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정하은기자] “그래도 가수인데 노래 잘하는건 당연한 거 아닌가…”

어느 순간부터 음악방송 앙코르 무대는 아이돌들의 라이브 실력을 평가받는 ‘시험대’ 느낌이 강해졌다. 아무리 1위를 했더라도 대중의 평가는 냉혹하다. 불안정한 음정으로 라이브를 선보이거나 가사를 틀리는 등 실수를 하면 수많은 비난이 쏟아진다. 반면 흔들림없이 안정적인 라이브를 소화하면 그룹의 재평가를 받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그룹 에스파(aespa·카리나 윈터 지젤 닝닝)가 지난 18일 방송된 Mnet ‘엠카운트다운’에서 세 번째 미니앨범 ‘마이 월드’(MY WORLD) 타이틀곡 ‘스파이시’(Spicy)로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1위 사실보다 더 큰 화제를 모은 건 이들의 앙코르 무대였다. 수상 직후 에스파는 팬들 앞에서 앙코르 무대를 선보였고, 폭풍 성량과 음원과 한 치 오차 없는 라이브를 완벽하게 열창했다.

해당 앙코르 무대는 온라인 커뮤니티, 유튜브, 트위터 등에서 큰 화제를 모았고 에스파의 지난 라이브 공연들도 덩달아 역주행 중이다. 함께 경쟁하는 걸그룹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실력에 누리꾼들은 “성량 실화냐”, “배고파도 CD를 먹으면 어떡하냐”, “무대 찢었네”, “속이 뻥 뚫린다”, “이게 라이브지”, “라이브 클라스가 다르네” 등 칭찬의 댓글도 쏟아졌다. 에스파 팬들뿐 아니라 타 가수 팬들에게도 극찬을 받고 있다.

지상파와 케이블 음악방송은 대부분 생방송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출연진이 보컬 및 코러스 녹음이 포함된 AR을 사용한다. 사전녹화를 진행하는 경우도 많지만 K팝 그룹 특성상 난이도 높은 퍼포먼스 때문에 빵빵한 코러스와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에코가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음악방송 1위 수상 후 이어지는 앙코르 무대는 보컬 및 코러스 녹음이 전부 제거된 MR만 제공돼 멤버들의 라이브 실력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된다. 게다가 앙코르 무대에서는 퍼포먼스 보단 팬들과 눈을 맞추거나 1위 공약을 수행하기 때문에 본무대보다 보컬에 더 관심이 쏠린다. 한때는 누리꾼들이 직접 제작한 ‘MR 제거’ 동영상이 많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러니 음악방송 1위 앙코르 무대가 아이돌의 라이브 평가 자리로 바뀌면서 ‘1위가 벌칙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팬들에게 축하받으며 즐기는 자리가 아니라 댄스 가수들의 가창력을 평가 받는 잣대이자 아이돌에겐 풀어야 할 ‘숙제’로 여겨지고 있는 것.

여기에 불안정한 라이브 실력으로 대중의 입방아에 오르는 아이돌들이 속출하면서 앙코르 무대에서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거나 자신의 실력을 감추기 위해 장난을 치며 라이브를 피하는 아이돌 멤버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이처럼 대중이 앙코르 무대를 주시하는 상황 속에도 에스파는 긴장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이 1위의 무게에 걸맞은 실력을 뽐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엠카운트다운’ 이후 19일 KBS2 ‘뮤직뱅크’ 1위 후 앙코르 무대에서 에스파는 청양고추를 먹는 퍼포먼스를 하면서도 폭발적인 성량과 래핑을 선보였고, 20일 MBC ‘쇼! 음악중심’까지 3관왕을 달성한 후에도 여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본인의 파트 뿐만 아니라 애드리브까지 살리는 프로다운 모습으로도 감탄을 자아냈다.

누리꾼들은 “라이브 잘해서 계속 찾아보게 된다”, “이제 앵콜 라이브를 정말 즐기면서 하네. 보기 좋다”, “실력으로 팬들 기 살려주는 에스파”, “랩 진짜 쫀득쫀득하다”, “윈터 라이브는 음색 성량 빠지는게 없네” 등 호평을 보냈다.

에스파는 최근 가요계 판도를 뒤집고 있는 4세대 걸그룹 중에서도 가장 먼저 주목받은 팀이다. 대형 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라는 후광도 있었지만, 국내 최초 메타버스 걸그룹이란 세계관으로 기존 걸그룹들과는 확연히 다른 음악과 콘셉트로 주목받으며 4세대 걸그룹의 포문을 열었다.

10개월 만에 컴백한 에스파에게 이번 활동은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에스파의 공백기 동안 아이브, 르세라핌은 더 거침없이 성장했고 4세대 걸그룹의 복병인 뉴진스까지 가세하며 에스파의 자리가 위태롭지 않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그러나 에스파는 이번 앨범을 통해 그동안 고수해온 ‘광야’를 벗어나 현실 세계로 오면서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청량한 음악에 ‘SM스러움’까지 잃지 않았다. 이번 앨범은 초동 169만 장(한터차트 기준)을 돌파하며 역대 K팝 걸그룹 초동(발매 후 첫 일주일 판매량) 신기록을 기록한 것은 물론, NCT 127이 세운 SM 소속 아티스트 최고 기록도 갈아치웠다.

여기에 화려한 미모와 퍼포먼스, 독특한 세계관에 가려져 있던 탄탄한 라이브 실력까지 증명해내며 4세대 걸그룹 사이에서 자신들만의 독보적인 영역을 키워나가고 있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사실 가수에게 라이브는 당연한 거고, 노래를 잘해야 하는 건 필수 요건인데 아이돌들의 앙코르 무대에 대한 걱정과 부담감이 갈수록 커지는 분위기다. 1위 앙코르 직캠 영상이 올라오고 혹여 실수를 하거나 부족한 실력이 보이면 수많은 악플에 시달리기도 한다”며 “아무리 세대가 변했다고 해도 ‘가수는 노래를 잘해야지’라는 대중의 시선은 변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K팝 그룹이 이렇게 계속 부족한 라이브 실력 문제가 반복되다 보면 퍼포먼스 빼고는 없다는 오명을 얻을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최근 신인 그룹을 론칭한 한 기획사 관계자는 “데뷔 전 연습생 때부터 퍼포먼스 뿐만 아니라 라이브 연습도 꾸준히 병행하고 있고 연습 시간도 늘리고 있다”며 “퍼포먼스가 강한 K팝 그룹 사이에서 라이브 실력까지 출중하면 오히려 그룹의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21일 SBS ‘인기가요’에서도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며 ‘유종의 미’를 거둔 에스파는 다시 해외로 나간다. 에스파는 K팝 그룹 최초로 칸 국제 영화제의 공식 파트너인 쇼파드(Chopard)의 공식 앰버서더로 현재 프랑스 칸에서 열리고 있는 ‘제76회 칸 국제 영화제’ 레드카펫에 선다. 오는 6월 10일에는 미국 뉴욕에서 펼쳐지는 ‘더 거버너스 볼 뮤직 페스티벌 2023’ 메인 스테이지에서 공연한다. 오는 8월부터는 본격적인 미주·유럽 투어에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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