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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우승도 좋지만 선수들 창의성을 살려주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1990년대 프로축구를 기억하는 팬들이라면 김·종·건(46), 이름 석자를 아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 울산 현대 스트라이커로 이름을 날렸던 그는 1992년부터 9년간 ‘원클럽맨’으로 뛰며 193경기 52골을 터트렸다. 특히 1999년엔 15골을 넣으며 해결사로서 최전성기를 달렸다. 하지만 이듬 해인 2000년 말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31살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
그런 그가 지도자로 변신해 대학무대 우승을 이끌었다. 김 감독이 이끄는 홍익대는 7일 충주종합운동장에서 열린 KBS N 제11회 1,2학년 대학축구대회 결승에서 한남대를 2-0으로 완파하고 이 대회 정상에 처음 등극했다. 2013년 9월 부임한 김 감독도 제자들의 헹가래를 처음으로 받았다. 홍익대는 우승 과정도 완벽했다. 조별리그를 3전 전승으로 통과한 뒤 1,2학년 대회 강자 송호대와 이 대회 최다 우승팀 아주대를 연달아 2-0으로 완파하고 8강에 올랐다. 이어 돌풍의 주인공 전주대와 호원대도 따돌리면서 결승에 올랐다. 8경기 17득점 1실점. 안정된 공격력과 탄탄한 수비력은 결승 무대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홍익대는 전반 7분 만에 두 골을 넣으면서 일찌감치 승기를 잡았다.
우승 직후 “(홍익대)온 지 딱 2년 됐는데…”라며 싱긋 웃은 김 감독은 현역 시절 얘기가 나오자 잠시 하늘을 바라봤다. “(2000년)당시엔 선수들에게 에이전트가 없었다. 구단과 선수가 직접 대화하다보니 고참들이 불리한 경우가 많았다”며 갑작스런 은퇴 이유를 설명한 그는 “이후 2002년부터 울산대에서 감독대행과 코치로 8년을 일했고, 2011년 홍익대 코치로 부임했다. 재작년부터 감독직을 물려받았다”며 대학무대 지도자로 14년간 일했던 지난 날을 떠올렸다. 크게 이름을 알리진 못했으나 울산대 감독대행 시절인 2003~04년 전국 대회 3차례 우승을 일궈내고, 홍익대에서도 U리그 준우승을 한 번 하는 등 대학 축구에선 나름대로 경력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김기희 이승기 김태환 안영규 등 국가대표와 프로에서 활약하는 선수들도 조금씩 배출하고 있다.
선수 시절 아쉬웠던 점을 제자들이 이룰 수 있도록 힘쓴다는 게 김 감독의 소박한 지도 철학이다. “대학에선 성적보다 배움이 중요하다”는 그는 “프로에서 이렇게 해야 잘 할 수 있다는 것들을 가르치려고 한다. 프로는 선수들의 개성을 증명해야 한다. 특히 한국 어린 선수들 창의성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거기에 많은 신경을 쏟고 있다”고 밝혔다. 향후 축구 인생에 대해선 “K리그 감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아직 없다. 지금 내 위치에 만족하며 좋은 선수 더 길러내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현기기자 silva@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