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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유명한 왕거미구이집은 좁은 골목 초입에 있다.


[스포츠서울]고기박사 최계경의 육도락기행=“신선한 생고기에 불이 웬말” 대구 왕거미구이

프로메테우스가 큰맘 먹고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줬지만 일부 인간들은 여전히 생고기 그대로 즐긴다. 생고기를 즐기는 이유는 간단하다. 맛이 좋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육회와 그 뿌리가 같은 타타르 스테이크가 있긴 하지만 세계적으로 생고기를 먹는 식습관은 얼마 없다. 하지만 서양식 스테이크를 레어(Rare)로 구운 것까지 포함하자면 사실상 생고기를 먹는 인구는 크게 늘어난다. 육류의 상태만 좋다면 고깃덩이를 100% 익혀 먹는 것은 그다지 맛이 없는 까닭이다.

외국인들이 깜짝 놀라는 생고기(육사시미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는 호남 지방과 경북 지방에서 선호한다. 전남 함평과 무안 등에서 즐겨 먹는다. 우둔살을 잘게 다져 양념한 육회는 전국적으로 좋아하는 메뉴다. 특히 비빔밥 중 으뜸은 육회비빔밥을 꼽는다. 진주식이나 전주식이나 모두 육회를 올린다.

영남에서 생고기로 유명한 지역은 뜻밖에도 경북이다. 대구를 중심으로 영천 등에서 ‘뭉티기’란 이름으로 생고기를 즐긴다. 뭉티기는 언제 누가 붙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축한 지 얼마 안된 신선한 소고기를 뭉텅뭉텅 썰어 먹는대서 생긴 이름이다. 경북에서는 생고기를 지칭하는 말로 통용되는데 근본없는 ‘육사시미(肉刺身·肉さしみ)’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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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고기는 고기 특유의 신선한 맛을 즐기기에 딱 좋을 뿐 아니라 소화도 잘되고 기름이 적어 몸에도 좋다.


대구 동인동 왕거미구이 식당은 차 한대도 못들어가는 좁은 골목길에 있다. 저녁이면 손님들로 와글와글하다. 왜 이름이 ‘왕거미’인지 궁금했다. 사장의 설명이 걸작이다. 예전에 좁은 골목길에 고깃집이 줄줄이 많이 있었는데 골목 초입에 자신의 식당이 위치하다보니 모두 그냥 지나치더란 것. 그래서 골목에 들어오는 손님을 거미줄치듯 모두 잡아채려고 ‘왕거미’라고 지었단다.

사장의 작명이 주효했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골목 안에서 가장 번성한 집이다.

생고기를 주문했다. 접시에 새빨간 고기가 한 가득 나왔다. 그때그때 썰어 살이 차지고 촉촉한 육즙 맛이 일품이다. 매일 들여온 고기가 밤이 깊기도 전에 떨어질 정도로 회전도 좋으니 고기의 신선도가 아주 좋다. 장맛도 일품이다. 매콤달콤한 장에 고기를 찍고 마늘과 함께 먹으면 입안에 몹시도 조화로운 고기 맛이 가득 퍼진다. 미각이 아주 풍성해져 기분좋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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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의 대동맥을 뜻하는 오드래기. 씹을 때 오들오들 소리가 난다.


오드래기도 주문했다. 뭉티기는 의태어지만 오드래기는 의성어다. 소의 대동맥을 뜻하는 오드래기는 씹을 때 오들오들 소리가 난다고 해 붙은 이름. 워낙 귀한 부위라 구운 고기와 함께 몇점 살짝 올려나오는데 고소하고 씹는 맛이 일품이다. 소방호스만큼 두꺼운 대동맥은 뜻밖에도 새하얀 색으로, 탄력이 좋아 정말 오도독 씹힌다. 대구는 대동맥을 따로 즐길 만큼 육식문화가 발달한 곳이었다.

소의 다양한 특수 부위를 전문으로 하는 집이라 신선도가 가장 중요한 영업 요소다. 도축장이 쉬는 휴일에는 아예 문을 닫는다.
<육도락가·계경순대국 대표>

★왕거미구이식당=메뉴판이 신기하다. 생고기(3만8000원)와 육회(2만5000원)부터 양지머리(3만5000원), 오드래기(3만5000원), 대창(2만8000원), 혓바닥(2만8000원), 소막창(2만8000원), 등골(2만5000원) 등 부위별로 주욱 적혀있는 것이 여느 고깃집 메뉴를 볼 때와는 낯선 느낌이다. 모두 국내산 한우를 사용한다. (053)427-63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