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늬

[스포츠서울 조성경기자] 배우 이하늬가 전대미문의 장녹수를 보여줬다.

그동안 많은 작품 속에서 희대의 요부 장녹수가 그려졌지만, 이하늬는 지난달 종영한 MBC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이하 역적)에서 예인(藝人)으로서 장녹수를 그려내며 차별점을 확실히 뒀다. 극중 승무와 장구춤을 추고, 흥타령 등 노래를 하는 모습으로 그동안 장녹수는 그저 미모와 교태로 연산군을 휘어잡은 요망한 여인이라는 대중적 편견을 떨쳐냈다. 그는 “연산군이 재해석할 만한 가치가 있듯이 장녹수도 그럴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또, 이하늬가 해서 꼭 더 잘해야한다기보다는 이하늬가 하는 장녹수는 색깔이 분명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하늬

물론, 이하늬가 국악을 전공하고, 현재도 가야금 공연을 여는 국악인이기에 가능했다. 이하늬는 “선물같은 장면이 많았다. 이 작품을 하면서 정말 예인 장녹수가 가지고 있는 걸 잘 표현하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몸담았던 분야라 제대로 한 번 해보고 싶었다. 드라마 등에서 가야금을 거꾸로 놓고 연주하는 연기를 하는 등의 모습을 보고 안타까웠던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 내게 기회가 와서 사력을 다했다. 드라마 촬영 환경이 녹록치 않지만, 내가 요청하면 (제작진이) 준비해주시고 잘 촬영할 수 있었다. 하면서도 정말 감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중에서도 승무는 내가 아끼고 아꼈던 것이다. 언젠가 영화나 공연을 하게 되면 승무를 해봐야지 했다. 그런데 이번에 대본 중 녹수의 춤이 연산이 마음을 얻는 계기가 되는 장면인데 작가님이 어떤 춤이라고는 지정해주지 않고 알아서 하라고 해서 연산이 진짜 아티스트, 예인인 녹수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하는 춤이 뭘까 고민하다가 승무를 춘 것이다. 편집도 잘 해주셔서 두고두고 봐도 나 스스로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장면이 나온 것 같다”며 기뻐했다.

남다른 포부와 욕심이 있었고, 워낙 에너지가 넘치는 이하늬지만 이번 드라마라고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힘들었던 만큼 얻은 것도 많은가보다. “‘역적’을 끝내고 쓰지만 달기도 하다는 비터스위트(bittersweet)라는 말을 몸으로 체감한 것 같다. 정말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연기하면서 어렵기도 했지만, 그런 게 많아질수록 배우로서 자양분이 많아진 것 같다. 쓴맛과 고통이 교차되는 지점에서 느낀게 많다.”

이하늬

그런 이하늬는 “막판에 연산과 마지막 연회를 하고 끌려나가는 장면이 있다. 그때 연산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담대하라’고 하면서 ‘나도 임금의 여자로 죽겠다’고 말하고 절을 하는데,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허겁지겁 올라오더라. 그래서 대성통곡을 세 번쯤 했다. 그날 메이크업을 지우는데 거울을 보니까 얼굴의 실핏줄이 다 터져있더라. 감정이 힘들고 극한 상황이었지만 배우로서 내가 가진 모든 걸 쏟아내며 연기한다는 건 어떤 쾌감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열연 끝에 이하늬는 장녹수에 대한 그동안의 대중들의 편견을 깰 수 있었다. 이에 이하늬는 “시청자들이 오히려 편견없이 바라봐주셔서 가능했던 것 같다. 그 부분에 내가 더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이하늬
배우 이하늬. 2017.5.25. 이주상기자 rainbow@sportsseoul.com

장녹수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기보다는 자신을 향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변화를 주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도 있다. “항상 강한 캐릭터만 맡고, 배우로서 아쉬운 마음이 있다. 나는 겉거죽하고 안의 모습의 간극이 정말 큰 것 같다. 20대 때 나는 파스텔톤이 좋은데, 사람들은 내게 버건디가 어울린다고 했다. 나도 나랑 가까운 캐릭터를 하면 좀더 편하게 할 수 있을텐데 생각도 했다”고 속상했던 과거를 이야기한 것. 그러나 이내 이하늬는 “시작부터 나랑 먼 거리의 캐릭터를 해와서 고민하지 않으면 안됐고, 그래서 많이 성장했다. 이제는 어떤 캐릭터를 해도 다 반갑다”고 특유의 긍정 캐릭터를 보여줬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미스코리아 출신’이라는 수식어가 편견 아닌 편견이 있는 것 같아 싫었는데, 이제는 내가 스스로 ‘미코 출신’이라고 말할 정도”라며 웃었다. 이하늬가 장녹수로 한층 더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건 이하늬가 대중의 마음을 더 끌어안는 덕분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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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주상선임기자 rainbow@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