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제13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이하 부코페)’의 MC로 무대에 오른 박명수는 오랜만의 공식 석상에서도 긴장하는 기색이 없었다. 특유의 직설 화법과 솔직한 농담은 현장을 단숨에 풀어냈다. 그의 진행에는 오랜 무대를 거쳐온 코미디언의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최근 스포츠서울과 만난 박명수는 “오랜만에 부산에 왔다. 사실 우연찮게 오게 된 거다. 김준호랑 연락하다가 저녁 자리에서 얘기가 나왔고, 코미디언 출신이니까 흔쾌히 수락했다. 원래 MC는 잘 안 맡는 편인데, 라디오도 하고 있으니까 즐겁게, 편하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라며 사회를 맡은 과정을 설명했다.

겸손하게 우연을 강조했지만, 무대에 선 그의 태도에는 단순한 제안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박명수에게 무대는 그 자체로 숙명에 가까운 자리이기 때문이다.

“막상 무대에 서면 피가 도는 걸 느껴요. 그게 코미디언의 본능 같아요. 코미디언으로 태어난 이상 웃음을 만들어야 해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게 곧 제 일이고, 또 제 의무라고 생각해요.”

이번 ‘부코페’ 무대 역시 결국 그의 철학이 그를 불러낸 셈이었다. 이 철학이 구체적인 형태로 세상에 드러난 건 MBC 예능 ‘무한도전’이었다.

“‘무한도전’이 없었으면 지금의 저도 없었어요. 그냥 평범한 코미디언으로 살았을 것 같아요. MC 자리도, 플랫폼도 없었겠죠. ‘무한도전’은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생각해요.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실험 무대가 새로운 길을 열어줬죠.”

‘무한도전’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캐릭터가 바로 유튜브 ‘할명수’다.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듯 보였지만, 시간이 흐르며 오히려 대중에게 친근함으로 다가왔다.

“‘할명수’는 그냥 ‘무도’ 안에서 흘러나온 거예요. 무뚝뚝하게 하고 불친절하게 대했는데, 그게 또 하나의 웃음이 됐던 거죠. 지금도 ‘무도’ 짤들이 유튜브에서 계속 회자돼요. 예전에 했던 게 시대를 앞섰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남들이 하면 어색할 수 있는데, 제가 하면 익숙하다는 거예요.”

박명수가 연예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그의 곁에 늘 유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도’ 시절 쌓아올린 호흡은 캐릭터를 풍성하게 했고, 지금도 여전히 박명수의 활동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재석이와 저는 얼굴만 봐도 알아요. 그게 시너지예요. 그래서 더 좋은 재미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온 것도 재석이의 도움이 커요.”

박명수는 9년 넘게 매일 아침 생방송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이를 “직장 다닌다는 마음가짐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갈 곳이 있다는 게 행복했어요. 매일 같은 시간에 방송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만큼 감사한 일이기도 해요. 요즘 10대 20대가 제 방송을 듣는다는 게 재밌어요. 부모님이 저를 알아서 같이 듣는 경우도 많거든요. 세대가 함께 듣는 프로그램이 됐다는 게 정말 기쁘죠.”

하지만 그는 웃음의 무대가 줄어든 현실을 안타깝게 바라봤다. “예전에도 ‘개콘’ 안에서는 경쟁이 치열했지만, 지금은 무대 자체가 거의 없잖아요. 후배들이 설 자리가 줄어든 게 안타까워요. 그래도 능력 있는 친구들이 자기만의 무대를 만들어 보여주면 언젠가는 방송이 찾을 거라고 믿습니다. 김원훈, 조진세, 두친구 같은 팀을 보면 알 수 있잖아요.”

코미디의 미래에 대한 질문에는 특유의 유머로 “제 미래도 모르는데 코미디의 미래를 어떻게 알겠어요(웃음)”라고 받아쳤다. 그러나 곧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사람들은 결국 웃음을 원합니다. 드라마도, 스릴러도 다 보지만 결국 즐겁고 싶어서 보는 거예요. 그래서 코미디는 형태를 바꿔도 반드시 살아남을 겁니다. 언젠가는 음악이랑 결합된 코미디 콘서트를 꼭 해보고 싶어요. 말이 나오면 시작되는 거니까, 기회가 된다면 추진할 거예요.”

그의 시선은 이미 인생 후반전을 향하고 있었다. “코미디와 음악이 합쳐진 워터쇼 같은 여름 페스티벌을 해보고 싶어요. 진짜 웃음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자리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꾸준히 새로운 도전을 언급하는 그의 태도는 여전히 자신을 ‘현역 코미디언’으로 규정하는 자부심과도 맞닿아 있었다. 세월을 돌아보며 그는 다시 한번 꾸준함의 가치를 짚었다.

“‘무도’가 20년, 제가 방송한 지도 30년이 넘었어요. 세월이 빠르다고만 생각하면 안 되죠. 매해 재미를 만들어내고 환경에 적응하는 예능인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노래도 하고, DJ도 하고, 코미디도 할 수 있으니까 남들보다 세 가지 무기가 있어요.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khd998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