴후 감독으로 19년간 2507경기에서 1317승 1118패(승률 0.541)를 기록했고 요미우리에서 1회, 소프트뱅크에서 3회 리그 우승컵(일본시리즈는 2회)을 들어올리며 성공적인 지도자 생활을 했다.

전설적인 홈런왕 베이브 루스는 미국야구 역사상 가장 쾌활하고 정감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호탕한 배드 보이로도 유명한 그는 22시즌 동안 통산 714개(1915~1935년)의 홈런을 쳤다. 배리 본즈 등 여러 슬러그들이 스테로이드 복용으로 명예가 실추되면서 루스의 홈런은 더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는 미국 프로야구 초창기에 단호함과 의외성의 결정판인 홈런으로 미국야구를 토대를 닦은 장본인이다. 베이브 루스(Babe ruth)의 홈런 기록은 깨진지 오래지만, 미국인들은 루시안(Ruthian.장쾌한,비범한)이라는 단어로 그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하고 있다.

루스는 714개의 홈런을 치기 전에 훌륭한 좌완 투수이기도 했다. 통산 기록이 100승에 가까운 94승 46패 방어율 2.28라는 준수한 기록을 남겼다. 19살이던 1914년 오리올스에 입단해 좌완투수로 선수생활을 시작했는데 첫 스프링캠프에서 한 코치가 덩치 큰 그를 보고 ‘베이브(풋내기)’라고 부르며 베이브 루스가 됐다. 본명은 조지 허먼 루스 주니어다. 그해 보스턴으로 이적해 3년간 마이너리그에서 65승 33패를 기록하며 당시만 해도 희귀했던 좌완 선발로 인정받게 된다. 그는 마이너리그 3시즌 동안 9개의 홈런을 치는 다재다능한 타자이기도 했는데 메이저리그에 올라가서는 1918년 11홈런을 치며 뜨거운 타격감을 분출하기 시작했다.

보스턴 구단에서도 루스가 4경기 중에 3경기를 벤치에 앉아서 보기 하기엔 너무 아까운 선수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선발투수가 아닐 때는 외야수나 1루수로 나가 11홈런에 3할을 쳤다. 마운드에서의 활약도 이어졌다. 그해 월드시리즈에서 두번 선발출전해 방어율 1.06을 기록했다. 이듬해인 2019년 부터는 130경기에서 17번 등판했고 대부분 타자로 활동하며 29홈런에 타율 0.322를 기록했다. 1920년 양키스에 팔려간 이후엔 타격에 주력하게 된다. 투수로 딱 한번 마운드에 올랐고 타석에서는 54홈런을 쳤다. 1921년엔 59홈런으로 팀을 동부지구 우승으로 이끌었다. 보스턴은 루스를 팔고나서 86년간 월드시리즈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1918년 우승 후 2004년이 되어서야 월드시리즈 우승 숙원을 풀었다.

국내에도 베이브 루스처럼 투타에서 뛰어난 재능을 갖춘 선수가 존재했다. 고교시절에는 투타 겸업이 흔하지만, 프로에서 투수와 타자 양쪽에서 두각을 보이기는 어렵다. 그러나 김성한은 달랐다. 그는 프로에서 뛴 14시즌(1982~1995년) 동안 타점왕 2회, 홈런와 3회, 최다안타 2회를 기록했다. KBO 최초 20홈런-20도루를 작성했고 KBO 최초 30홈런을 돌파했다. 타자로서의 경력이 화려하다. 그는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에 13홈런 3할 타율에 69타점으로 타점왕을 거머쥐며 첫 해부터 거포로서 인정받았다. 놀라운 점은 같은 해인 1982년에 투수로서 10승을 기록했다는 점이다(김성한은 1985년까지 해태에서 투수를 겸업했다). 김성한이 투타를 함께 한 건 해태가 프로야구 원년에 14명이라는 초미니 선수단으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배우근기자 kenny@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