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이주상 기자] “악역이 가장 인간적이에요. 상처, 결핍, 욕망… 모두 숨김없이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배우 이주화는 그렇게 말했다. 드라마에서 수차례 강렬한 악역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던 그가, 이번엔 연극 ‘눈먼자들’의 가화공주 역으로 무대 위 첫 악역 연기에 도전한다.

연극 ‘눈먼자들’은 셰익스피어의 고전 『리어왕』을 한국 전통 양식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이주화가 맡은 가화공주는 원작 속 고너릴로, 아버지를 배신하고 동생을 해치며 끝내 파멸에 이르는 인물이다.

그러나 이주화는 이 역할을 단순한 악인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녀에게 가화공주는 ‘사랑받고 싶었지만, 사랑받지 못한 딸이며, 아이를 낳아 그 사랑을 이어가고 싶었던 여인’이다.

권력에 대한 집착, 질투, 분노 등 모든 감정은 결국 사랑이라는 결핍에서 비롯된 인간의 내면이라는 것이다.

◇ “악역은 인간의 본질을 꺼내는 거울”

이주화는 또 말한다.

“선한 인물은 이상적이고 모범적인 측면이 있어요. 하지만 악역은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죠. 상처, 결핍, 외로움, 욕망까지 다 드러낼 수 있거든요.”

그녀의 이 말은 연극이라는 장르와도 깊게 맞닿아 있다. 무대 위에는 클로즈업도, 편집도 없다. 감정의 선율을 오롯이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선, 배우 자신이 클로즈업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그만큼 악역은 어렵다. 하지만 동시에, 배우에게 가장 많은 인간의 얼굴을 연기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주화는 “악역을 연기하면서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다. 내가 가화공주였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까?”라고 털어놓았다.

◇ “막장의 끝에서 관객을 울리는 연기, 그게 진짜 악역이다”

이주화는 악역의 핵심 매력을 “막장의 끝에서 관객을 울릴 수 있는 힘”이라고 강조한다. 처음엔 “왜 저러는 거야”라며 미워하게 만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관객 스스로가 “혹시 나도 저런 마음 있지 않았나?” 하고 돌아보게 만드는게 악역의 힘이다.

그녀는 가화공주를 “독하고 외로운 사람의 마지막 눈물” 같다고 표현한다. 살아남기 위해 독해졌지만, 결국은 사랑이 고팠던 사람. 이주화는 바로 그 지점에 서 있다. 악역이 아니라, 결핍을 품은 인간을 연기하는 것이다.

이주화는 지금까지 ‘벚꽃동산’의 라네프스카야, ‘갈매기’의 아르까지나 등 깊이 있는 여성 캐릭터를 그려냈지만, 무대 위에서 악을 연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치열하고, 깊다.

“관객들이 이 인물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다시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는 그의 말처럼, 이주화의 악역은 증오를 유도하지 않는다. 이해와 공감, 그리고 성찰을 이끄는 감정의 도구가 된다.

‘눈먼자들’의 무대 위에서, 우리는 지금 가장 인간적인 악의 얼굴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눈먼자들’은 오는 4월 11일 오후 7시, 삼척문화예술회관에서 첫 막이 오른다.

◇연출 및 출연진

연출 최영환. 조연출 김유정, 리어왕(신황철), 가화공주(이주화) 고지식대감(류창우) 지건장군(이원희), 바보광대(고도은)교화공주(전희수),선화공주(황지원) 고지필(고형준), 고복검(박휘남), 내관(김진철), 집사 (김호준), 춤 (배수현) 호위무사 (이창진,조용기,정택수,이지민)

rainbow@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