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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도쿄=배우근기자] ‘철인’ 이도연(49·전북)은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끝까지 완주했다”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지난 1일 2020 도쿄패럴림픽 사이클 개인도로결선을 마친 뒤다. 미리 경험하지 못한 후지 국제 스피드웨이의 난이도는 2016 리우 대회 은메달리스트의 숨을 턱 막히게 했다. 당장 사이클에서 내려오고 싶은 순간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결승선을 통과한 이도연의 표정은 밝았다. 그는 “사점(死點)을 극복하며 얻은 노하우를 후배에게 꼭 전하고 싶다”라며 방싯했다. 그런데 지도자를 희망하진 않는다고 했다. 그저 옆에서 도와주는 선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왜 이도연은 지도자의 꿈을 꾸지 않는다고 했을까. 이어진 말에서 작은 실마리를 찾았다.
이도연은 “지도자를 희망하진 않지만 내가 바라는 지도자상은 있다. 선수 의견을 물으며 서로 배우는 사이, 훈련은 확실하게 하지만 평소엔 친구 같은 지도자. 그런 지도자가 많이 나왔으면 한다”라고 했다. 이도연이 인터뷰 내내 ‘지도자’라고 했지 ‘감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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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라는 말은 서구 스포츠에 없다. 코치 또는 헤드 코치다. 미국 야구에선 감독을 코치도 아닌 ‘매니저’라고 한다. 코트나 트랙의 주인공인 선수가 최고의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의미가 강하다.
우리가 쓰는 감독(監督)은 보고 살핀다는 한자로 돼 있다. 현실에서 감시자로 강력한 권위를 가진다. 특히 아마추어 스포츠에서 감독의 권위는 제왕적이다.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선수에게 군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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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장애인체육회의 지상목표는 스포츠 과학 구축이다. 아직 우리나라는 장애인스포츠 선진국에 비하면 걸음마 단계다. 도쿄패럴림픽에서 이를 재확인한 정진완 회장은 “체계적인 스포츠 과학의 뒷받침 없이는 더는 한국이 메달 경쟁력을 지닐 수 없다. 최적화한 훈련시스템을 만들어내겠다”라고 했다.
시스템 쇄신을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예산 조달이다. 경기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종목별 맞춤형 장비 개발, 분야별 전담 스포츠과학 인력 확보, 저변 확대를 위한 장애인 생활체육시설 확충 등이다. 여기에 돈이 투입되지 않으면 ‘언 발에 오줌 누기’에 그칠 게 틀림없다. 예산이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
그런데 스포츠 과학화는 금세 이뤄지지 않는다. 진주가 생기는 것처럼 오랜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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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과학화에는 감독으로 불리는 지도자의 대오각성과 물갈이도 포함된다. 감독이 구시대적인 권위가 아닌 탁월한 전문성으로 무장하면 스포츠 과학화는 앞당길 수 있다. 최소 투자로 최대 효과를 뽑을 수 있는 스포츠 과학이 바로 ‘코칭’이다.
장애인 스포츠에선 전문가로 불리기에 부끄러운 이들이 감독 완장을 찬 경우가 있다. 각 연맹이나 회장의 입김으로 한 자리를 차지한 경우도 있다. 경험과 이론을 겸비한 지도자 수혈이 시급하다. 또한 장애인 선수를 인격체로 보지 않고 희롱, 추행, 학대, 성폭력을 행한 부끄러운 사례도 있었는데, 보고 살펴야 하는 감독이 제 역할을 못 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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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과 코치 등 지도자를 위한 처우 개선도 시급하다. 생계유지가 힘든 급여에도 선수에게 헌신하는 지도자도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계속된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 안정된 처우는 지도자와 선수의 발전을 동시에 부른다. 도쿄에서 9연패 금자탑을 세운 보치아 대표팀의 임광택 감독은 패럴림픽 기간 내내 동영상 장비를 들고 동분서주했다. 전력 분석 영상전문가가 동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장애인 스포츠 과학의 성공을 위해선 결국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새 장비를 운용하고 축적된 데이터를 적용하는 게 사람이고, 체계적인 훈련과 멘털 및 영양 관리도 사람 손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제대로 된 지도자가 필요하다. 기술이 업그레이드되어도 사람이 제 자리면 스포츠 과학화는 뜬구름 잡는 얘기가 될 뿐이다.
kenny@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