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똥별마저 폭죽처럼 터진 한여름 밤의 격정적 사랑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평범한 일상에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온 설렘. 살면서 처음 느껴본 감정 탓에 혼란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이 끈을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 온몸의 감각들이 불안에 휩싸인다. 현실을 지키는가, 아니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떠나는가.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어른들의 불장난 같은 첫사랑을 이야기한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1960년대 전쟁을 피해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평범한 주부 ‘프란체스카’와 자유로운 영혼의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풋풋하면서도 열정적으로 그려낸다.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길 잃은 여행자에게 베푼 친절은 사랑의 신호탄이 된다. 구슬픈 첼로 선율은 두 남녀를 춤추게 하는 아름다운 멜로디로 바뀐다. 라디오의 여러 채널에서 들려오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처럼 두 사람 사이의 감정도 점점 불타오른다.

작품을 단순 ‘불륜’, ‘막장 드라마’로 분류하기엔 애절한 감성이 심금을 울린다. 불현듯 뇌리를 스치는 그와 함께한 순간이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예술을 다큐멘터리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시절 매디슨 카운티의 ‘로즈먼 다리’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낯설지만 익숙한 ‘설렘’…감정선 끌어올리는 ‘오감’ 자극

작품은 오감(五感)을 모두 만족시킨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지만, 특정 공간에서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감정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시각 화려한 무대는 아니지만, 감정에 따라 오색빛깔로 변하는 하늘은 감성을 적신다. ▲청각 배우들의 깊어진 감성과 인터미션에서도 울려 퍼지는 재즈의 선율은 관객들의 가슴을 촉촉이 적신다. ▲후각 맛있는 음식 냄새와 심장이 불타는 향(香)이 공연장을 뒤덮는다. ▲미각 배우들(특히 최재림)이 식사 장면에서 진짜 음식을 먹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들의 감미로운 대화와 넘버가 감각의 입맛을 다시게 한다. ▲촉각 작품의 스토리와 넘버들은 인간의 모든 신경 세포를 자극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무대 위 소소한 장치들이 작품에 내포된 작품의 시간과 공간을 대변한다. 하지만 관객들은 그 의미를 해석하기보다, 끌리는 대로 또는 한 번쯤 꿈꾸는 드라마 같은 첫사랑과 일탈을 상상하게 된다.

◇ 철창 없는 감옥 ‘주방’, 그를 만나면서 ‘천국’이 되다

각자 바쁜 일상을 보내다가도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주방. 하지만 눈만 마주치면 싸우는 남매와 이를 말리는 남편 ‘버드’의 큰 목소리로 조용할 날이 없다. 그 속에서 묵묵히 요리하고 매번 중재로 나서는 ‘프란체스카’는 인내심보다 모정(母情)으로 이들을 보살핀다.

주방은 ‘프란체스카’가 항상 머무는 공간이다. 당연히 그가 있어야 할 곳 같지만, 어쩌면 감옥이었는지도 모른다. 가족 모두 농업 박람회 참가로 여행을 떠났을 때도 ‘프란체스카’ 혼자 집을 지켰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건 드넓게 펼쳐진 옥수수밭뿐, 이때 아름다운 노을 아래 ‘로버트’가 찾아온다. 길 잃은 ‘로버트’에게서 묘한 감정을 느낀 ‘프란체스카’는 그를 집에 들이게 되고, 자연스럽게 브랜디를 나눠 마시며 웃음 가득한 식사를 한다.

‘프란체스카’는 2년 묵힌 브랜디를 보고 “삐쳤다”는 등 남편과 정반대인 유머러스하고 로맨틱한 ‘로버트’에게 점점 빠져든다.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진 ‘프란체스카’는 그 앞에서 그동안 감춰왔던 ‘여인’의 상처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털어놓으면서 ‘진짜’ 첫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현실 도피를 위해 선택한 미국에서의 삶. ‘프란체스카’는 낯선 이에 의해 가족과 전쟁으로 인해 잃어버린 자신의 삶을 ‘로버트’로 인해 되찾는다. 공허함을 어루만져 주는 그의 위로에 무장 해제된 것이다.

◇ 두 사람을 연결해 준 우주의 기운 ‘로즈먼 다리’

옆집 ‘마지’가 커피를 마시러 나가자고 해도 주방을 떠나지 않았던 ‘프란체스카’는 낯선 이방인 ‘로버트’에 의해 집 밖을 나선다.

로즈먼 다리로 향하는 노을 아래 시골길은 낭만적이다. ‘로버트’와 함께해서인지 평소보다 말수도 늘었다. ‘프란체스카’의 시선은 두근대는 심장과 함께 그에게 꽂힌다. 설렘의 이끌림은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로즈먼 다리 위에서 이들을 연결한다.

‘로버트’는 ‘프란체스카’에게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 번만 오는 거예요”라고 말한다. ‘프란체스카’는 당연하다고 받아들였던 일상에서 탈출해, 한 ‘여자’이고 싶은 인간의 본성을 깨운다.

유혹의 시작, 하늘도 보라빛으로 물든다.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은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별똥별이 아닌, 폭죽처럼 하늘로 치솟으며 이들의 사랑을 축복한다.

노을 지기 직전의 하늘은 ‘프란체스카’와 ‘로버트’의 만남 이후 오색빛깔과 검붉은 밤으로 바뀐다. 사랑의 시작과 잠깐이지만 행복했던 연인으로서의 시간, 헤어짐 앞에서의 갈등, 이별 등으로 인한 두 남녀의 심리를 하늘색의 변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 사랑의 시작과 끝 ‘사진’ 속에서 ‘서로’를 발견

공연은 묵직한 첼로의 선율과 함께 폭격으로 무너진 ‘프란체스카’의 고향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시작한다. 참혹하게 무너져버린 흑백사진 속 나폴리의 전경은 미국 아이오와주의 조용한 시골 마을로 바뀌면서 점점 색(色)을 찾아간다.

하늘이 이들을 이어주듯, 사진 속과 밖은 이들의 세상을 합쳐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로즈먼 다리에서 ‘프란체스카’의 사진을 찍은 ‘로버트’는 그에게 “사진 속 여자들의 얼굴에는 공허함이 묻어있다. 누군가의 아내로, 엄마로, 이름을 잃어버린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프란체스카’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동안 가슴 한구석에 묵혀왔던 상처를 ‘로버트’가 어루만져 준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부정하기란 쉽지 않듯, 이들의 새로운 삶은 허락되지 않는다. 일상으로 돌아가 언제 그랬냐는 듯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이렇게 저렇게 살아간다. 현실의 존재들을 거부하거나 침해하지 않으며 ‘선(選)’과 ‘선(善)’을 지켰다.

시간의 쳇바퀴는 굴러 다시 만난다. 로즈먼 다리에서 ‘로버트’가 찍은 ‘프란체스카’의 사진과 ‘프란체스카’가 몰래 그린 ‘로버트’의 그림이 합쳐져 비로소 두 사람은 재회한다. 죽어서라도 함께하고 싶은 간절함이 하늘에 닿은 것이다.

운명적인 만남으로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오는 7월13일까지 서울 강남구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된다.

7년 만에 돌아온 만큼 더욱 단단해진 초호화 캐스팅으로는 ‘프란체스카’ 역 차지연·조정은, ‘로버트 킨케이드’ 역 박은태·최재림, ‘리처드 버드 존슨’ 역 최호중, ‘찰리’ 역 정의욱·원종환, ‘마지’ 역 홍륜희, ‘마리안/키아라’ 역 양성령, ‘마이클’ 역 홍준기, ‘캐롤린’ 역 김단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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