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일본에서 유래된 ‘오타쿠’란 단어는 이제 일상 깊숙이 스며든 보편적 용어다. 익숙한 것과 별개로 그런 존재를 영상물 속 캐릭터로 완벽히 체화해 연기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숙제다. 넷플릭스 시리즈 ‘기리고’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말투를 구사하는 형욱 역의 신예 이효제는 이 난해한 설정을 ‘메소드’로 정면 돌파했다.

이효제는 촬영 두 달 전부터 애니메이션을 쉬지 않고 시청했고, 극 중 형욱이 좋아하는 게임을 직접 정주행했다. 가상의 세계에 깊숙이 빠져들며 형욱의 사고방식을 철저히 연구한 결과, 그의 몸엔 진한 오타쿠의 향기가 완벽하게 배어들었다.

이효제는 최근 스포츠서울과 인터뷰에서 “살면서 애니메이션을 본 적이 없어 의도적으로 더 많이 봤다. 개인적으로 메소드적 접근을 좋아한다. 원래 말이 느린 편인데 형욱이 되기 위해 엄청 빨리 말하는 연습을 했고, 차분한 실제 성격과 달리 현장에선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했다. 전형적인 ‘찐따’와 오타쿠의 특징을 결합하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형욱은 설정 자체가 까다로운 데다, 이에 맞는 외모와 준수한 연기력까지 갖춘 배우를 찾아야 했기에 제작진이 캐스팅을 마지막까지 고심했던 캐릭터다. 이토록 짙고 부담스러운 색채의 인물을 맡았음에도 이효제는 오롯이 즐거움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다양한 인물을 연기하는 걸 선호해요. 저 역시 과거 자전거에 미쳐있었을 만큼 무언가에 깊게 빠지는 힘이 있거든요. 감독님께서 단순한 어리바리가 아니라, 그 안에 광기와 우울이 묻어났으면 좋겠다고 주문하셨어요. 의도적으로 우울함을 꾸며내기보단, 청소년기 특유의 내재된 불안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연기했어요.”

‘기리고’에는 톱스타가 없다. 연출을 맡은 박윤서 감독의 데뷔작인 데다 이효제를 비롯해 전소영, 강미나, 현우석, 백선호 등 주요 인물 대부분이 신예로 채워졌다. 그럼에도 성과는 눈부시다. 공개 3일 만에 넷플릭스 비영어 쇼 부문 4위에 올랐고, 37개국에서 TOP10에 진입했다. 특히 극 초반 시청자들의 시선을 강렬하게 낚아챈 일등 공신은 단연 이효제가 연기한 형욱이다.

극 중 형욱은 별 뜻 없이 전한 소원이 자신의 목숨을 앗아가는 충격적인 사건에 맞닥뜨린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스스로 목숨을 해하는 이 충격적인 시퀀스는 철저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오롯이 배우의 온전한 역량에 기대야만 하는 고난도 장면이었다.

“작가님도 이 장면을 잘 살려주길 당부하셨고, 안무가 선생님께도 디테일한 지도를 받았어요. 특히 감독님이 저를 온전히 믿어주셨죠. ‘이미 네가 형욱이의 얼굴을 하고 있으니 자유롭게 마음껏 연기하라’고 하셔서 깊게 몰입할 수 있었어요.”

캐릭터를 위한 20kg 증량 역시 화제였다. 과거 영화 ‘사도’에서 어린 세손 역할을 맡아 또렷한 이목구비를 자랑했던 그는 형욱이 되기 위해 기꺼이 미(美)를 내려놓았다.

“감독님의 증량 제안에 그날부터 로제 떡볶이와 로제 마라샹궈를 입에 달고 살았어요. 원래 살이 잘 찌는 체질이 아닌데 끊임없이 먹었죠. 거울도 일부러 보지 않았어요. 형욱이라면 거울을 자주 보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살이 찌니 숨소리도 거칠어지고 코도 많이 골게 됐지만, 망가진다는 두려움보다는 인물에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기뻤습니다.”

파격적인 외적 변신을 거듭하며, 이효제는 어느덧 탄탄한 성인 연기자로 뿌리내리고 있다. 중학교 2학년 시절 연기에 대한 진짜 애정이 싹트면서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연기론을 파고들고 있는 ‘지독한 노력파’다.

“연기라는 게 참 모호하잖아요. 그래서 최대한 방법적으로 설명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지금도 다양하게 공부하고 있어요. 그 원동력은 오직 ‘간절함’이에요. 평생 연기하고 싶을 만큼 이 일이 정말 좋거든요. 나이를 먹고 혹여 큰 성공을 거둔다 하더라도, 지금의 이 간절함만큼은 절대 잃고 싶지 않습니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