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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열린 싱어송라이터 이랑의 단독 공연 ‘Pain on All Fronts’ 현장. 이랑의 공연에는 항상 동시 문자 자막이 함께한다. 사진|황혜정 인턴기자

[스포츠서울 | 황혜정 인턴기자] 가요계에 청각 장애인을 위한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바람이 불고 있다.

배리어 프리란,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편하게 살아갈 수 있게 물리적·심리적 장벽을 제거하는 정책이나 운동을 말한다.

인디 음악계를 중심으로 자신의 콘서트에 ‘문자 통역 서비스’를 도입하는 가수들이 늘고 있다.

지난 1일, ‘제19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상을 수상한 가수 이랑은 자신의 공연에 항상 동시 자막을 제공한다. 지난 19, 20일 열린 이랑의 단독톡 콘서트 ‘Pain on All Fronts’ 현장에는 무대 양 옆에 거대한 스크린이 설치돼 글자가 화면에 나타났다.

양일간의 문자 통역 서비스는 사회적협동조합 ‘에이유디(AUD)’가 함께했다. 이른바 자막 서비스인 ‘쉐어타이핑’은 청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속기사가 가수가 하는 말과 노랫말을 속기해 대형 화면에 보여주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랑은 “더욱더 많은 공연에 이 서비스가 들어오게 된다면 더 나은 공연 문화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소망을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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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갈무리.

이에 가요계 동료들이 호응이라도 한 것일까. 가수 신승은은 다음달 11일 열리는 ‘신승은 앨범발매 콘서트: 네 탓은 아니다’ 단독 공연에 문자 통역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지난 25일 밝혔다. 가수 김사월도 다음달 23~24일 열리는 콘서트 ‘제9회 김사월 쇼’에 양일 모두 문자 통역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지난 28일 전했다.

한국수어강사 해랑 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수어통역과 문자통역은 같이 가야한다”며 “많은 공연장, 연극, 행사에서 수어통역과 문자통역이 제공될 수 있도록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그와 이랑은 지난 21일 ‘문자통역 신청 메뉴얼’을 만들어 더 나은 공연 문화 정착에 힘쓰고 있다.

수어통역 서비스만 제공된 아이돌 콘서트도 최근 열렸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지난 16일 서울 콘서트에서는 공연 관람을 온 청각장애인 팬 2명을 위해 소속사 하이브에서 2명의 수어통역사를 고용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청각장애인 팬 2명 앞에서 수어통역사 2명은 약 3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30분씩 번갈아가며 노랫말과 멤버들의 말을 전달했다. 지난 2019년 10월 같은 장소에서 열렸던 방탄소년단 콘서트에도 6명의 청각장애인을 위해 2명의 수어통역사가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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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이미 연극·공연계에서는 3년 전부터 국립극장, 서울시극단 등 국·공립극장 등을 중심으로 문자 통역 서비스, 수어 통역, 점자 안내지 등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국립극단은 지난해 10월 연극 ‘로드킬 인 더 씨어터’에서도 자막은 물론 음성 해설과 수어통역 서비스를 함께 제공해 다양한 관객을 맞이했다.

다만, 아직도 공연·예술계 전반적으로 소수인 사회적 약자를 위한 서비스 제공에 추가로 비용이 든다는 금전적인 이유, 자막이 나오는 화면의 불빛 때문에 무대 연출이 방해받는다는 이유, 그리고 음악과 같이 청각 자극이 주된 예술에 청각 장애를 가진 팬들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공감성 부족과 무지로 문자·수어 통역 서비스 도입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2003년 영상 콘텐츠에 배리어프리 서비스를 일정 비율 이상 적용해야 한다는 내용의 ‘커뮤니케이션법 2003’을 법제화했다. 영국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사업자는 전체 콘텐츠의 80%에 자막을 제공해야 하고, 음성해설은 10%, 수어 서비스는 5% 이상을 반드시 도입해야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2007년 장애인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서 ‘제24조 문화예술활동의 차별금지’ 조항에 따라 장애인의 문화예술활동을 위한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지만, 장비의 기준, 의무 설치 개수 등 조항의 구체적인 내용이 정해지지 않아 실효성이 미비한 실정이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2020년 기준) 전국 시각 장애인 등록자 수는 약 25만2300명, 청각 장애인 등록자 수는 약 39만5700명이다. 시·청각장애 등록자 수만 64만8000명이 넘는다. 이는 2020년 기준 대한민국 전체 주민등록 인구 5100만명의 1%가 넘는 수치다. 대한민국에서 100명 중 1.3명 꼴로 제대로 된 문화생활을 향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가요계와 공연계, 그리고 영화계에 일부 불고있는 ‘배리어프리’ 문화가 하루 빨리 의무·활성화되어야 할 이유다.

et16@sportsseoul.com