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서울 개막…부산·대구 공연 확정
여전한 인기 비결, 유쾌한 스토리·강렬한 라이브
신비롭고 입체적인 ‘초록마녀’…‘오즈의 마법사’와 다른 전개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13년을 기다린 뮤지컬 ‘위키드’ 오리지널팀이 드디어 한국에 상륙했다. 초록마녀 ‘엘파바’와 사랑스러운 ‘글린다’의 마법 같은 이야기가 다시 한국에서 펼쳐진다. 올여름부터 겨울까지 서울, 부산(11월 예정), 대구(2026년 1월 예정) 공연이 확정됐다. 하지만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흐른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장담 못 한다. ‘에메랄드 시티‘의 신기루가 사라지기 전 서둘러야겠다.
지난 12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초록 물결로 물든 천국의 문, 뮤지컬 ‘위키드’의 문이 열렸다.
고전 ‘오즈의 마법사’를 다른 시각으로 뒤집은 뮤지컬 ‘위키드’는 2003년 브로드웨이 초연 이후 22년째 여전히 식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전 세계 16개국 70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사로잡은 유쾌한 스토리와 강렬한 라이브로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블록버스터 뮤지컬이라고 설명한다.

2021년 이후 한국 라이선스 공연 소식도 없었던 터라, 지난해 신시아 에리보, 아리아나 그란데가 출연한 동명의 영화는 남녀노소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그 여파로 뮤지컬 관객들은 더 심한 갈증을 느끼던 상황. ‘위키드’ 오리지널팀의 내한 소식에 7월까지의 공연은 이미 매진이다.
한국 관객들이 얼마나 ‘위키드’ 오리지널팀을 기다렸는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하루였다. 오후 7시 공연인데, 아직 캐스트 보드조차 안 걸린 공연장을 오후 2시부터 점령하기 시작했다. 공연장은 각자의 개성대로 의상과 액세서리 등으로 포인트를 준 관객들로 인해 초록빛으로 물들었다.
무대를 미니어처로 만들어 놓은 포토존은 지하 2층(1층 관람석) 계단 오른쪽에 마련했다. 이 밖에도 공연장 층마다 곳곳에 포토월을 설치해 다양하게 ‘에메랄드 시티’를 경험할 수 있다. 이곳에서 가족, 연인, 친구의 사진을 찍어주는 이들을 볼 수 있다. 특히 오랜만에 데이트 나온 부모님들이 눈에 띈다. ‘위키드’로 부모님의 추억 소환과 효도한 자녀들의 노력이 돋보인다.
공연 내내 관객들의 환호성과 박수가 터졌다. 이 열기는 커튼콜이 내려간 후에도 함성과 기립박수로 이어졌다. 배우들도 기분 좋았는지, 공연 후 무대 뒤에서 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 작품성·대중성 동시에 잡은 ‘8 to 80 법칙’ 통했다!
역시는 역시다. ‘위키드’ 오리지널 내한 공연은 개막부터 강렬한 흥행과 문화적 파급력을 증명했다. 뮤지컬보다 영화로 먼저 작품을 접한 이들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170분간의 거대한 판타지 무대에 열렬히 환호했다.
영화의 스토리처럼 밝고 유쾌한 1막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눈부시게 화려한 무대 위에서 익숙한 넘버 ‘The Wizard and I(마법사와 나)’ ‘Popular(파퓰러)’ ‘Dancing Through Life(춤추듯 인생을)’ ‘Defying Gravity(중력을 벗어나)’ 등으로 점점 흥을 돋웠다.
1막이 환상이었다면, 2막은 현실이다. 인터미션 후 다시 시작되는 2막은 우정과 사랑을 좀 더 섬세하게 다룬다. 인생에서 누구나 겪었을 고민과 갈등을 깊이 있게 다룬다. 편견과 선입견을 부순 삶에 대한 철학과 메시지가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성찰의 시간을 이룬다.

호주와 싱가포르까지 약 3년간의 투어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온 배우들의 등장은 관객들의 시간을 순간 삭제한다. 무대 속으로 점점 빠져들다 보면, 환상에 젖어 시간을 망각하고 만다.
‘글린다’ 역 코트니 몬스마는 ‘글린다의 정석’이라는 수식어처럼 캐릭터를 완벽하게 해석한다. 그를 보면 ‘사랑스럽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영화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정신없이 빙글빙글 돌고 드러눕고 날아다니면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한 개그 욕심에 큰 웃음을 준다. ‘인싸’의 청아한 보이스는 흐트러짐 없는 연기와 노래로 달콤·상큼한 기분을 선사한다.
‘초록 괴물’이라고 불리지만, 사실 ‘초록 요정’인 ‘엘파바’는 조이 코핀저가 ‘멋쁨(멋지고 예쁘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직접 보여준다. 그는 이번 투어 오디션을 통해 첫 주역 ‘엘파바’로 캐스팅됐다. 이번 시즌 순회 공연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는 ‘최고참 엘파바’다. 그의 폭발적인 성량과 깊은 감성은 정신을 마비시킨다.
지난 3월 싱가포르 공연의 원 캐스트로 대히트 친 ‘피에로’ 역 리암 헤드의 능글능글한 연기는 또 하나의 재미를 더한다.
‘마법사’ 역 사이먼 버크는 50여년 간 무대를 누벼온 무대 예술의 대가로 불린다. 2015년 공연 예술에 대한 공을 인정받아 호주 훈장(AO) 받은 바 있다. ‘딜라몬드 교수’ 역 폴 핸런은 무대와 스크린을 오가며 40년 이상의 커리어를 쌓았다. 이들을 보고 있으면 무대가 자기 집 안방처럼 편안하게 느껴진다.
앙상블의 파워풀하고 섬세한, 때론 묘기에 가까운 무대도 놓칠 수 없다. 한정된 공간에서 극적인 장면을 심리적으로 파고들어, 순간의 대규모 웅장함을 뽐낸다.
천장에 붙은 철갑 입은 연기 뿜는 용과 무대 중심의 대형 가면도 앙상블의 생명을 불어넣어 극의 집중도를 한층 더 끌어 올린다.

◇ 초록마녀 ‘엘파바’·인싸 ‘글린다’, ‘다름’ 인정한 사회적 메시지
뮤지컬 ‘위키드’의 2막은 올겨울 찾아올 영화 ‘위키드’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두 작품의 전개는 다르다. 특히 무대와 스크린에서 오는 감동은 비교할 수 없다.
‘위키드’에서는 ‘오즈의 마법사’가 등장하지만, 프리퀄이 아니다. 평행한 같은 선상의 스토리다. 작품은 ‘오즈의 마법사’를 봤다는 전제하에서 의문스러운 부분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소설 ‘위키드’를 출간한 그레고리 맥과이어는 “기존 이야기에서 소외됐던 마녀를 다시 중심으로 데려와, 그(엘파바)만의 서사를 새롭게 들려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위키드’와 ‘오즈의 마법사’에서 나오는 마녀가 서로 반대 인물이라는 건 아니다. 단지, ‘오즈의 마법사’의 스토리에서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1900년 출간된 L.프랭크 바움의 ‘오즈의 마법사’와 비교하면, 그 안에 비어 있던 공간과 말없이 지나간 여백 속에서 조심스레 건져 올린 것이다. 1939년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등장하는 ‘초록마녀’의 존재감이 훨씬 강해졌다.

서로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자란 ‘엘파바’와 ‘글린다’. 이들의 첫 만남은 최악이었지만, 서로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진정한 우정을 나눈다. 이는 상상이든 현실이든, 서로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작품은 ‘엘파바’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끝을 맺는다. 그는 신비롭고 입체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오즈의 마법사’에서의 악한 마녀와 달리, 에메랄드빛 초록 피부를 가진 영리하고 정의로운 인물이다. 자칫 최고의 마법사가 되고싶은 열망 가득한 ‘엘파바’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다름’이 ‘특별함’으로 받아들여지는 순간, 악용당한다. ‘엘파바’는 가족과 친구, 동물을 사랑해 자기를 희생한다.
스토리는 ‘글린다’의 시각(기억)으로 흘러간다. ‘버블 머신’을 타고 나타난 ‘핑크 공주’다. 사랑만 받고 자란 그는 ‘엘파바’를 만나면서 인간다움, 즉 편견의 굴레를 벗어던진다. 그는 아름답고 인기 많은 야심가이자 모든 이의 행복을 바라는 사랑꾼이다.
한편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에서 보기 힘든 공연을 한국에서 볼 수 있다면, 당연히 필수 관람이지 않겠는가. 상상 속 에메랄드빛 세상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뮤지컬 ‘위키드’ 오리지널 내한 공연은 오는 10월26일까지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공연된다. 이후 부산, 대구에서 순차적으로 무대를 꾸밀 예정이다.

gioia@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