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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태극전사들의 ‘중국행 러시’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한국 축구엔 해설가로 변신한 이천수의 ‘중국화’ 발언이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주축 수비수 홍정호의 지난 6일 카타르전 퇴장 부진과 맞물려 축구인들과 팬들 사이에서도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2006 독일 월드컵 토고전에서 동점포를 쏘는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공격수 이천수(35)는 지난 8월 JTBC 예능프로그램 ‘썰전’에 출연한 뒤 “아무리 좋은 선수라도 중국리그에서 2~3년 뛰면 중국화 된다”고 밝혔다. 지난달 1일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1차전 중국전을 앞두고 나타낸 견해인데, 돈을 보고 중국으로 가게 되면 아무래도 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한국은 중국전에서 홍정호 김기희로 짜여진 수비라인이 2실점했다. 카타르전에선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뛰다가 올 여름 돈을 찾아 장쑤 쑤닝으로 간 홍정호가 여러 차례 실수로 2실점 빌미를 제공하고 결국 퇴장당하는 수모를 당했다. 홍정호는 상대 우루과이 출신 귀화 공격수 세바스티안 소리아에 전반 14분 페널티킥을 내주고 전반 45분엔 그와의 일대일 경합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범해 두 번째 실점을 헌납했다. 후반 25분엔 소리아를 또 거칠게 저지하다 경고 2회로 그라운드밖을 떠났다. 홍정호는 경기 직후 “쉽게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망칠 뻔 했다”며 “페널티킥을 내준 이후 부담이 컸다. 그게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졌다. 내가 무너졌다”고 자신의 부진을 사실상 시인했다.
코에 부상을 당한 듯 마스크맨을 쓰고 나온 소리아는 이날 월드컵 본선 8회 연속 진출을 일궈낸 아시아 최강 한국 수비진을 농락했다. 몸이 풀린 뒤엔 홍정호-김기희로 짜여진 한국 센터백 콤비의 실력을 간파한 듯 적극적인 일대일 싸움을 벌였다. 소리아는 분명 훌륭한 공격수다. 같은 우루과이 출신 세계적인 공격수 에딘손 카바니와 플레이스타일은 물론 외모까지 비슷하다. 하지만 그가 유럽에서 뛰는 톱클래스 선수는 아니다. 팬들은 “‘보급형 카바니’와 대결에서도 쩔쩔 매는데, 월드컵 본선에 가서 진짜 카바니를 만나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며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홍정호는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장쑤로 이적한 지 3달 정도 됐다. 선수의 기량이 100일도 안 되는 시간에 하락할 이유는 크게 없다. 곽태휘 등 대표팀 선수들도 “중국에 간다고 선수 기량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며 홍정호를 감쌌다. 일각에선 포백라인의 전체적인 불안이 원인일 뿐, 개인의 실수는 아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표팀에서 한 발짝 떠나 있는 축구인들의 얘기는 다르다. 이천수처럼 기량 하락의 요인이 분명 있다고 역설한다. ‘슈틸리케호’ 수비라인은 최근 홍정호와 김기희 김영권 장현수 등 중국에서 뛰는 수비수 4명을 주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국 사정에 밝은 한 에이전트는 “세계적인 공격수들이 중국에 몰리니까 그들을 상대하는 수비수들의 기량도 올라갈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그렇지 않다”며 “개인적으론 이름값 있는 공격수 중 상하이 선화에서 뛰다가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뎀바 바(세네갈) 빼고 중국에서 성의 있게 뛰는 이들이 없다. 설렁설렁 뛰거나 부상을 이유로 장기간 쉬는 선수들이 적지 않다. 또 중국 축구 자체가 굉장히 거칠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도 발전할 수가 없다”고 했다. 김대길 KBS N 해설위원은 지난달 1~2차전을 마치고 “K리그보다 아시아에서 우수한 리그가 없는데 중국이나 중동에서 뛰는 선수들을 너무 많이 뽑는 것 아닌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월드컵 최종예선은 ‘슈틸리케호’의 종착역이 아니다. 물론 본선행에 실패해선 안 되지만 팬들이 최근 홍정호의 퇴장이나 수비라인의 전체적인 부진에 대해 걱정하는 이유는 1년 8개월 뒤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서의 경쟁력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슈틸리케호 수비라인의 중국화’는 그래서 한국 축구에 큰 충격파를 줄 것으로 보인다.
축구팬들이나 네티즌들의 도를 넘은 선수 비판은 분명 문제다. 그러나 한국 축구의 발전,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 및 좋은 성적이 지금 선수들의 ‘중국행 러시’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는 따져봐야 한다.
silva@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