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판락
[스포츠서울] 하판락에 대한 네티즌의 관심이 뜨거운 가운데 하판락의 고문 방식과 친일행적 등이 눈길을 끈다.
1912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하판락은 1934년 2월 순사로 일제 경찰이 됐다. 친일 경찰 3총사 중 한 명으로 유명했던 하판락은 일본 경찰보다 더 악랄했던 조선 순사로 알려졌다.
하판락은 경남 지역 독립운동가를 색출하거나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붙잡아 불구로 만들거나 고문을 가해 옥사하게 했으며, 이로 인해 하판락에게는 '고문귀', '고문왕' 등의 별명이 붙었다.
하판락이 즐기던 고문 중 하나로 알려진 '착혈고문'. 하판락의 '착혈고문'은 피해자의 혈관을 통해 피를 가득 뽑아낸 뒤 피해자의 몸에 뿌리는 것으로서 당시 이를 목격한 이광우 씨는 "고문을 당하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은 내가 고문당할 순서를 기다리는 것과 또 하나는 다른 이가 고문당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라고 회상했다.
또한 하판락은 1943년 '친우회 불온 전단사건'으로 검거된 여경수와 이광우 등 7~8명을 고문할 당시 혐의를 부인하는 여경수의 온몸을 화롯불에 달궈진 쇠 젓가락으로 지지는 등 인간으로서 할 수 없을 정도의 고문을 가했으며, 이로 인해 여경수, 이미경 등 3인은 절명했다.
광복 후 하판락은 그의 고문으로 인해 사망한 독립투사 여경수의 어머니가 하판락을 고발해 반민특위에 체포됐지만, 하판락은 끝내 자신이 한 독립투사 살해 및 착혈 고문 사실 등을 부인했다.
이후 1949년 6월 6일 이승만의 사주를 받은 친일경찰들이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해 반민특위가 사실상 무력화되면서 하판락은 병보석으로 석방되었다.
그 후 일제 강점기 시절부터 형성한 재력을 가지고 사업가로 변신한 하판락은 신용금고를 설립해 엄청나게 많은 돈을 모았고 2003년 9월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한편, 하판락의 친일 죄상과 고문 사실이 하나 둘 재조명되면서 비난이 쏟아지자 2000년 1월 17일 '대한매일'과 인터뷰를 통해 "일제 경찰 간부를 지낸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나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빈다"며 마지못해 잘못을 시인하기도 했다.
뉴미디어팀 이승재 기자 news@sportsseoul.com
사진=하판락 관련 MBC 방송 화면 캡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