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음율에 담은 ‘시조의 나라’
한국 전통 가락에 담은 K-팝의 웅장함
웃음·재미에 내포된 뜻깊은 메시지 전달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대한민국이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 역사적 영광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념식을 펼쳤다. 최첨단 AI 기술과 드론을 활용해 영웅들의 모습을 재현하고, 한국 고유의 전통 예술부터 전 세계를 휩쓴 K-팝까지 다채로운 무대로 2025년을 마주했다. 대부분의 공연은 K-문화를 중심으로 이뤄진 가운데, 서울 문화의 중심 대학로에서는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이 노래와 춤으로써 우리 예술의 혼을 담은 메시지를 전했다.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은 ‘시조의 나라’ 가상의 조선을 배경으로, 삶의 고단함과 역경을 시조에 담았던 백성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한 나라의 왕이 비선실세에게 휘둘리며 힘없던 시대, 자유롭게 살아갈 새로운 세상을 바라는 백성들에게 시조가 금지된다. 이때 탈을 쓴 비밀 시조단 ‘골빈당’이 목소리에 운율을 담아 만백성의 바람을 대변하며 세상의 변화를 꿈꾼다.
작품에서 시조는 단순히 양반과 평민·천민의 대조된 인생을 고발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는다. 겉멋만 번지르르 한 양반을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 흘러가는 정치·경제·사회를 고발한다. 외세의 끊임없는 침략과 간섭에 망국이라고 하는 간신과 하늘 아래 평등과 자유를 억압받는 백성들의 노여움을 대변하는 충신의 대비된 삶을 보여준다.

◇ ‘흥’ 많고 ‘한’ 많은 민족의 힘찬 노랫가락
예로부터 한국인은 흥(興) 많고 한(恨) 많은 민족이라고 말한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오랫동안 외세 침략을 받아왔기 때문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그런데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노래해, 정반대 의미의 단어를 두 개나 가지고 있다.
한 나라를 망하게 하는 길엔 여러 가지 계략이 있다. 나라말을 없애고 화폐를 통용화하는 것부터 시작하지만,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는 건 결국 문화다. 예술이 곧 민족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민족의 혼을 망각시키게 하기 위해 백성들의 목소리부터 잠재운다.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의 ‘골빈당’은 저잣거리로 나가 퍼뜨린 목소리에는 평민·천민의 삶이 천박한 게 아니라, 천진난만하고 순수했던 그 시절 조선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겁 없는 후레자식이라고 하면서도 용기 있는 자들의 외침이라고 말한다.
‘골빈당’은 목숨 걸고 우리 것을 지키려고 움직인다. 이들은 탈 뒤에 얼굴을 감췄지만, 누구보다 큰 소리로 “신명 나게 한판 놀아보자”라고 외친다. 뒷짐 지고 배 내민 ‘양반 놀음’을 하고, 운명을 바꿀 수 없지만 남몰래 꿈꿨던 희망 사항도 이야기한다. 남몰래 고민했던 나만의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 꽹과리 치며 상모 돌리는 힙합 어때?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을 시대적 상황에서만 이야기한다면 암울하다. 하지만 극은 인물들의 심리를 통해 희망과 용기를 유쾌하게 풀어내, 한(恨)보단 흥(興)이 더 많아 웃음과 재미가 공존한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비슷한 점이 많다. 한국 가수와 시조단, K-팝과 국악, K-댄스와 전통 가락이 어우러진 두 작품이다. 즉, 현대와 과거의 한국 문화를 절묘하게 섞어 가장 한국적인 모습들을 보여준다.
뮤지컬로 무대에 오르고 있는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은 우리의 전통악기를 활용해 가락과 음율, 장단을 K-팝답게 재탄생시켜 웅장함을 더한다. 또 풍물놀이·탈춤·칼춤 등 한국 무용에 브레이크 댄스·힙합 등으로 북·장구·피리·장구·꽹과리·징 등의 소리를 더욱 풍성하게 표현한다.
이 안에서 신분에 따라 당연했던 삶에 ‘왜’라고 묻는다. 시조는 ‘고발’이 아닌 ‘가슴의 울림’이라고 답한다. 또한 역사 속 이름 없는 무덤의 주인공들이 지켜온 고귀한 희생을 전해 깊은 울림을 전한다. 이 나라를 후손에게 물려준,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킨 선조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의 뜻을 되새긴다.

◇ 너도나도 즐기는 자유 “오에오!”
작품에는 다수의 관람 포인트가 숨겨져 있다. 주인공들의 이름에 숨겨진 의미와 순진무구한 인물들의 언어유희, 다양한 모양의 탈과 당대 양반과 평민의 의상, 흥 돋는 넘버와 화려한 춤사위에만 빠져들기엔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이 준비한 장면들이 수없이 많다.
먼저 배우들이 언제, 어디에서 갑자기 관객석에 등장할진 비밀이다. 무대뿐 아니라 관객석에 난입해 관객에게 말을 걸고 노래하며 춤도 춘다. 무대 위에만 집중하고 있을 때 관객 옆으로 바람이 쌩하고 지나가면 언제 등장했는지 모를 배우가 바로 옆에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함께 놀아보자며 부채도 나눠준다. 작품 속 인물들과 일심동체가 되고 싶다면 복도석을 추천한다.
이와 같이 배우들은 관객들에게 적극적으로 호응을 끌어낸다. 배우들이 재치 있는 입담으로 박수와 함성을 유도한다. 커튼콜에서는 또 하나의 무대로 넘버 ‘이것이 양반놀음’의 가사 ‘오에오’를 떼창으로 장식하니 마지막까지 뜨거운 열기는 계속된다.
한편 예술인이 지켜온 역사이자 지금 이 시대가, 후대에도 이어져야 할 작품으로 꼽히는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은 한국을 넘어 뮤지컬의 본고장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의 질리언 린 시어터에서 ‘스웨그에이지 인 콘서트(Swag Age in Concert)’라는 이름으로 9월8일 공연된다.
한국 공연은 오는 31일까지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이어진다.
역적 ‘자모’의 아들이자 자유롭게 시조를 읊는 ‘단(團)’ 역 양희준·임규형·박정혁이 출연한다. 시조대판서의 딸이지만, ‘국봉관’ 제일 시조꾼 ‘진(眞)’ 역 김수하·주다온·김세영이 무대에 오른다. ‘진’의 아버지이자 조정의 실권자 ‘홍국(泓局)’ 역 임현수·조휘, 중탈을 쓴 ‘십주(十洲)’ 역 이경수·진태화가 맏형으로서 ‘골빈당’을 이끈다.
이 밖에도 ‘호로쇠’ 역 황성재, ‘기선’ 역 정선기·임동섭, ‘순수’ 역 정아영·강경현, ‘임금’ 역 최일우, ‘조노’ 역 오승현, ‘엄씨’ 역 김승용·노현창 등이 책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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