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29652
여자축구대표팀 지소연(가운데) 박은선(오른쪽)이 지난 14일(한국시간) 캐나다 오타와 랜스다운 경기장에서 열린 2015 FIFA 캐나다 여자월드컵 조별리그 E조 3차전 스페인과 경기에서 선제골을 내준 뒤 경기재개를 준비하고 있다. 제공 | 대한축구협회

[스포츠서울]한국 여자축구에 지난 2010년은 부흥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기회였다. 여민지가 등장한 17세 이하(U-17) 대표팀이 국제축구연맹(FIFA) U-17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지소연으로 대표되는 U-20 대표팀이 U-20 월드컵 3위를 차지했던 해였다. 국제대회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둔 후 5년이 지나는 동안 대한축구협회에 등록된 여자축구 팀의 수는 초등부 8개팀, 중·고·대학부가 각각 5개팀씩 늘었고, 일반부가 3개팀 증가했다. 수치상으로는 늘 과제였던 ‘저변확대’가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하지만 최근 종별 전국대회 현장에서는 선수가 부족해 대회출전을 포기하는 일들이 늘고 있다. 몰수패를 당하지 않기 위한 최소 7명의 선수를 채우기 위해 언니를 응원하러 온 어린 동생을 임시로 세워놓는가 하면 한 명 뿐인 골키퍼가 다쳐 필드 플레이어를 난생 처음 골문 앞에 세우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팀은 늘었지만 선수부족의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 난제다. 일선 지도자들은 “지소연, 여민지 시대 이후를 이끌어갈 선수가 보이지 않는다”고 걱정하고 있다.

◇팀 수는 늘었지만, 선수는 줄어 위태로운 구조

수천 개의 등록팀과 수만 명의 선수들이 있는 유럽의 상황을 부러워하며, 열악한 우리의 실정에 한숨짓는 일은 쉽다. 유럽처럼 우리도 저변을 확대하고 선수들을 늘리자는 말도 쉽다. 하지만 ‘어떻게?’라는 질문 앞에서는 또다시 말문이 막히는 것이 사실이다. 저변확대가 포기해서는 안되는 장기적 관점의 지향점이자 해결과제인 만큼 시간과 노력과 비용이 많이 필요하다. 장기적인 계획이 성공하려면 단기적인 보완책들도 병행해야한다. 여자대표팀 ‘윤덕여호’가 달성한 사상 첫 월드컵 승리와 16강 진출이라는 성과는 쾌거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당장 선결과제에 손을 대지 않으면 같은 성과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위기감도 동시에 전했다. 묘목을 심지 않고 우거진 숲을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여자축구팀 수는 지난 2010년 이후 꾸준히 증가세다. 2015년 상반기 기준 팀 수로는 초등부가 21개 팀으로 가장 많고 중등 19개팀,고등 17개팀,대학 10개팀,일반부 8개팀으로 안정적인 구조를 갖췄다.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의 통 큰 지원책이 마련돼 신규창단을 독려했고, 국제무대 성과에 고무된 선수들의 입문이 많았진 덕분이었다. 하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선수 숫자의 균형이 무너져 불안한 상황이다. 특히 가장 안정적으로 많은 선수들이 있어야 할 초등부가 팀 당 평균 16.2명에 불과하다. 중등부의 26.3명에 비하면 평균 10명이 적어 향후 중등, 고등, 대학부 팀들이 연쇄적으로 선수부족 문제에 흔들릴 수 있다.

4411948
여자축구 대표팀 선수들이 10일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 경기장에서 열린 2015 FIFA 캐나다 여자월드컵 E조 1차전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실점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제공 | 대한축구협회

◇부족한 선수, 축구에 입문할 유인책이 필요하다.

축구는 어린 시절 시작하게 되는 만큼 선수 본인의 의지 못지 않게 부모의 결심이 중요하다. 아이의 장래를 걱정하는 부모가 자신들의 딸이 축구를 해도 마음 놓을 수 있게 할 매력적인 유인책이 필요한 이유다. 좋은 학교 졸업해서 제 앞가림을 잘 하며 살기를 바라는 부모의 심정을 고려할 때 명문대 축구팀의 창단은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오규상 한국여자축구연맹 회장이 심혈을 기울인 것이 명문대 여자축구팀의 창단이었고, 그 결과 지난해 고려대에 새 팀이 생겼다. 오 회장은 더 많은 명문대학팀이 생겨야 한다는 생각이다. 고려대의 창단으로 여대 쌍두마차인 이화여대와 숙명여대의 재창단, 고려대의 영원한 맞수 연세대의 창단 등을 기대하고 있다. 더불어 대학졸업 이후에 대한 대책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남자축구의 경우처럼 프로와 실업, 아마추어리그까지 다양하게 구색이 갖춰져있지 않은 여자축구는 WK리그의 7개팀이 대학 졸업생 모두를 수용할 수 없다. 의지와 상관없이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없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대전대덕대가 여자축구 선수들에게 생활체육지도자, 축구 심판, 인명구조, 제빵, 뷰티아트 등 교내 개설학과 관련분야의 자격증을 최소 3개 이상 따도록 하는 등 선수생활 이후의 삶을 위한 나름의 조치를 강구하고 있다. 진학문제, 경제활동 등에 대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면 마음 편히 축구에 입문하는 선수들이 늘어날 수 있다.

◇체육단체 통합. 선수층 확장 긍정, 경기력 향상 관건

여자축구계가 긴장하며 주목하고 있는 것이 체육단체의 통합이다. 안민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대표발의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에 따라 생활체육 클럽의 선수들과 엘리트체육 선수들이 ‘여자축구’ 이름으로 한 데 모일 수 있다. 국민생활체육회는 어머니 축구단 등의 생활체육 축구클럽이 전국에 걸쳐 80여개가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2015년 상반기 기준 대한축구협회에 등록된 팀이 초·중·고·대학과 일반부까지 75개인 점을 고려하면 선수층이 크게 넓어져 재능있는 선수를 발견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발굴해낸 유망주들을 육성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여자축구연맹 관계자는 “통합 이후 학원팀에서 스포츠클럽으로 전환될 경우 현재의 학원축구 시스템에 비해 전문적으로 축구를 배우고 훈련하기 어려워 선수 성장에 부정적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투잡’을 가지고 있는 유럽선수들에 비해 전업선수인 WK리그 선수들은 운동에 전념하기 유리하다. 하지만 체육단체 통합 이후 스포츠클럽제로 이행하는 단계에서 대표팀의 바탕이 되는 WK리그의 경기력도 떨어질 수 있다는 걱정이 커지고 있다. 우수 지도자를 배치하고 한국의 사정에 적합한 선수육성시스템을 마련하는 등 함께 신경써야할 부분이 많다.

이정수기자 polaris@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