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배우근 기자] 한국 원전산업이 체코 두코바니 원전 수주를 계기로 도리어 심각한 위기에 놓였다는 지적이 거세다.
한전·한수원이 미국 웨스팅하우스(WEC)와 맺은 협정에 ‘백지수표’에 가까운 보증 신용장 발급과 핵심 시장 포기 조항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19일 확인된 협정서에 따르면 한수원과 한전은 해외 원전 수출 때마다 WEC에 원전 1기당 4억 달러(약 5600억 원) 규모의 보증 신용장을 발급한다. 계약 불이행 시 WEC는 은행에서 곧바로 현금을 인출할 수 있어, 업계에서는 “사실상 백지수표를 건넨 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시장 분할이다. 이번 합의에 따라 한국은 체코 외 유럽 전역과 북미, 일본·영국 시장을 WEC에 우선권으로 내주었다. 안정적 수주가 가능한 핵심 시장을 스스로 포기한 것. 실제로 한수원은 협정 직후 스웨덴·슬로베니아·네덜란드에서 철수했고, 유망 시장으로 꼽힌 폴란드 원전 사업에서도 발을 뺐다.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입찰이 진행 중이거나 계획된 원전은 414기. 이 가운데 한국이 진출 가능한 시장은 38기(9.2%)에 불과한 반면 WEC는 103기(24.9%)의 기회를 확보했다. 미국은 향후 10년간 100기 규모의 신규 원전 건설이 예상되지만, 이번 합의로 한국은 참여할 수 없게 됐다.
게다가 수익성 악화도 불가피하다. 한국은 원전 1기당 6억5000만 달러(약 9000억 원) 상당의 물품·용역을 WEC에 의무 제공하고, 1억7500만 달러(약 2400억 원)의 기술 사용료까지 지급해야 한다. 여기에 4억 달러 신용장까지 겹치면 사업 수익은 사실상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미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사업에서 수익률 0.32%에 불과했던 점을 고려하면, 체코 원전 역시 적자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대통령실도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강유정 대변인은 “체결 과정에서 원칙과 절차가 제대로 지켜졌는지, 합리적 근거가 있었는지 철저히 따질 것”이라고 밝혔다. 다수 전문가들은 “당장의 수주 성과를 위해 한국 원전산업의 미래 경쟁력을 스스로 내던진 셈”이라며 “체코 원전 계약은 재검토가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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