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박경호 기자] 마블의 상징성이자 집대성 ‘어벤져스’가 사라진 후 말 그대로 ‘엔드게임’이 될 뻔했다. ‘더 마블스’ ‘데드풀과 울버린’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까지.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흥행도 작품성도 모두 고꾸라졌다. “마블의 시대는 끝났다”라는 말도 나왔다.

위기의 순간 한줄기 빛이 등장했다. ‘썬더볼츠*(이하 썬더볼츠)’다. 생경한 이름이다. 그만큼 캐릭터도 새롭다. 거대한 악의 무리와 맞서는 영웅도 아니다. 세상을 구하려는 거창한 목표 따윈 진작에 없다. 루저들의 성장기이자 언더독의 반란이다.

#히어로지만 인간입니다

영화는 언니를 잃은 후 공허함을 안고 살아가는 옐레나(플로렌스 퓨 분)로부터 시작한다.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자 결심한 옐레나는 CIA 국장 발렌티나(줄리아 루이스 드레이퍼스 분)의 마지막 미션을 받고 장소로 향한다. 그곳에서 존 워커(와이어트 러셀 분), 태스크마스터(올가 쿠릴렌코 분), 고스트(해나 존-케이먼 분)를 만난다. 서로를 의심하며 싸우던 중 모두를 제거하고자 했던 발렌티나의 계략임을 알아차리고 힘겹게 탈출에 성공한다.

탈출 과정도 그간의 마블과는 다르다. 하늘을 나는 능력도, 이렇다 할 초능력도 없다. 포기하지 않고 2인3각 하듯 몸을 모아 서로에게 의지한 채 발을 내딛고, 높은 기둥을 오르며 협동이란 것을 배운다.

제작진은 이번 영화에서 CG를 최소화했다. 카메라 촬영 비율을 높이고 지상에서 펼쳐지는 리얼 액션에 중점을 뒀다. 이처럼 ‘썬더볼츠’ 멤버들에게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포인트들이 영화 곳곳에 등장한다. 화려한 액션과 슈퍼 히어로가 즐비했던 그간의 마블과는 다르게 조금 더 가볍게 다가오고 흡입력이 강하다.

‘썬더볼츠’ 속 캐릭터의 면면도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어둡고 촌스럽다. 전직 스파이부터 살인청부업자, 암살자까지.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 잊고 싶은 과거를 짊어지고 살아간다. 누구나 실수와 후회를 통해 성장하듯 캐릭터들의 과거 회상신은 어쩌면 현실 속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밥·센트리·보이드

등장부터 묘하다. 적군인지 아군인지도 헷갈린다. 발렌티나의 슈퍼 솔저 프로젝트로 탄생한 밥(루이스 풀먼 분)은 ‘썬더볼츠’ 멤버들의 탈출을 돕는다. 이후 자신의 잠재 능력을 깨워준 발렌티나로 인해 ‘센트리/보이드’로 거듭난다. 뉴욕을 까맣게 만들고 사람들을 그림자로 바꿔 어둠에 가둔다.

베일에 가려진 밥의 삶에도 칠흑 같은 과거가 있다. 가정 폭력으로 인한 결핍과 피폐함이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았다. 그 고통을 공감하는 ‘썬더볼츠’ 멤버들은 협력해 밥의 내면에 파고든다. 어둠 속 ‘보이드’와 싸움을 이어간 끝에 구원에 성공하며 감동을 선사한다.

특히 밥으로부터 흑화한 ‘보이드’는 총을 맞아도 끄떡없고, 손만 휘저어도 모든 걸 까맣게 지워버리는 어마 무시한 능력을 갖췄다. 2026년 개봉 예정인 ‘어벤져스: 둠스데이’에서 재등장해 활약할 예정이라 기대감이 높아진다. ‘썬더볼츠’ 속 ‘보이드’의 빌런 활약은 맛보기에 가깝다.

#마블의 구세주

어딘가 부족하고 모자란 캐릭터들이 모여 서로를 구원하고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은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설명한다. 그들은 연대와 유대를 통해 함께 성장한다.

미술감독 그레이스 윤은 “최선을 다해 현실적으로 보이려고 했다”라며 “땅 위를 걷는 히어로가 등장하는 점은 다른 마블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독특한 지점”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기존 마블이 추구하던 선과 악의 대결이나 화려함과는 기조가 다르다. 그렇다고 내내 어둡고 무겁지는 않다. 마블 특유의 피식거리게 만드는 웃음, 캐릭터들 간의 투닥거림도 있다. 영화 말미에는 ‘뉴 어벤져스’의 탄생을 알리며 추후 MCU 세계관 속 활약도 기대하게 만든다.

‘썬더볼츠’는 하락세를 이어오던 마블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오기에 충분하다. 오랜만에 OTT가 아닌 극장에서 볼만한 마블 영화가 나왔다. park5544@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