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 영웅과 천재가 레이스를 펼친다면?

쇼트트랙은 한국 스포츠사에 신기원을 열어젖힌 종목이다. 1992년 알베르빌 대회부터 시작해 지난해 소치 대회까지, 한국이 동계올림픽에서 거둔 금메달 26개 가운데 81%인 23개가 쇼트트랙에서 나왔다. 은·동을 합친 총 메달 53개 중 79%인 42개가 역시 쇼트트랙에서 완성됐다. ‘하계올림픽 메달 밭’으로 불리는 양궁(금메달 19개·총 메달 34개)을 따돌리며, 가장 많은 한국 선수들을 시상대 위에 올린 자랑스런 종목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스포츠 팬들에게 기억나는 선수들을 꼽는다면 김기훈과 안현수(러시아명 빅토르 안·이상 남자), 전이경, 진선유(이상 여자) 등 올림픽 다관왕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시공초월 라이벌’에선 오늘의 한국 쇼트트랙을 일궈내고 국민들에게 알린 두 스케이터, 김기훈과 안현수를 함께 올린다.

김기훈
지난 1992년 2월 21일, 프랑스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쇼트트랙남자 1000m 결승에서 김기훈이 동계올림픽 사상 한국선수로는 첫 금메달을 따냈다. (스포츠서울DB)

◇김기훈이 쓴 역사, 안현수가 쓴 역사

둘은 한국 남자 쇼트트랙을 세계 최강의 반열에 올려놓은 주역들로 여겨진다. 한국을 넘어 세계 쇼트트랙 선수들의 롤모델로 자리매김했다.

우선 김기훈은 쇼트트랙을 뛰어넘어 한국 동계스포츠의 역사 같은 존재다. 그가 가는 길이 곧 한국 동계올림픽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11.11m 링크 위에서 벌어지는 쇼트트랙은 1988년 캘거리올림픽에서 시범종목으로 채택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김기훈은 1500m에서 금메달을 거머쥐며 정식종목으로 열릴 4년 뒤 알베르빌올림픽을 기약했다. 알베르빌올림픽 1000m 우승으로 한국에 동계올림픽 첫 금메달을 안긴 그는 5000m 계주에서도 동료들과 우승을 일궈내 2관왕을 질주했다. 2년 뒤 릴레함메르올림픽에서도 그는 건재했다. 1000m에선 맨 먼저 결승선을 통과, 한국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단일 종목 2연패에 성공했다.

안현수는 2002 솔트레이크올림픽 ‘노 골드’로 침울했던 남자 쇼트트랙을 2006 토리노올림픽에서 정상으로 복귀시킨 주인공이다. 1000m와 1500m, 5000m 계주 등 3종목에서 1위를 차지한 그도 한국스포츠사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여자부 진선유와 함께 단일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금메달 3개를 차지하고, 500m 동메달과 함께 총 4개의 메달을 목에 건 선수가 된 것이다. 8년 뒤 열린 지난 해 소치올림픽을 통해 그는 세계 쇼트트랙사를 바꿔놓았다. 500m와 1000m, 5000m 금메달을 손에 쥐는 등 금3·동1개를 추가하며, 쇼트트랙 최다 금메달 기록을 갈아치웠다. 최다 메달 타이도 수립했다. 다만, 소치에서 그는 한국 선수가 아니었다. 2011년 귀화한 새 조국 러시아 유니폼을 입고, ‘빅토르 안’이란 이름으로 역사를 만들었다.

안현수
[소치=스포츠서울 김도훈기자]러시아 쇼트트랙 대표팀의 안현수가 2014년 2월 15일 열린 소치동계올림픽 남자 1000미터 결승에서 1위를 차지한 뒤, 이어진 메달 세리모니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있다. dica@sprotsseoul.com

◇기술과 성실성, 눈물 나는 재활

쇼트트랙 관계자들은 “탁월한 기술이 김기훈과 안현수를 관통하는 코드”라고 입을 모은다. 또 “부상을 딛고 올림픽에서 자신의 꿈을 이뤘다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기훈을 지도했고, 대표팀 코치와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을 역임했던 유태욱 목동아이스링크 사장은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혼자 다부지게 노력할 만큼 성실했다는 게 둘의 장점이었다”며 “그러면서 자기들만의 기술을 개발해 링크에 응용했다. 특히 쇼트트랙은 직선주로가 짧아 코너에서의 스케이팅이 중요한데, 김기훈이나 안현수나 오른발을 잘 타고 들어가 속도를 끌어올리는 장점을 갖고 있다. 다른 선수들은 직선에서 속도를 내도 곡선에서 지속이 안 됐다. 둘 모두 코너에서 속도를 내는 능력이 탁월했다”고 설명했다. 김기훈은 직선주로에서 인코스 쪽으로 바짝 들어왔다가 다시 바깥쪽으로 빠지는 ‘호리병 주법’을 창시했다. 안현수는 토리노올림픽에서 폭발적인 순간 스피드로 바깥쪽을 치고 나가 상대를 제치는 개인기로 1인자가 됐다.

눈물 나는 재활을 이겨낸 것도 둘의 공통점이다. 김기훈은 1989년 말 오른 발목 인대 파열 진단과 함께 8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고 석 달간 재활에만 전념했다. “다른 한국 선수들이 세계선수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어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시기”라고 고백할 만큼 끝 없는 인내를 통해 긴 터널을 빠져나왔다. 수술 다음 날부터 오른발로 자전거 페달을 밟을 만큼 알베르빌올림픽 꿈을 버리지 않았다. 안현수의 재기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대로다. 2006년 이후 4차례나 무릎 수술을 하면서 부활의 꿈을 키웠고, 결국 러시아 귀화까지 선택하며 소치 올림픽 3관왕으로 환호했다.

◇김기훈 체력 vs 안현수 천재성

기술과 성실성 등은 둘이 비슷하지만 세밀하게 살펴보면 차이점도 드러난다. 김기훈은 기술과 함께 체력도 함께 갖춘 스타일이었고, 안현수는 좀 더 기술적으로 특화된 선수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 대표팀 사령탑을 지냈던 박세우 현 전북도청 감독은 “(김)기훈이 형은 체력이 월등한 편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레이스를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 스타일이었다”며 “다른 선수와 선두를 주고 받고 하는 게 없었다는 말이다. 몇 바퀴 남겨놓고 앞으로 쭉 나가서는 거의 선두를 내주지 않았다. 체력이 좋고 인코스를 잘 잡다보니 기훈이 형이 치고 나가면 경기가 그대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고 회고했다. 유 사장도 “김기훈은 중·장거리에 더 강했다. 바퀴 수가 늘어날 때마다 상대 선수와의 간격이 점점 벌어졌다”고 말했다.

안현수는 기술과 천재성으로 평범한 힘이나 체격을 극복하는 스타일이다. 박 감독은 “현수는 테크닉이 있고 화려하다. 하지만 체력이 월등한 것은 아니고, 인코스와 아웃코스로 모두 추월이 가능한 스케이팅을 한다. 그런 기술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며 “현수는 스케이팅은 물론 축구 등 다른 운동도 잘 한다. 그런 운동 신경도 기술과 많은 연관을 맺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지수 고양시청 감독은 “현수는 누가 가르쳤다고 주장하기도 뭐할 만큼 천재적인 선수다. 지도자 생활을 하다보니 선수 무릎 구조나 무릎 각, 발목 각 등 뼈대를 많이 보게 되는데 현수는 그런 면에서도 쇼트트랙에 타고 났다”고 말했다.

2010 벤쿠버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한국대표팀
[밴쿠버=스포츠서울 박진업기자]지난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당시 킬라니센터에서 진행된 쇼트트랙훈련에사 김기훈(맨 오른쪽) 수석코치와 선수들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upandup@sportsseoul.com

◇둘이 링크 위에서 격돌한다면?

김기훈이 1990년대를 대표하는 스케이터라면 안현수는 2000년대를 대표하는 스케이터다. 18살 차이 나는 두 영웅이 같은 시대에 링크 위를 질주했다면 어땠을까. 시대의 변화, 스케이팅의 진화 등을 넣고 빼더라도 안현수가 다소 낫지 않았겠는가란 의견이 7대3 정도로 우세했다. 모 감독은 “안현수는 전천후 선수다. 인코스와 아웃코스를 다 갖고 있다. 아웃코스 스피드가 월등하다”며 “반면 기훈이 형은 인코스가 굉장히 탁월하고 특화가 잘 되어 있다. 결국 우위를 가린다면 현수가 좀 더 낫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박 감독은 “김기훈과 안현수를 비교한 적은 없지만 가까운 선·후배 사이인 김동성과 안현수 비교는 쇼트트랙 관계자들끼리 한 적이 있었다”고 옛 이야기를 소개하며 “기훈이 형과는 같이 스케이팅을 했고, 현수는 가르쳐봤는데 레이스하는 모습이나 1등하는 상황 등을 보면 근소하게 현수 쪽이다. 단거리인 500m에서 3명을 순식간에 제치는 걸 보면 쓰러질 정도로 훌륭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기훈에 표를 던지는 이들도 있었다. 그가 20년 늦게 태어났다면 훈련 환경이나 기술 등이 훨씬 발전했을 것이란 의견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도자는 “김기훈의 스케이팅은 1500m에 가장 유리한데, 그가 뛸 땐 올림픽에 500m와 1000m밖에 없었다. 500m는 안현수가 낫고, 1500m는 김기훈이 낫다고 봤을 때, 그 중간인 1000m가 관건인데 김기훈이 이길 것 같다”고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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